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2.07.17 <두 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씨와 만나다
  2. 2012.04.14 기록14. 어떤 선거운동
  3. 2012.01.31 기록12. 나꼼수 ‘비키니 응원 독려’ 사건의 정치성 (2)
  4. 2011.12.15 예비법조인들에게 하고픈 이야기
  5. 2011.12.03 장애여성, 그 시선이 낯설지 않을 때까지
  6. 2011.08.01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1만인 건립위원이 되어주세요.
  7. 2011.05.18 기록11. 오월의 기억 그리고 기념
  8. 2011.04.08 포항지역 유흥업소 여성 7인의 죽음…‘성 산업’의 실체와 접대문화
  9. 2011.03.11 기록9.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끝
  10. 2011.03.09 故 장자연씨의 죽음 앞에서- 2009년 3월 일다 시론
  11. 2011.03.04 기록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12. 2011.02.27 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13. 2011.02.19 기록6.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1
  14. 2011.02.15 기록5.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온 편지
  15. 2011.02.05 기록 4.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16. 2011.01.24 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말하는 ‘고통’과 ‘치유’
  17. 2011.01.14 기록 2.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18. 2011.01.05 기록 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19. 2010.10.22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구입할 수 있는 곳
  20. 2010.01.30 박상은의 "산책"
  21. 2010.01.16 대안매체로서 일다의 성장(인터뷰) (2)
  22. 2010.01.15 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과의 인터뷰
  23. 2010.01.14 생활문학
  24. 2008.10.01 여성뮤지션 강허달림, 그녀의 성장을 바라며 (1)
  25. 2008.08.09 간통죄 폐지를 요구하며

<두 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씨와 만나다

일다와 함께 2012. 7. 17. 17:35

두 여성주의 감독이 진실에 접근하는 법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3년 전 묻혀버린 진실을 찾아가려는, 독립다큐멘터리 한 편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만 명을 넘기 어려운 독립영화 관객 수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4만을 훌쩍 넘었고, 이미 ‘사법적 재판’에서는 결론 내려진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은 그만큼 힘이 있는 기록이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록자의 시선’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화재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현장에서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가 대치하고 있었지만, <두 개의 문>은 양 측 중 어느 편에 설 것이냐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따라가며, 철거민과 특공대원의 죽음과 고통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있다.
 
진실을 찾는 문을 열기 위해 새로운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가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인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분홍치마’는 첫 작품 <마마상>(2005)에서 기지촌 성매매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일다>에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2004) 기획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이후 ‘커밍아웃 3부작’으로 불리는 <3XFTM>(2008),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을 통해 남/녀 이분법에 기반을 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2012년, 화제작 <두 개의 문>을 내놓은 것이다.
 
분야와 형식은 다르지만 미디어활동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서, 김일란 홍지유 두 감독을 만나 <두 개의 문>에 담긴 문제의식과 기대에 대해, 그리고 용산참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로서 취한 태도와 방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를 보면 ‘두 개의 문’은 얼마나 무리한 진압작전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인데,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의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영화에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를 설명해달라.
 
“2009년 ‘레아’(용산참사 이후 미디어활동가들이 만든 촛불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재판을 방청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하고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처음부터 우리가 경찰특공대에 대해 취한 태도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특공대원들이 착륙과 동시에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사전정보가 없어 출입문이 어디인지 몰라서, 두 개의 문 중에 어느 것이 망루로 통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망루 안에서는 바깥의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누가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문을 뜯느라 십분 가량을 지체했고, (철거민이나 특공대원이나) 위험하고 당황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담고자 했다.”
 
-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이를 테면 고 김남훈 경사(당시 31세)의 죽음의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부대원이 ‘농성자에게 있다’고 답했을 때, 방청객들은 그 말이 얼마나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지 알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고 화가 날 수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불리하게 작동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침묵에 꽂혔다. 그 대답을 한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거기에 좀더 신경이 쓰였다.” 

 

▲ <두 개의 문>을 만든 김일란, 홍지유 감독   © 촬영- 박희정 
 
-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그 때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재판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변호인단이 반대 심문에 필요한 속기록을 받아야 하는데 잘 넘어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레아’ 활동가들에게 녹음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1심 판결이 나고 나서였다. 경찰특공대원들이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거나, 진압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증거로 채택되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 법리적으로 봤을 때도 어이 없는 판결이었다. 이걸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두 개의 문>을 보며 ‘연분홍치마’의 작품에 어떤 흐름이 있다고 느꼈다. 두 개의 문은 경찰특공대원의 증언과 입장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용산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영화다. 첫 작품인 <마마상>도 굉장히 다루기 힘든 주제를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기지촌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이어진 커밍아웃 3부작도 배제된 사람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보인다.
 
“우리도 몰랐는데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면서 우리가 주목해왔던 사고의 방식이나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어떤 흐름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마마상>은 포주이기도 하고 성매매 여성이기도 했던 여성의 삶을 통해 성매매 구조의 다른 측면을 보려 했지만, 첫 다큐이다보니 그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미숙함이 많았던 것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시각을 드러내고자 했을 때, 선정적이지 않고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경험이 쌓인 것 같다. 가끔 그런 시각을 읽어주는 분들을 만났을 때 반갑다.”
 
- 이 작품을 통해 용산참사는 ‘철거민 vs. 경찰특공대’ 구도를 벗어나, 철거민과 특공대원들이 비슷한 위치에 놓이면서 과연 이들의 희생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적과 아군,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며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아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경찰특공대 자체를 (명령을 내린 자와) 분리해내고, 대원들을 상급자와 분리해내고, 그렇게 철거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탑 트윈스>(The Topp Twins: Untouchable Girls, 린 풀리, 뉴질랜드, 2009)라는 쌍둥이 레즈비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촌극을 하며 사회문제를 알리고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거기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은 진짜 어려운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입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도 저렇게 운동하려고 노력하는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죽 계속 고민해온 것 같다.”
 
