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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의 1월

즐거운 일기 2011. 1. 27. 15:04


폰디체리(Pondicherry)에선 2011년 한 해도 예쁜 바닥그림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답지요, 아침 일찍 집 앞에 나와 문양을 그리는 여성의 모습이요. 축복을 기원하는 이 그림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작품인데, 꽤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자부심도 분명 클 거예요. 분필 같은 것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색색의 가루를 뿌리는 거랍니다.

정초에 숙소의 한 백인남자가 부다(Buddha)와 관음상들이 그려진 손바닥 크기의 새해 달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옆방에 머물던 20대 백인여자가 이곳에서 사서 입었던 풍선바지를 내게 주고 갔습니다. 영어가 좀 된다면 점심 같이하며 수다 떨면 재미있으련만; 저는 답례로 잘 익은 망고를 주었습니다.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면 고추, 양파, 당근 같은 야채를 사서 먹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려 하니, (어떤 프랑스인이 나보고 여기 언제까지 있냐고 묻더니 “3월엔 끓는다 끓어” 하더군요.) 요즘은 인도사람들처럼 나도 아침저녁 파파야를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습니다. 큼큼한 냄새가 나지만 맛있더군요. 낮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 대신 과일을 주기도 했습니다. 과일 먹으면 기운이 나잖아요.

1월 4일부터 3박 4일 간 해변에 있는 간디 동상 앞에서 “국제 요가페스티벌”이 정부 행사로 열렸습니다. 폰디체리에 한 달 이상 머문다고 하면 인도사람들은 “누구에게 (요가) 배우냐”고 스승의 이름을 묻더군요. 그런 곳인 만큼 요가축제가 많이 기대 되었는데, 거의 학생들 무대였습니다. 마술 쇼에 가까운 요가지도자의 홍보 시범도 있었지만요. Rhythmic Yoga를 선보이는 귀여운 연체동물들을 좀 보세요~

상상도 못했던 일은, 한국 참가 팀(세 번째 사진)이 있었다는 겁니다! 요가학과 학생들이 드라마 “명성황후” 배경음악과 내용을 가지고 무대에 올렸는데, 처음 참가하는 거라고 하네요. 이로써 “국제” 요가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의미를 갖게 된 듯합니다. ㅎㅎ

마지막 사진은 댄스 드라마 “Muruga! Muruga!”의 한 장면이에요. 코끼리 신이 등장하는 인도 신화를 배경으로 즐겁게 구성되었죠. 맨 앞 학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지요? 사람들 혼을 쏙 빼놓는 춤,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학생들의 집중력도 훌륭했지만, 긴 시간을 내리 옆에서 장단 맞추며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연주자들이 보통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첸나이(Chennai)의 전통북춤을 추는 그룹이 멋진 무대를 선사했는데, 우리 북춤이나 사물놀이와 거의 흡사해서 놀랐습니다. 신이 났지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몇 시간을 뛰는데다 어두워서 사진을 한 장도 못 건진 건 아쉽네요; 멤버 중에 구성진 노래도 뽑아내는 여자분이 있었어요. 그녀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고마운 시간을 마감하였습니다.

1월 14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 타밀나두의 새해맞이 축제인 퐁갈(Pongal) 기간이었습니다. 친인척들 집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이웃과 인사 나누고, 하늘을 향해 사탕수수 줄기들을 흔들어댄다고 하네요.^^ 사람들의 표정에서, 매우 즐거운 휴일임이 느껴졌습니다. 거리 그림들이 화려해지는 걸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말이지요. “Happy Pongal!”

