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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7 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2. 2011.01.14 기록 2.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일다와 함께 2011. 2. 27. 14:23
여성과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권을
<조이여울의 記錄>(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공적인 장 마련하기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관한 ‘여성주의 저널리즘’의 태동과 역할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지요. 그럼 이어서 여성주의 저널의 특성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주의 매체는 여성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적인 장을 마련해주고, 공감의 힘을 바탕으로 위로와 지지를 보냅니다.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어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이 비단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조명이 필요한 인권 사안을 다룰 때, ‘성별을 따지지 않는 것’이 또한 여성주의입니다. 여성들이 공적인 장에서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크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펼쳐 제공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에요. (사적인 대화는 어쩌면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다>를 통해 다양한 필자를 발굴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여러분이 편지를 통해 이야기한 대로, 여성주의 저널에서는 특히 당사자들의 경험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다른 곳에선 들어주지도 않고 쉽게 왜곡했던 이야기들을 존중하지요. 그 동안 차별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할 곳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고 공감함으로써 지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감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연애로 미화되기 쉬운 ‘스토킹’에 대해서, 피해경험자가 직접 얘기하면 설득력이 있지요. 동거가 이슈화되었을 때도,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얘기해버리면 그게 호들갑 떨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지요. 낙태 논쟁에서도, 인공임신중절의 경험이 무엇인지 담담히 기술한 글을 접하게 되면 살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무색해질 때도 있습니다.
 
전문성 부여하기
 
여성주의 저널은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여성들 혹은 소수자들이 전문가로서 발언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줍니다. 자신이 직접 겪고 체득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꼭 어떤 직위나 학위 또는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선 많은 사안에 있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되어야 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묻혀버리곤 하는 아이러니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물론 전문가 집단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너무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 전문가 집단의 경험이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과 동떨어져 있어서 해당분야에 대해 오히려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또 당사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이야기해줄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여성주의 저널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요. 평등하지 않은 사회이니까요. 그런데 그 비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가부장적인 제도나 시스템에 대해 날카롭게 날을 세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바탕에는 다른 대안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실행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바탕이 없을 때 비판은 소모적이 되기 쉽지요.
 
나는 제도적 불평등이나 차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글이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 더 환영 받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비판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의 선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대부분의 기사는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끌기 위해 선정성을 조금씩은 내포하고 있지요. 하지만 나의 경험상, 매체의 보도가 선정적인 만큼 그 내용은 허망해집니다. 과연 이것이 내가 바랐던 반응인가?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좀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론의 비판 기능은 생명력이지만, 대안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입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제시할 때, 우리의 지향은 훨씬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것이 비판의 대상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새로운 언어 만들기
 
편지 내용에서 ‘언어 사용’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내용,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짧게 설명하기가 어렵지요. 동성애, 성 정체성, 호모포비아와 같은 ‘성적 소수자’ 관련 기사의 예를 들어보지요. 사실 ‘소수자’나 ‘정체성’이라는 말도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적 소수자’ 또는 ‘성 정체성’이라니, 기본적인 기사의 카테고리조차 배경설명이 필요한 어려운 언어입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에 평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정보를 별로 갖지 않은 다수의 독자들에겐 당최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초기에는 ‘성적 소수자 관련 용어 설명’ 기사를 별도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독자들이 관심만 갖고 본다면 이 개념에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랐지요.
 
<일다>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재일조선인, 그들이 누구인지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실상 재일조선인의 존재와 그들의 현재 모습을 알려면, 우리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작업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배경설명을 건너뛰고 재일조선인 관련 사안을 다루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내용이 각색되어버립니다. 짤막한 보도로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일다>에서는 재일조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글(특별기획-“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 조경희로부터 듣다” 2008년 3월-7월)을 10회 이상 연재했는데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면, 아마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관심’이라는 그 자발성까지 언론에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대한 독자들 눈높이에 맞춰 호소력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몫은 우리에게 있다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새로운 언어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담고 있는 “병신”이라는 말은 가급적 쓰지 말기로 하고, 젊은 여성들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제 좀 자제하고, “편부”나 “편모”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용어 대신 “한부모”로, “미혼”보다는 “비혼”이라고, “폐경” 대신 “완경”이라고 용어를 바꿔 쓰기로 하자는 등의 흐름이 계속되어 왔지요.
 