-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 현장을 담은 칼라TV와 사자후TV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칼라TV 박성훈 PD를 인터뷰한 것도 ‘기록자를 기록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보았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재판 과정에서 그 영상들이 증거로 반복해서 틀어졌다. 그러나 박성훈씨도 말하듯이, 그 영상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다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영상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게 분명 있다. 그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었던 1인 미디어와 대안언론들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그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갈등이 벌어지는 것을 촬영한다기보다, 만에 하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의 목격자로서 그 자리에 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했던 많은 분들이 그 날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 박성훈씨가 사람들이 특종 잡았다고 칭찬하는데 자신은 비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자리에 있는지, 그 마음을 다시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의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09년 사건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상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똥이 튀고 불길이 번지는 화면을 보며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영상을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다큐를 보면서는 분명 그 영상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도 조금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영화를 보았다. 제작 과정에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썼는지.
 
“그건 굉장히 오랫동안 훈련된 것이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그 의미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유지하지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정은 한 이미지 자체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배치나 편집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그런 컷의 길이, 이 장면은 어떤 느낌을 만들게 될까, 그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만들어갔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은 ‘윤리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지난 작품들에 대해 ‘너희가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까 관객들이 눌리게 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강박적 윤리’가 아니라 관객들이 좀더 편하게, 감정을 방어하지 않고 다가가게 하는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음악의 사용이나 스릴러 장르를 가져온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 다큐가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적정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 음향의 사용을 드라마틱하게 한 것은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입장에서 좀더 편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편한 자세로 들어야 하는 게 있지 않나. 익숙한 내러티브 진행이라든가.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에 강요되지 않고 생각의 공간으로 들어오길 바랬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 고민을 하려면 어쨌든 영화적 익숙함이나 이끌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주사 놓을 때 안 아프게 하려고 탁 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참담함에 눌리면 ‘같이 고민해볼까요?’ 하는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서, 이것을 중화시킨다고 해야 하나. 감정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 영화에는 철거민 당사자나 유가족들 인터뷰는 등장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그 25시간 이전의 삶이나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을 배제하려고 한 것인가?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포스터   © 연분홍치마 
 
“철거민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악다구니 하는 철거민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깨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언사로 시작했을 때 모든 벽에 막힐 거라고 생각했다. 성폭력 문제도 피해여성의 순결함이나 무고함 이런 것에 기댈 때가 있지 않나. 하지만 그 여성이 어떤 여성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철거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든 불법 행위를 했든,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항하는 국민에게 특공대를 투입시켜 진압한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 그들의 명예가 나의 명예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랬다. 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갔고, 왜 요구를 했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걸 궁금해하려면 가장 필요한 태도가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이 전제 위에서 하자 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 우리는 아직 진실을 모르지만, 법정에서는 이미 철거민들에게 징역 4-5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두 개의 문>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이 철거민 석방특사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제철거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태도로 용산참사를 보아야 하는지, 이후에 진실규명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철거민들이 너무 많이 추락해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분들이 지금 항소심이 잡혀있다. 그 분들에게도 지금 감옥에 계신 분들과 같은 형이 내려질 수 있다. 이 분들을 또 다시 같은 이유로 감옥에 보내야 하는지, 탄원서를 작성해주시는 것을 부탁 드린다.
 
다큐 개봉을 준비하면서 여러 방식으로 관객들을 소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눴다. 영화에서 사법적 진실규명은 끝났다고 했지만, 사회적 재판은 다시 불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9월 국정조사와 연결시켜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있다. 사과해야 할 사람과 집단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활동들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정치권에도 감시와 압력이 되어주시면 좋겠다.” (조이여울, 2012/07/17)
 

[기사 링크] 두 여성주의 감독이 진실에 접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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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14. 어떤 선거운동

일다와 함께 2012. 4. 14. 15:50

박혜령, 그가 만드는 ‘더 많은 민주주의’
<조이여울의 記錄>(14) 어떤 선거운동 
 
“우리는 장사를 하니까 표출을 잘 못해요. 안타깝죠. 먹고 살아야 되니까. 매스컴 타는 자체가 왜 싫겠어요? 좋기야 좋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부지게 하고. 근데 시선이 따가워요. 원래는 그런 게 없어야 하는데. 요즘은 공무원들도 다 내림이잖아. 어느 줄을 서느냐 이런 거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쩔 수 없이 내 양심 속이고 줄을 서야만 하는.” (울진의 한 시장에서 만난 여성유권자)
 
“박혜령 후보님, 저는 예전에 핵 폐기장 반대운동 했었던 OOO입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는 거 보고, 당연히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에서 일하고 있어서, 대놓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영덕의 한 식당에서 만난 남성유권자)
 
4.11 총선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 지역구에 출마한 녹색당 박혜령 후보를 지지하러 7일과 8일 양일간 선거운동을 함께했다. 기자로서 동행한 것이 아니라, 선거운동원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지역곳곳을 돌며 유권자들과 만난 1박2일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드라마틱하게도, 박혜령 후보가 가는 곳마다 간증과도 같은 주민들의 고백을 접하게 되었다.
 
영덕의 귀농여성, 정치를 다시 사유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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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1 총선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 지역구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여성농민 박혜령씨  
 
작년 10월, 영덕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연대를 호소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시민들의 무관심에 눈물 흘리던 박혜령씨를 처음 본 이후 나는 줄곧 이 사람을 잊을 수 없었다.
 