모범적인(?) 손님인 관계로 게스트하우스 주인한테 큰 사탕수수 줄기를 선물 받았어요. 맛이 시원하면서 향기로웠습니다. 비록 껍질 벗기다 손을 베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더운 피가 퐁퐁 솟자, 냄새를 맡고 정신 못 차리고 달려드는 모기! 헉, 나처럼 모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겐 마치 죠스 같았다는 ㅠㅠ) 엄지 손가락에 밴드 붙이고 먹는 퐁갈은 맛이 절반 이상 감소했지만, 그래도 방 한구석에 자리잡고 지금까지도 든든한 양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어제는 인도공화국 창건일(Republic Day)이었습니다. 정부 건물들은 꽃단장을 하고서 이날 문을 개방했습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온 듯했어요 해변의 간디 동상도 화려해졌지요. 인도인들의 마음 속에 상징으로 자리잡은 간디. 그렇죠, 인도는 카스트제도라는 악명 높은 신분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무력행동 없이 스스로 독립을 이뤄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Republic Day를 기념하여, 간디 동상 앞에선 8회 폰디체리 뮤직 페스티벌 “Freedom” JAM이 열렸습니다. ^^ 퓨전 그룹의 음악도 훌륭했고, 전통 구음을 하는 가수와 Rock밴드가 함께 한 무대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지요. 뮤지션들이 서로 존중하며 연주하는 태도를 보는 건 관중들에게 꽤 즐거운 일입니다.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들을 보니, 이제야 인도가 같은 아시아국가라는 느낌이 드네요. 뮤직 페스티벌은 주말에도 계속되는데, 포스터에 보면 시간은 “sunset”이라고 적혀있답니다.

일상 얘기를 하자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아마도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명상센터)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일 겁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다람쥐들이 장난치며 돌아다니는, 하늘이 열려 있고 눈앞에 야자수가 뻗어있는, 정성 들여 가꾼 이 곳에 들어올 때면 정갈한 마음으로 신발을 벗습니다. 2층 테라스에서 작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어찌 이런 곳이…’ 하는 마음으로 몇 분간 멍 하니 있죠.

처음 간 날 고서적 냄새를 황홀하게 맡으며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고른 책은, 누가 페미니스트 아니랄까 봐 “An Extraordinary Girl”이라는 제목의 아쉬람 관련 인물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옥스포드 사전을 옆에 끼고서, 일기처럼 쉽게 쓰여진 얇은 책을 읽어나가지만 떠나는 날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짤막한 한 장(Chapter)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내용이 그새 바뀌어있어서 말이죠. ㅠㅠ

이곳에서 글의 아이디어도 얻고, 일과 관련된 구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날이 좋으면 아침 다섯 시 반쯤부터 바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산책 나온 사람들 틈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리거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요.

한 번은 어떤 유럽 배낭여행자가 나에게 이곳에서 가볼 곳이 어디냐고 묻더군요. 사진기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그에게 마땅히 추천해줄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긴 아쉬람의 도시야” 라고 말하자, 그는 “맞아, 여긴 볼 게 하나도 없어. 마말라뿌람은 정말 좋았는데” 하며 괜히 왔다는 듯 투덜거렸습니다.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는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얘기였죠. 여긴 아무리 봐도 관광하러 올 곳이 못 되요. 그러나 이곳에 눌러앉아있는 나의 입장은 달랐으니, ‘바다가 지금 눈앞에 있잖아’ 라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보름을 전후로는 닷새간, 꽉 찬 달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걸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어요. 잔잔한 물결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출렁였지요. 저녁마다 해변을 걸으며 한낮의 무더위를 식히고,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단순하게 만들어 덜어내버립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건 맞는 말 같아요. 예전엔 영혼이 속삭이듯 메시지를 주는 듯했던 별들이, 지금은 가볍게 한 손으로 똑 딸 수 있는 ‘별 사탕’처럼 보여요. :)

아, 진정 1월도 지나고 있는 건가요? 가는 시간을 아쉬워할 필요도, 오는 시간을 반가워할 필요도 없으련만 시간이란 걸 떠올리면 마음이 흔들리는 건 왤까. 한파가 몰아 닥친 정신 없는 서울에 지금 놓여 있다면 그래도 나는(혹은 내 몸은) 괜찮을까? 하고 물으며, 아직은 자신 없지만 한 달 후엔 “괜찮고 말고” 라고 답하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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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서맘 2011.02.01 17:05 Modify/Delete Reply

    친구야....넘 먼 곳에 있네...^^
    새해 인사하려 들렸다가 좋은 글 읽으면서 잠시 여유 가져본다.....새해엔 밥 한번 먹자~~

  2. Favicon of http://www.ildaro.com BlogIcon 여울 2011.02.03 14:17 Modify/Delete Reply

    그래, 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되었지?
    그러고 보니 문자만 나누면서 몇해를 보낸 것 같은 걸? ㅠㅠ
    봄바람이 불 때 만나~ 선물도 챙겨갈게. 작은 걸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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