마땅한 언어가 없던 상황에서 적절한 용어를 새로 만들고, 특히 부정적인 용어를 조금 더 긍정적인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퍼뜨리는 작업은 언제나 환영할 만합니다. 언론은 이를 더 확장해주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매체는 당연히 교육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교조주의라고 할 수 없지요. 우리는 평생 배워가는 존재이고, 자신이 아는 것만 재확인하려고 언론을 활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언론은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해주며 상용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이런 용어도 모르니? 아직도 이런 말을 쓰다니!” 식으로 들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조주의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태도의 문제이지요.
 
여기서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하자면, 나는 우리가 언어 사용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쪽이에요. 언어란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니까요. 언론은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고, 언어 사용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요. 어떤 이가 자신에게 낯선 용어 때문에 기사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혹은 내용이 중요한데도 용어에 신경 쓰느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럼에도 언어 자체에 이렇게 비중을 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차피 완벽한 언어도 아닌데 말이지요.
 
예를 들어 ‘장애우’라는 말은 장애인 권리를 위해 다가가자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금은 장애인을 특별히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어, 인권운동 진영에선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늘 써오던 대로 ‘장애우’라는 말을 고집한다고 해서, 그가 차별적이라거나 장애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용어를 빨리 접하는 사람들이 특정 계층이라는 점, 우리사회의 지식인 층이 늘 말만 앞서고 그 내용을 채우는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뒤처져 있다는 점을 알기에,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다> 2011년 2월 2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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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2.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일다와 함께 2011. 1. 14. 15:18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조이여울의 기록> (2) 진단은 낙인이 되고, 원인은 답이 된다 
  
차별과 폭력, 사회적 소외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언론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피해의식’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거나 떠올리게 된다.
 
개인차를 감안하고, 사회적 소외와 차별을 겪어 온 사람들이 그 결과로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탓도 아니다.
 
문제는 피해의식이 사람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상황을 쉽게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여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자신과 처지가 다른 이들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등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경우 피해의식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해당 주제에 관해 대화하는 건 불편한 일이 되고, 아예 ‘만남’ 자체를 꺼리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
 
때로 피해의식 혹은 그로 인한 배타성이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소수자 집단의 배타적인 성격이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또 하나의 낙인이 되어 차별을 지탱해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들여다보기 전엔 이해할 수 없는
 
작년 10월 재일조선인 선진유씨를 인터뷰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재일동포, 당신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일다> 2010년 10월 20일) 도쿄로 떠나기 전 나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너무 “폐쇄적”이라 일본사회와 소통하며 상황을 개선해나갈 통로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 대한 나의 관심은 몇 년 전 내 또래인 림혜영, 조경희씨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커졌는데,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지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이야. 천민집단 중에서도 천한 취급을 받아왔다면 설명이 될까?
 
한 번은 혜영씨가 지나는 말로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사람들 보라고 일부러 집을 깨끗하게 해놓는 경향이 있대요” 했다.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조선 사람들은 지저분하다-을 반영한 얘기였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은 사회의 편견과 낙인의 잣대에서 결코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코-카운셀러인 32세의 여성 선진유씨를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또 깜박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말이다. 나보다 좀 더 어린 세대라고 생각해서, 그새 일본사회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는 마음수련을 해온 그녀의 맑은 표정을 보며, 공포에 시달렸던 지난 시절의 그림자를 읽어내기 어려웠던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김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가해-피해의 역사, 전후에도 계속된 조선인학살, 규명되지 않은 폭력, 뿌리 깊은 인종차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 개인이 특유의 성격이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진유씨는 어릴 적부터 자주 망상에 시달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조울증,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의 질환을 앓았다고 했다.
 
선진유씨의 고통스런 경험은 ‘개인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해결책도 ‘개인적인 수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사회는 문제 해결은커녕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 경험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어 정신과 질환의 목록으로 나열될 뿐이었다.
 
진유씨는 학창시절 친구가 칼로 자신을 찌르는 꿈을 종종 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공포에 대해 대화할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대학 사물놀이 동아리활동을 하며 무대에 올랐을 때, 관중 중에 누가 “너희는 조선인이냐?”라고 묻자 공포감에 그만 몸이 굳어버린 경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다른 멤버들은 자기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인 친구들의 입장에서, 진유씨의 태도는 ‘피해의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진유씨의 악몽에 대해 만약 그 친구가 알았더라면, 내가 왜 너를 죽이려 하겠냐며 불쾌감에 말도 섞기 싫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대에 오른 사물놀이패 멤버들도 대체 조선인이냐고 묻는 게 뭐가 대수라고 공연을 망치는지 답답해했을 것이다.
 