몇 주 후 영덕으로 내려가 인터뷰를 청했을 때, 박혜령씨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골로 귀농해 17년간 농사 지으며 살아오던 자신이,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앞장 서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련 기사: 에너지문제 “어쩔수 없다 말하지 마세요”)
 
비단 핵발전소 문제만이 아니었다. 지역사회에서 정부와 관공서가 어떻게 토건사업들을 밀어 부치는지,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주민들의 입이 얼마나 가로막혀왔는지, 그 결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얼만큼 훼손되고 실종되었는지, 박혜령씨의 울음 섞인 말 속에 우리 지역사회의 암담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날의 만남을 인연으로 작년 12월부터 <일다>에 “박혜령의 숲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를 시작했다. 개발과 성장, 물질과 성공을 쫓아 위험한 길을 내달려가는 한국사회에, ‘보다 나은 길이 있다’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의 편지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올해 2월 박혜령씨가 지역구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전형적인 새누리당 텃밭인데다가, 전 재산 2천만 원에 불과한 사람인데다가, 지역에서 함께 뛸 운동원이라고는 남편을 포함해 10명 남짓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신호’였다. 박혜령씨는 정치에 대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성공신화, 토건의 개발논리에 밀려 포기하도록 강요되어온 가치, 강자의 논리와 이윤 앞에 더 이상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 차선도 아닌 ‘차악’을 말하는 정치판을 낯설게 보도록 만들어주었다.
 
몸살을 앓는 땅과 강과 바다의 시름을 보고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 사이 한국에도 녹색당이 창당해 박혜령씨는 무소속이 아닌 정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전 처음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다.
 
새누리당 텃밭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선거일을 4일 앞둔 지난 7일, 울진군의회 앞에서 만난 박혜령 후보는 그 사이 눈에 띄게 마른 데다가 목소리도 쉰 상태였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활기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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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 후포항에서 유세 중인 박혜령 후보.  TV 토론회를 계기로 울진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게되었다.  © 일다 
 

“울진에서는 핵발전소 이미 있는 거 어떻게 하겠냐, 그런 체념과 패배의식이 강하게 느껴져서 처음엔 여기 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희망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생활 속 한 귀퉁이에 핵발전소를 두고 사시는 분들이 심적 부담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웠고요.”
 
그래서 ‘더 자주’ 울진에 왔다. 7일 울진시장 부근을 돌며 선거운동을 할 때, 주민들은 박 후보를 따뜻하게 반겼다.
 
울진 지역민들의 태도가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3월 28일 포항MBC 후보자 토론회에서, 박혜령 후보가 핵발전소 부근에서 살아가고 있는 울진주민들에게 배급된 방독면을 들고 나와, 사용기한 10년이 넘은 것임을 폭로하며 동시에 핵에 관한 긴장감을 일깨운 것.
 
“방송에서 울진 분들 이야기한 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는지, 다음날부터 격하게 감정 드러내시면서 반가워하셨고, 함박웃음으로 만나주시기 시작했어요. 일명 ‘방독면 아지메’ 왔다고. 저를 울진주민으로 여겨주시는 것 같고, 너무 감사했어요. 핵 문제 관심 있는 분들은 다 공감하시고, 아이 키우는 젊은 부모들도 녹색당 이야기에 관심 많이 기울이고 계세요.”
 
울진 북면에 있는 핵발전소 지역을 다녀온 것은 더욱 자극이 되었다.
 
“핵발전소 안에서 일하시는 현장 노동자들을 만났어요. 너무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역주민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본인들만 떨어져 딴 세상에서 살고 있고, 함부로 말을 섞지도 않고 얼굴이 굉장히 경직되어 있어서 가슴 아팠어요 우리가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풀어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박혜령 후보는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와) 눈빛을 마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뜻과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주위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일”이었던 지역 사회에, 선거운동을 통해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만 되면 다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주민들이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불안해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주위 살피시고.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는 게 엄청난 성과예요. (선거) 결과로 얼마나 드러날 지 알 수 없지만, (핵발전소 반대운동) 대책위 때와는 다른, 큰 성과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울진, 영덕서 박혜령 후보와 함께한 축제
 
울진과 영덕 곳곳에서 진행된 선거운동은 서울, 대구, 인천 등 각지에서 온 녹색당원들이 함께했다. 다른 정당과는 달리 맞춤형 선거운동복도 없고, 차량과 음향과 각종 준비물을 손수 제작하는 등 ‘가난한’ 녹색당의 선거운동은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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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령 후보 선거운동을 도우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녹색당 당원들은 방독면 퍼포먼스, 저어새 분장,  가면극 연출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쳐 상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 일다 
 

운동원들은 녹색 바람개비를 가슴에 달아 휘날리면서, ‘기호 7번 박혜령, 정당투표는 11번 녹색당’을 알리는 각양각색 피켓을 들고 유권자에게 한 표를 부탁했다.
 
어떤 이는 박혜령 후보의 상징이 된 “방독면”을 설치미술로 제작했고, 직접 방독복을 만들어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거리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멸종 위기종 ‘저어새’로 분장한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길 위의 대안학교’라 불리는 보따리학교 아이들도 바람개비를 날리며 “우리는 맑은 햇빛이 좋아요~”를 외쳤다. 
 

‘부네굿’의 장소익 연극인과, 유인촌 전 문광부 장관으로부터 해임을 당해 대법원에서 승소한 바 있는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등 예술인들도 박혜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울진시장은 작은 축제의 공간이 되었고, 상인들은 “재미있다”, “건전하다”, “기발하다”, “현대적이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제는 무조건 하고 찍지 말고, 좀 바뀌어야 않겠나” 라며, 박혜령 후보 지지의사를 밝힌 상인 김정숙(47)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래낀가 농협 앞에서 (선거운동) 하시길래 좀 보고, 어떤 당인데 저렇게 하느냐, 처음엔 비례대표인 줄 알았거든요. 보니까 7번이시데요? 요즘은 인터넷 들어가면 다 알아볼 수 있으니까. 핵 반대운동, 농어촌 주민들 문제, 교육문제 이런 게 신뢰가 갔죠. 내만 생각하지 말고 후대를 위해서 투표해야 하잖아요. 여자로서 더 믿음이 가고, 진실도 있어 보이고.
 
이제는 어떤 걸 갖다 대도 ‘저 사람 말은 아니다’ 라는 걸 우리가 판단해야지, 이끌려 가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 마음이에요. 후보자들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정확하게 찍자는 거죠. 겉만 보지 말고 깊숙이 속을 보면서. 이것 저것 견줘 보고. 저는 표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갈랑갈랑하게 나는 그런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선거
 
민주주의는 엄청난 세금을 들여 선거를 치른다. 시민들은 투표에 참여하여 대표자를 뽑는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선거는 대표자들의 머리 수로 평가되곤 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민주주의일까.

