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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2.17 가사 노동의 정치학

기록12. 나꼼수 ‘비키니 응원 독려’ 사건의 정치성

일다와 함께 2012. 1. 31. 21:24

나꼼수는 비키니 사진 뒤로 숨지 말라

<조이여울의 記錄>(12) ‘가카’의 정치만 중요한가 
 
독재국가일수록, 시민들이 정치에 억눌릴수록 민초들 사이에는 정치적 유머가 는다는 얘기가 있다.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대한 대중들의 엄청난 성원도, 이명박 정권 하에 쌓아온 정치적 억압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꼼수’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지만 여러 가지 제도적 법적 장치에 걸려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던 ‘BBK 사건’ 등 “가카”와 관련된 사안들을 본격 언급하면서, 정치에 대한 답답함을 쌓아왔던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나꼼수’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방송내용을 잘 챙겨 듣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송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행자 몇몇이 아슬아슬 ‘버리지 않고 지켜온’ 마초 근성을 언제 드러낼까 싶어 조마조마한 탓도 있다. 그들의 유머 코드는 여성들과 함께 웃는다기보다는, 여성들을 들러리 세우고 웃는 남성집단적이고 분리적인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비키니 시위 독려’ 건은 감옥에 잡혀 들어갈 만한 정치적 사건을 다룬 것도 아니지만, ‘나꼼수’가 여성비하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사건이다. 바로 그 정치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키니 논란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사실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 사이트 ‘1인 시위 인증샷’ 코너에 비키니 차림으로 가슴 부위에 페인팅을 해 사진을 찍어 올린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은 아니다.
 
‘나꼼수’가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만큼, 그 많은 청취자중에 구속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을 구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비키니 시위를 하든 누드 시위를 하든 혹은 어떤 헤프닝을 벌이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이 논란이 되는 것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 있으니 더더욱.
 
문제는 ‘나꼼수’ 방송 내용과 그 멤버들의 태도이다. 21일 ‘나꼼수 봉주 3회’에서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고 한 방송 내용이 문제의 발단이다. 다시 말해 나꼼수와 비키니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이 아닌 것이다.
 
‘나꼼수’는 여성청취자들에게 수영복 응원을 독려함으로써, 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을 안타까워하며 지지를 보내는 여성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슬쩍 유머에 실어 ‘드러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27일에는 주진우 시사인(IN) 기자가 정봉주 전 의원을 면회하며 “가슴 응원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고 접견민원인 서신에 적은 것을 트위터를 통해 밝히기에 이르렀다.
 
정봉주 전 의원의 부인은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바 있고, 지금 이른바 ‘옥바라지’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다. 나는 ‘나꼼수’들의 태도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들은 쿨하고 자유롭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자기들만 자유로운’ 진보 남성상(像)
 
시민사회에는 예로부터 전형적인 ‘진보 남성’의 상(像)이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보기엔 안타깝게도 그것은 마초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진보 여성들은 이들과 연대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들 남성들은 이른바 성(젠더)의 정치, 일상의 정치에 있어선 무지하다 못해 때로는 여성주의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 남성들은 ‘진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에 대해서도 자유분방하게 이야기하고, 일부일처제나 가족에 대해서도 자유를 외치곤 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급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나 혈연주의, 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해치는 성에 대한 이중규범에 대해 ‘정치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주의 진영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 남성들은 성적인 규범으로나 혈통 관계에서나 가족제도에서나 유리한 위치에 앉아 취할 것만 취하고, 불리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겪는 문제와 갈등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성의 영역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버거운 문제들을 풀어가도록 요구하고 있는지, 그 무거움을 모른 채 자기 좋을 대로 말한다.
 
‘가볍게 웃으라고 한 얘기일 뿐인데 너흰 왜 그렇게 무거워? 엄숙주의 아냐?’
‘가카와 관련된 정치 방송인데, 중요한 시국에 작은 일로 진보가 분열음 내서야 쓰냐’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그동안 여성들이 보낸 항의와 경고-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말라, 진보의 “치어리더”로 취급하지 말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 측이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꼼수 부리는 그 머리로 충분히 쿨하게 사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분간 “침묵”하겠다고 한다.
 