피해의식이란 이렇게 악순환 된다. 자신의 감정과 태도가 이해를 받지 못하니 더더욱 주위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잃게 되고, 그럴수록 사회와의 벽은 두터워지는 것이다.
 
‘비주류’라는 꼬리표를 단 사람들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결핍된’ ‘열등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에, 개인은 쉽게 ‘집단’으로 평가를 받는다. ‘비주류’라는 정체성이 꼬리표가 되어, 더 이상 개인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 꼬리표는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평가를 하려 노력한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불명예스러운 이름이므로 개인의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상황을 빚어낸다.
 
“미혼모”라고 불리는 집단, 혹은 “아줌마”라고 불리는 집단, 외국인노동자 집단, 가난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동성애자 집단, 고아로 자란 사람들, 범죄자의 가족들, 특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고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결핍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꼬리표 떼기에 열중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과는 달라’ 이런 식으로 평가 받으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는 집단을 향한 사회적 차별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를 테면 상당수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이름을 쓰면서, 조선인이란 걸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일본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조선도서관 <문화센터 아리랑>의 부이사장인 송부자씨(72세, 여성)는 인터뷰에서, 자녀들이 괴롭힘 당하지 않게 하려고 매일 기모노를 입고 모피도 두른 채 학부모위원회 활동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역사를 바로 가르칠 때 정의가 생겨난다” <일다> 2010년 7월 27일 박희정 기자)
 
또 어떤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자기 정체성의 꼬리표를 지탱하느라 힘겹다. 화살을 안으로 돌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혹은 ‘우린 이래서 안돼’, ‘저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망신이야’ 하고 자기 자신과 내부집단에 대해 검열과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수집단의 사람들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을 규정을 무수히 만들어, ‘평균에 못 미치는 존재’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무게를 버텨내려 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소외의 문제가 민족성이나 종교성과 관련이 있을 경우엔, 해당 집단의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짐이 훨씬 커진다. 이 시대에 왜, 그것도 일본사회에서 공격 대상이 될 게 뻔한 상황에서 조선학교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하는가. 소수민족들은 여자들이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지 더 엄격하게 감시한다. 소수집단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의 몸은 쉽게 통제 대상이 된다. 더 민족적이고 더 종교적이어야 한다.
 
흑인남성들은 흑인여성이 백인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분개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연애에 왈가왈부할 일이 뭐 있으며 자존심 상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밝힌 바, 실상은 흑인남성이 백인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2배가량 높다고 한다.) 이런 시선이 있는 한, 흑인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결정에 대해 검열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 집단에 대해 ‘배신’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데 왜 개인이 이런 터무니없는 짐을 이고지고 가야 걸까. 왜 하루하루를 평화가 아닌 분쟁의 현장으로 삼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다가가기 한 뼘이 아쉽다
 
나는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이나 폐쇄성, 혹은 배타성이 주제로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이 말이 떠오를 때에도 ‘한 뼘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번 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같이, 다가가는 한 뼘의 거리 말이다.
 
때로 어떤 이의 피해의식이 특정한 개인을 향한 원망으로 표출되어 보일지라도, 사실 그 원인은 사회적 기반과 지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우리가 개인으로서 그 사람에게 잘못한 일은 없다 하더라도, 사회구성원인 개인으로서는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낄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 집단에 대해 “피해의식”에 절어 “폐쇄적(혹은 공격적)”이라고 평하고 있다면, 그러한 진단에 앞서 원인인 무엇인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원인을 찾아내 교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간편하게 진단만 내린다면, 그것은 낙인의 또 다른 양상일 뿐이다.
 
소수자 집단의 폐쇄성과 피해의식의 정도가 바로 그 집단이 속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사회가 소수민족에 대해 너그럽고 관대한 문화였다면, 또 역사를 지배가 아닌 평화를 바라는 관점에서 교육했더라면 재일조선인 집단의 폐쇄적인 성격은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진유씨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것은 “절대적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 기사 제목에 “당신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일본사회와 한국사회, ‘우리’가 들어야 할 시간이다. 재일조선인들의 권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반일감정을 드러내는 것 외에, 우리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현실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었는가. 또 우리 사회의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간혹 피해의식이나 배타성과 같은 소수자 집단 내부의 부정적인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하며 상대적 우월감을 확인하는데 사용하는 대신, 그 원인이 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 방법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한 번 듣게 되면 두 번 듣기는 훨씬 쉽다. 배경지식이 생겨 내 마음에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으니까.
 
<일다> 2011년 1월 1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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