▲ 울진군 버스정류장에서 유세하는 박혜령 후보.  한 여성유권자가 다가와 농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꽤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다 
 

대표자가 바뀌어도 또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또 바뀌어도,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멀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스템의 한계에 자포자기하는 대신 ‘더 많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선거의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의석 하나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정치적 성과를 얻은 것이리라.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를 통해서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정책과 제도는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지요. 녹색당과 함께 만들어갈 겁니다. 저희는 이미 선거 이후를 준비하고 있고요. 어떻게 지역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지,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박혜령 후보는 이미 선거 이후를 전망하고 있다. 열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했던 반핵 운동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전국에서 힘을 모아주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슬프지만은 않다”고 한다.
 
“농사 짓는 분들과 앞으로 지역에 협동조합이나 여러 가지 자치활동 구상하고 있고요. 문화행사들,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다양한 기획이 나오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선거 사무실을 좀더 폭 넓은 주민들의 공간으로, 몇 평 되지 않지만 수만 명 주민들의 참여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만들어야겠다 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많아요.”
 
예전에 만났을 때 박혜령씨는 영덕이 주민들 사이에 ‘영 덕이 없는 도시’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척박한 곳이라고 했다. 이틀 전 만났을 때는 공약을 하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영원히 덕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이여울 / 저널리스트, 미디어 <일다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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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12. 나꼼수 ‘비키니 응원 독려’ 사건의 정치성

일다와 함께 2012. 1. 31. 21:24

나꼼수는 비키니 사진 뒤로 숨지 말라

<조이여울의 記錄>(12) ‘가카’의 정치만 중요한가 
 
독재국가일수록, 시민들이 정치에 억눌릴수록 민초들 사이에는 정치적 유머가 는다는 얘기가 있다.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대한 대중들의 엄청난 성원도, 이명박 정권 하에 쌓아온 정치적 억압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꼼수’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지만 여러 가지 제도적 법적 장치에 걸려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던 ‘BBK 사건’ 등 “가카”와 관련된 사안들을 본격 언급하면서, 정치에 대한 답답함을 쌓아왔던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나꼼수’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방송내용을 잘 챙겨 듣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송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행자 몇몇이 아슬아슬 ‘버리지 않고 지켜온’ 마초 근성을 언제 드러낼까 싶어 조마조마한 탓도 있다. 그들의 유머 코드는 여성들과 함께 웃는다기보다는, 여성들을 들러리 세우고 웃는 남성집단적이고 분리적인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비키니 시위 독려’ 건은 감옥에 잡혀 들어갈 만한 정치적 사건을 다룬 것도 아니지만, ‘나꼼수’가 여성비하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사건이다. 바로 그 정치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키니 논란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사실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 사이트 ‘1인 시위 인증샷’ 코너에 비키니 차림으로 가슴 부위에 페인팅을 해 사진을 찍어 올린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은 아니다.
 
‘나꼼수’가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만큼, 그 많은 청취자중에 구속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을 구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비키니 시위를 하든 누드 시위를 하든 혹은 어떤 헤프닝을 벌이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이 논란이 되는 것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 있으니 더더욱.
 
문제는 ‘나꼼수’ 방송 내용과 그 멤버들의 태도이다. 21일 ‘나꼼수 봉주 3회’에서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고 한 방송 내용이 문제의 발단이다. 다시 말해 나꼼수와 비키니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이 아닌 것이다.
 
‘나꼼수’는 여성청취자들에게 수영복 응원을 독려함으로써, 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을 안타까워하며 지지를 보내는 여성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슬쩍 유머에 실어 ‘드러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27일에는 주진우 시사인(IN) 기자가 정봉주 전 의원을 면회하며 “가슴 응원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고 접견민원인 서신에 적은 것을 트위터를 통해 밝히기에 이르렀다.
 
정봉주 전 의원의 부인은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바 있고, 지금 이른바 ‘옥바라지’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다. 나는 ‘나꼼수’들의 태도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들은 쿨하고 자유롭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자기들만 자유로운’ 진보 남성상(像)
 
시민사회에는 예로부터 전형적인 ‘진보 남성’의 상(像)이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보기엔 안타깝게도 그것은 마초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진보 여성들은 이들과 연대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들 남성들은 이른바 성(젠더)의 정치, 일상의 정치에 있어선 무지하다 못해 때로는 여성주의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 남성들은 ‘진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에 대해서도 자유분방하게 이야기하고, 일부일처제나 가족에 대해서도 자유를 외치곤 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급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나 혈연주의, 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해치는 성에 대한 이중규범에 대해 ‘정치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주의 진영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 남성들은 성적인 규범으로나 혈통 관계에서나 가족제도에서나 유리한 위치에 앉아 취할 것만 취하고, 불리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겪는 문제와 갈등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성의 영역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버거운 문제들을 풀어가도록 요구하고 있는지, 그 무거움을 모른 채 자기 좋을 대로 말한다.
 
‘가볍게 웃으라고 한 얘기일 뿐인데 너흰 왜 그렇게 무거워? 엄숙주의 아냐?’
‘가카와 관련된 정치 방송인데, 중요한 시국에 작은 일로 진보가 분열음 내서야 쓰냐’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그동안 여성들이 보낸 항의와 경고-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말라, 진보의 “치어리더”로 취급하지 말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 측이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꼼수 부리는 그 머리로 충분히 쿨하게 사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분간 “침묵”하겠다고 한다.
 