성의 정치, 삶의 정치를 배워야
 
<나는 꼼수다>는 작년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수여하는 2011 언론상을 수상했고, 4명의 진행자들이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지만,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시기에 언론계가 주는 격려이자 사회적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꼼수’는 특유의 꼼수로 여론의 힘을 입어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취하였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쫄지마!” 라고 외치며 대중들의 ‘정치적 발언’을 독려해왔다. 지금 많은 여성들은 ‘나꼼수’ 측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꼼수’ 측이 지금까지 보인 반응은,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방송과 방송인이라고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책임을 피해버리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에 숨듯, 비키니 입고 응원해준 여성들의 사진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어 침묵하는 것이다. 이 모습은 사실상 우리가 익히 보아왔고, 전형이 되어버린 진보 남성의 비겁함이다.
 
그래도 2012년이다. 진보 남성상(像)의 전형이 깨어지기를, 오랜 시간 진보 여성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진보 정치를 꿈꾸고 논하는 남성들이 성의 정치, 삶의 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배울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정치는 진보한 것이다. (2012년 1월 31일)

<일다>에 게재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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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5 14:48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2.03.21 18:22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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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의 정치학

자유 게시판 2009. 2. 17. 11:05

2009년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다시금 1968년을 읽고 있다. 삼인에서 출간한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을 보면, 저자 중 한 사람인 타리크 알리는 이 책을 집필하던 1998년 당시 머리글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1968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는 가라앉은 대륙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계에, 자조와 이기주의가 평등한 세계에 대한 믿음을 대체해 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 그러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머리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시기
작가 수잔 왓킨스와 영화제작자 타리크 알리는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 등 모든 금기가 도전받고 깨뜨려진 시기", "전세계의 모든 세대에게 흔적을 남긴 해"였던 1968년의 기록을 모아, "정치적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당시 간행된 급진적 성향의 잡지 표지들, 정치만평과 시사칼럼, 각국 반전시위대의 모습, 동파키스탄 여학생들의 맨발 침묵시위, 언론에 공개된 체 게바라의 시신, 베트남전에 지친 미군병사들 사진, 초기 여성해방운동 포스터, 빠리 시내 벽에 쓰여진 낙서, 아프리카 속담과 흑인민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중엔 반전운동가이거나 신좌파인 여성들이 운동 과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소개되는데, 운동사회 내 가부장제 논란은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지속적인 논쟁 거리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사실 20~30년간이나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아니한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당시 여성들의 글 중에서 "가사 노동의 정치학"을 옮겨본다.

[가사 노동의 정치학]

그것은 완전히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은 모두 직업이 있었다. 그런데 왜 가사 노동을 분담하면 안 되는가? 나는 내 배우자에게 가사 노동을 분담하자고 제의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동의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너무 유식해서 당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따라서 몇 년 동안 대화가 계속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하지만 내가 그걸 잘할 수 없잖아. 각자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해야 해."
이것은 불행하게도 이런 의미다. 나는 접시를 닦는 일이나 요리에는 소질이 없어. 내가 잘하는 일은 목공일이나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 가구의 위치를 옮기는 일이야.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자주 가구의 위치를 옮기지?)

이것은 또 이런 의미다. 나는 단조롭고 시시하고 따분한 일은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그렇지만 그것은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나에게 보여줘야 할 거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리고 당신은 내가 그것을 할 때마다 시범을 보여줘야 해.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 일을 할 동안 앉아 있거나 독서를 하려고 하지마. 당신 혼자 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느낄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성가시게 만들 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행복했었는데." (그가 일을 할 차례가 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의미다. 예전에 '나'는 행복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일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이것은 이런 의미다. 가사 노동은 별 볼 일 없는 일이야. 그것은 내 품위를 떨어뜨리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그러나 당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아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성 해방은 진정한 정치운동이 아니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혁명이 아주 집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것.


팻 메이너디(Pat Mainardi)
레드스타킹즈 그룹 (Redstockings Group)
뉴욕,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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