성의 정치, 삶의 정치를 배워야
 
<나는 꼼수다>는 작년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수여하는 2011 언론상을 수상했고, 4명의 진행자들이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지만,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시기에 언론계가 주는 격려이자 사회적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꼼수’는 특유의 꼼수로 여론의 힘을 입어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취하였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쫄지마!” 라고 외치며 대중들의 ‘정치적 발언’을 독려해왔다. 지금 많은 여성들은 ‘나꼼수’ 측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꼼수’ 측이 지금까지 보인 반응은,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방송과 방송인이라고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책임을 피해버리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에 숨듯, 비키니 입고 응원해준 여성들의 사진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어 침묵하는 것이다. 이 모습은 사실상 우리가 익히 보아왔고, 전형이 되어버린 진보 남성의 비겁함이다.
 
그래도 2012년이다. 진보 남성상(像)의 전형이 깨어지기를, 오랜 시간 진보 여성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진보 정치를 꿈꾸고 논하는 남성들이 성의 정치, 삶의 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배울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정치는 진보한 것이다. (2012년 1월 31일)

<일다>에 게재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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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5 14:48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2.03.21 18:22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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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법조인들에게 하고픈 이야기

일다와 함께 2011. 12. 15. 11:00


법조인의 ‘엘리트주의’와 법의 공정성

- 예비법조인들에게 하고픈 이야기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학회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년 2월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여러분과 만난 지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네요. 돌이켜 그 짧은 만남을 떠올려보면, 사법연수원의 독특한 분위기-사회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학교라고 하기도 뭐한-와 더불어 그 속에서 ‘배움’에 열려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인권법학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금방 알 수 있었지요.

1년간의 학회 활동을 정리하고 알리는 소식지에 자유로운 주제의 공간을 마련해주셨으니,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법조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여러분께 해보려 합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호의를 가지게 된 법조인들이 몇 분 있습니다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법조인 집단에 대해 그리 좋은 평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우스개로, ‘변호사 백 명이 한강에 빠지면 강은 더러워지지만 나라는 깨끗해진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의’ 실현과 관련 있어야 할 집단이 돈에 양심을 팔면, 그 악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를 풍자하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정계나 재계의 실세, 또는 지역 유지 등에 얽힌 권력비리에는 검사들이 연루되어 언급되는 경우가 계속 있어왔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검사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나는 그런 이미지와 실제 현실을 비교하면서 그 평가가 타당한지 그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즉 주목 받는 집단으로서 법조인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조인도 직업인들이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요. 그러나 법조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상당히 높은 대우를 해줍니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군에 해당하고, 사회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들 집단에 대한 풍자나 비판의 기저에는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을 ‘가진 자’를 향한 질시도 담겨있지만, 그만큼의 기대도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법조인의 양심이 우리 사회의 청렴도나 민주주의 성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 일반의 생각이 법조인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시선을 받는 위치에 놓인 법조인들의 태도와 삶은 과연 어떠할까 이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이 보내는 이 ‘특별한 시선’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듯 보이지만, 그런 시선에 장단 맞추다 보면 어느새 평상심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럽게 되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일상적 삶, 즉 내면과 사회적 지위나 역할, 즉 외면이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그만큼 인간은 행복에서 멀어진다고 심리학에서는 말하지요.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엘리트주의를 경계했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강력한 엘리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들 내부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엘리트주의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위험한 것이지요. 다른 집단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배움에 있어서도 닫혀있게 만들며, 세상을 좁게 사는 방식입니다. 물론 평등에도 위배되고 말이지요.

수년 전에 법정 취재를 갔다가 보았던 장면입니다. 아마도 성폭력 관련 사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날 법정에는 증언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증언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었지요.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 갑자기 재판부가 순서를 변경했습니다. 마지막 차례였던 증인이 첫 순서로 증언을 하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요. 그것은 그 증인이 대학교수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수씩이나 되는 분이 법정에 출두했으니, 시간 절약하실 수 있도록 판사들이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당사자인 증인을 비롯해 함께 갔던 일행과 법정을 나와서, 판사들의 엘리트주의는 정말 못 말리는 수준 같다며 그 원인 분석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과연 학벌이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증언 순서를 바꾸는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혹자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태도가 법조인으로서의 역할과는 별 연관성이 없다는 듯,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의 판단이 지식습득으로서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 실재가 그런가요? 법조인 개인의 가치관과 태도는 그의 사회적 역할 수행과도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지요.

모 대학 출신자들 눈에는 해당 대학 출신자들밖에 뵈는 게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엔 신분제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 많은 경우 대학 인맥을 비롯해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 테두리 안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학벌이 좋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 존재를 상상도 못했거나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이야기인지 유리한 이야기인지도 모른 채 변호인이나 검사의 심문에 끄달려 가는, 그러니까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도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사람들, 법정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그가 원고든 피고든 간에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스스로를 변호할 줄 아는 사람들, 혹은 비싼 돈을 들여 승소율 높은 변호인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 역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 사회를 통찰하는 눈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잘 풀어내는 사람들을 선호하게 됩니다. 또,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법정에서 똑 소리 나게 발언하는 당사자들이나, 용감하게 자신의 문제를 사회 이슈로 만들어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손을 잡고 춤이라도 추고 싶어지지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는 선호하지 않게 되지요. 말 잘해주는 취재원이 필요하지, 설사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설명을 잘 못하거나, 간혹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길 하거나, 말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는 신뢰를 보내기가 어렵지요. 우리는 직업상 말과 글이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의 긴 생애 중에서 잠깐 만나고 말뿐이니까요.

그러나 똑똑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렵고 실수도 많은 바로 그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더 받아야 할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법의 공정성, 언론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조인과 언론인들이 자신의 눈높이를 조정하고 맞추어갈 (배워갈)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겠지요.

이를 테면,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소송을 벌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판사들에겐 충분히 있을 수 있으나, 개개인의 일상을 전쟁과도 같은 상태로 몰고 가는 ‘소송’이란 것이 당사자들에겐 별 일이 아닐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검사를 만나고 온 이들은 ‘검사들 목 부러지겠다’ 이러지요. 거만한 태도로 사람을 내려다본다는 뜻입니다. 심문을 하는 검사의 역할상 기 싸움에 능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몸에 익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건과 성과만 보일 뿐이지요. 언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종에 목 매며 경쟁매체에 신경 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물론 나는 법조인들 중에서 특히 ‘인권’을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관대하고 통합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엘리트주의 사회에서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엘리트의식에서 스스로 해방되기란,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업무 스트레스가 많더라도, 법이 누구를 위해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잊지 않고 누구에게 공정하지 않은지, 누구에게 다가가지 못하는지, 나의 역할은 무엇일지 언제나 생각해주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앞으로도 늘 새로운 배움에 열려있어서, 삶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는 일이 여러분의 평생의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이여울
/ 저널리스트, 미디어 <일다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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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그 시선이 낯설지 않을 때까지

일다와 함께 2011. 12. 3. 23:02


- <장애여성네트워크 5주년 역사쓰기>에 기고한 글

장애여성, 그 시선이 낯설지 않을 때까지
 

장애여성과 관련한 사건이나 이슈를 기사로 다루다 보면, 의도치 않게 장애여성의 이미지가 한 쪽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억울하거나 폭력적인 사건의 피해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요구자로서, 그리고 차별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당사자로서 말이지요.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거기서 그친다면 아쉽겠지요.

 

2010<일다>1년간 연재된 장애여성네트워크 필자들의 칼럼 애여성의 몸 이야기는 그러한 아쉬움을 채워주었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민감한 주제이고
, 이런 내용이 매체에 실릴 때면 선정적인 기사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지요. 그러나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는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가 -그러나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듯 다가왔고, 그 내용은 낯설면서도 이질적이지만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장애여성이라는 범주는 임의적이지요. 자신이 장애여성이라고 해서 다른 장애여성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여성이 말하는 장애여성 이야기,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장애여성이라는 범주의 폭을 넓혀주고, 제일 먼저 장애여성 당사자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더불어 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연재되고 있는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도 다섯 명의 필자가 각자의 색깔로 영화와 드라마, 연극, 책 등의 매체를 읽었을 때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뜻 장애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품을 장애여성의 경험으로 읽어내는 작업은 신선하면서도 통쾌한 느낌을 주기에, 독자들의 호응도 높습니다.

 

장애여성들 간의, 혹은 여성들 간의 다르면서 같은, 혹은 같으면서 다른 경험과 시선들이 담겨있어서,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의 창을 열어주고 있지요. 레즈비언 드라마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을 보고 장애에 대한 커밍아웃을 떠올린 다비다님의 칼럼(타인의 정체성이 아직도 불편한가)에 대해, 레즈비언 독자가 공감하며 장애여성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평하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은 매우 즐겁답니다.

 

<일다>에 실리는 글 외에도, 장애여성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글을 생산하고 있지요. 장애여성네트워크의 글쓰기 작업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이에요. 아마도 글을 쓰는 이들은 내가 글을 잘 쓰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인가? 고민하겠지요. 저는 글 사이사이 그런 고민의 시간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조차 반갑게 생각됩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시선이 낯설지 않을 때까지, 장애여성네트워크의 글쓰기 작업이 더 다양하게, 더 많이 시도되기를 바라며 큰 응원을 보냅니다. (2011년 12월)


조이여울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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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1만인 건립위원이 되어주세요.

일다와 함께 2011. 8. 1. 17:11

 

전쟁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에 대해 알리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며, 후세에 평화와 역사교육의 산실이 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 자락에 부지를 확정했다. 올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춰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만인 건립위원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원래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그 역사적 의미에 맞게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건립될 예정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 등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독립운동 성지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나? 이것이 한국 사회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할 명분으로만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관련 기사1: 광복회의 ‘위안부’ 박물관 백지화 요구에 대해 (2007/06/07 일다)
관련 기사2: 박물관 착공식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를 보고 배우길 (2009/03/09 일다)
관련 기사3: 성미산에 둥지튼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2011/08/01 일다)


*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1만인 건립위원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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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11. 오월의 기억 그리고 기념

일다와 함께 2011. 5. 18. 23:51
어머니의 배는 지금쯤 통증을 멈췄을까
<조이여울의 記錄>(11) 5.18 민주화 운동을 기리며 
 
어릴 적의 기억이다. 온 가족이 광주에서 해남으로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 길에 올랐다. 버스는 서너 대가 같은 방향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앞의 버스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휴게소에 정차하더니 줄줄이 1시간이나 지체하고 말았다. 승객들의 불만이 제기되었고, 그때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래서 전라도는 안 된다니까.”
 
그러자 승객 중 또 다른 사람 몇몇이 그 말을 받아서, 잠시지만 버스 안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장이 되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전라도사람’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어른들의 ‘지역’이야기, ‘정치’이야기는 뜬금없었지만, 한편으로 뭔가 마음 아픈 것이 느껴졌다. 경상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경상도사람들은 ‘이래서 경상도는 안 된다니까’ 하는 식의 자조 섞인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버스 연착 문제가 정치이야기로까지 비화될 일도 없었을 테고.
 
나의 친인척들이 포함되기도 한 ‘전라도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았고, 정세에 관해 실제로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기도 했다. 때로 별 연관도 없는 것에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경우엔, 피해의식이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빨갱이 폭도들의 난동’ 쯤으로, 많은 광주사람들의 죽음과 끔찍한 고통이 ‘유언비어’ 쯤으로 취급 받던 때였다. 전라도사람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한 국가 안에서 철저히 매도되고 고립된 지역이 있었다는 것.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일반화되어 가는 때에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만, 사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해당 지역사람들에게는 어떤 경험이었을까. 그 ‘한’은 개개인의 내면에, 그리고 외부를 향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을까.
 
광주 민주항쟁 20주년 즈음에 알게 된 한 대학생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자기 어머니는 배가 아프다고 하신다고 얘기했다. 자신을 임신해 만삭인 배로 5.18을 겪었던 어머니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김없이 5월이면 그 해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몸을 통해 재생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접한 후로, 해마다 5월이면 나의 머리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1980년 광주에서 태어난 아기는 서른이 넘었다.
 
이제는 대중들도, 그 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만 가지면 정보를 접할 수 있다. 5.18은 폭동이 아닌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4.19혁명과 마찬가지로 달력에도 기념일로 기록되었다. 1990년대 후반 최초의 정권 교체와 사회의 변화는 분명 광주사람들, 그리고 전라도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었던 고립과 소외를 조금씩 회복시켜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궁금해진다. 그 친구의 어머니의 배는 지금쯤 통증을 멈추었을까, 유가족들은 그 슬픔에 얼만큼 위로를 받았을까, 광주사람들은 ‘피해의식’ 혹은 ‘지역감정’이라 불릴만한 심리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주로 ‘기념식’에 초점 맞춰지곤 하는 5.18은 단 몇 일간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봉인되었던 기억, 풀지 못한 실타래를 조금씩 매듭지어 고통스러운 경험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어야 하는 몫이 우리에게 있다.
 
아마도 이 순간, 이 자리에서 5.18을 ‘기념’하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 그 해답과 힘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반공이데올로기 앞장세워 정치를 해온 세력들이 고스란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국민들은 전쟁과도 같은 희생을 치러 얻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쉽게 망각하곤 하지 않은가. 이것이 당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재생하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일다> 2011년 5월 18일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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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역 유흥업소 여성 7인의 죽음…‘성 산업’의 실체와 접대문화

일다와 함께 2011. 4. 8. 12:24
유흥업소 여성들의 죽음과 관련한 보도를 준비하다가 이틀전 악몽을 꾸었다. 내 마음 속에 그토록 무섭고 잔인한 심상이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하루를 멍하게 보냈다...
각 사건에 대해 형사적, 행정적 해결을 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고, 다만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고 현재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나누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잇단 유흥업소 여성 자살과 ‘성 구매자’

포항 대책위, 더 이상의 희생 안돼…핫라인 개통 
 
지난 3월 24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27세 여성이 원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작년 7월 초, 나흘간 세 명의 여성들이 연달아 자살한 바로 그 지역이다. 올해 1월에도 대잠동에서 23세 여성이 자살해, 인근 경주까지 포함해 <포항지역 유흥업소여성 자살사건>은 연이어 7건이 줄을 잇고 있다.
 
자살의 이유로 밝혀진 것은 사채, 선불금, 빚 보증 문제에 얽힌 불법행위, 사채업자와 업소 주인의 협박, 성매매 강요, 폭언, 모욕, 괴롭힘 등이다. 이중 어떤 이유가 더 결정적이었는가는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7명의 젊은 여성들이 ‘성 산업’의 착취구조에 시달리다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일곱 여성들의 죽음이 말해주는 ‘성 산업’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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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업 착취구조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 (2010년 7월 25일)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이번 사건의 경우, 죽은 여성은 업주로부터 받은 모욕과 성매매 강요 등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겼다.
 
이처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주검이 되어 실려나가자, 포항뿐 아니라 전국의 63개 여성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발족해 대응활동에 들어갔다.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포항 대책위’)는 3월 30일 발족과 더불어, 고인이 된 여성이 일했던 유흥업소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힘든 선택으로 그 길에 들어선 순간 차마 되돌릴 수 없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반복되는 사채고리와 업주들의 횡포 속에 더 이상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할 이유도 희망도 없는 삶. 그 악순환을 끊는 것이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애통합니다.”
 
추모제에서는 脫성매매 여성들의 자조모임인 ‘뭉치’에서 작성한 추모의 글이 낭독되었다. 티켓다방, 집결지, 룸살롱 등을 전전하며 성매매를 경험한 당사자들은, 자살을 택한 여성들의 죽음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화려한 간판 뒤 소리없는 절규,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성매매는 불법 행위이므로 여성의 성을 매개로 한 ‘선불금’은 “갚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오고 법적으로 여성들이 구제를 받게 되자, 유흥업소 업주들은 갖은 편법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들에게 직접 사채를 쓰게 하고, 연대보증을 서게 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드는 등 꼼짝달싹 못하게 옥죄는 것이다.
 
여성들은 돈을 벌어 빚을 갚으려 하지만 엄청난 사채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고, 유흥업소 측에서 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정한 운영방식에 따라 자기 몫의 이윤을 챙기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이 업소에서 저 업소로 팔리고 또 팔리면서 ‘성 산업의 덫’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7명의 여성들은 깊은 절망에 빠진 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포항 대책위’는 이들 여성의 죽음을 “여성인권과 관련한 중대한 사건”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하고 있다. 4월 6일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공동행동의 날> 행사에서는 결의문을 통해, “주변에 널려 있는 홍보 광고물”과 “화려한 성 산업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들의 절규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포항 대책위는 포항시 측에 “업소들의 영업 방식과 운영 행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행정 조치를 촉구했다. 또한 경찰과 검찰 측에도 사채업자뿐 아니라, 유흥업소 업주, 그리고 배후에 있는 유흥가 “조직”의 실상을 드러내어 성 산업의 착취고리를 밝혀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밀보장 ‘핫라인’ 통해 빚, 건강문제 지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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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에는 포항지역 “유흥업소에 관한 모든 것”을 제보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심리 상담과 빚 관련 법률지원, 건강 문제에 대한 의료지원을 아낌없이 해주는 365일 ‘핫라인’ 010-2811-0365이 개통됐다.
 
신박진영 ‘포항 대책위’ 정책위원장은 “(죽은) 여성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믿었기에 자살을 택한 것”이라며, ‘핫라인’을 개설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핫라인’은 대구여성인권센터, 부산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등 이미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상담과 의료, 법적 지원을 해 온 전문기관들이 연계해있어, 이용자들은 다각도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박진영 정책위원장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정말 무료로 도와줄까? 하며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보가 국가에 기록될 거라는 업주의 거짓말을 믿기도 한다. 또 이 사람들(업주)을 배신하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지금까지 상담 요청이 온 사례들은 거의 대부분 법적 문제를 해결했고, 비밀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접대문화, ‘성 구매자’ 인식 바뀌어야
 
젊은 여성들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성 산업의 착취구조’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책임을 묻고 있는 대상은 업주와 배후의 조직, 사채업자, 행정당국 등에 제한되지 않는다.
 
신현정 포항여성회 활동가는 “전체적인 성 산업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구매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건이 발생한 포항 상도동, 대잠동 일대는 룸살롱, 클럽 등 100여 곳이 밀집해있는 지역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양복 입은 ‘성 구매자’들이 오가는 곳. 특히 기업의 접대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신현정씨는 유흥업소 여성들의 잇단 죽음은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는 사회, 뭐든 살 수 있는 사회”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 산업의 착취고리를 끊으려면 구매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 안에서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음을, 불법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항 대책위원회’는 “여성의 몸을 이용하는 기업의 접대행위”를 규탄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일”에 사회구성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일다> 2011년 4월 8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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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9.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끝

일다와 함께 2011. 3. 11. 16:05
여성주의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는 동력
<조이여울의 記錄>(9)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4 

세상이라는 큰 벽에 부딪힐 때

 
여러분은 편지에서, 여성주의자로 언론활동을 하는 것의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무력감 뒤에는, 지금까지 활동해온 내용과 시간에 대한 당혹감이 뒤따른다는 것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최근에 나는,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통장 잔고도 없고, 10년 전에 비해 기력도 한참 딸리는 데다가, 발돋움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반면 세상은 쳇바퀴 돌고 있고, 실제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더욱 부각되어 다가왔습니다. 21세기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돈이 정치를 하게 되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 커져가는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바보들의 대행진을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것이 바로 무력감이겠지요.
 
여러분도 이미 느끼고 있듯이, 세상은 정말 그 흐름을 바꾸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요. 우리는 현실을 인식해야만 하니,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사회운동권 특유의 착각상태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 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더군요. 어쩌면 내가 너무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고요.
 
몇 달 전 서울에 있는 한 대학건물 안에서 잘 알고 지내던 취재원을 만났습니다. 미리 약속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대학이란 공간이 퍽 낯설더군요. 마치 어떤 큰 회사건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모습도 꼭 회사 인턴사원들 같아 보이고 말이지요. ‘정말 각박하구나, 세상 심란해졌다’ 싶었죠. 그리고 이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일다>를 꾸려가고 있는 나는, 사회에서 보면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지요. 우물 밖 사회를 조망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다>가 작은 우물일 뿐이라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이야기입니다. 회사 같은 분위기의 대학건물에서 만난 취재원과의 대화는,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일다>는 사회라는 넓은 공간에서 작은 하나의 우물일 뿐이고, 그런데 바로 그 우물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내가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었지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일다> 독자위원회가 결성된 것도 그 한 가지 예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튀어나왔을까 싶더군요. 대부분 20대~30대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들인데, 정말 다양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독자위원들은 <일다>가 소중하다고 평해주고, 매달 정성스럽게 모니터링을 해줬습니다. 이것이 <일다>의 힘이구나 싶었지요. 독자들과의 만남은 기자에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세상에 가려진 채 방어적으로 매체를 대해야 했던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일다>의 기자들과 만날 땐 안심하고 편안하게 대한다는 점도 기쁜 일입니다. 그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하고 배우고 참여하는 기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예전에 나는 에너지를 쏟아 부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사회에 뭔가 공헌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실제 그렇기도 하지요. 그러나 나는 이제야 비로소, 독자들의 존재가 있기에 나의 글도 있고 내 역할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언제나 독자들이 내게 발언권을 주었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주었구나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지면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배우고, 지켜봐 주고, 성장하는 일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연대에 대하여

석순의 편지에서 ‘연대’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함께 하자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얘기, 하지만 여성주의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작업에서는 스스로 인색했던 것 같다는 얘기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소외되어있거나 취약하다고 생각될 때 더욱 그러하지요. 손 잡을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인색해집니다.

 
나는 좀 우스개 소리로 ‘뜻을 모으기는 쉬워도 성격을 맞추기는 어렵더라’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이 말은 또,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환경이 다르다’는 얘기로 치환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이 있고, 때문에 가야 할 길도 다를 거예요. 사람이 변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삶은 변화하게 마련이고, 그 변화를 두려워하고 미리 제약할 필요는 없지요. 언젠가 또 옆에서 볼 것입니다. 다른 위치에서 말이지요.
 
나는 석순과 같은 매체를 볼 때에도, 그 매체의 내용뿐 아니라 매체를 만들어가는 구성원들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전과는 달라진 점인데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씨앗’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어디에서 싹을 틔우든 그것이 언론인으로서든 여성운동가로서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사람이 소중합니다. 그것은 나의 선배들이 나에게 보내준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네가 어디에서 있건, 꼭 <일다>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서건 그 빛을 발하고 있을 테니까’ 라고 말해주었지요. 예전엔 미처 그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것은 어딜 가나 훌륭한 활동을 해야 한다거나,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부각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에요.
 
우리의 인생은 계속됩니다. 인권도, 평등도, 삶의 연속선 상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개개인의 삶이 중요합니다. 누구와 일하며, 어떤 이들과 교류하고 살 것인가의 문제에서 ‘연대’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통장 잔고보다 친구들이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수긍하는 사실이고,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 한 명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요. 그러나 영원히 같이 하자고 맹세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다시 만날 수도, 다시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계속 만나게 되고 말이지요.
 
나는 여성주의가 여성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내가 찾고자 한 여성주의는 언제나 ‘자유’와 관련한 것이었으니까요. 어떤 삶의 모범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그런데 저렇게 살아도 괜찮아’ 이런 식으로 여성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고, 그럼으로써 확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조각보 이미지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평화롭게 연결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모습이 됩니다.
 
지난 시절 함께 여성운동을 했던 동료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함께 일하는 이도 있고, 취재원으로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일도 있지만, <일다>의 독자로만 있어주어도 고맙고 즐겁습니다. 지켜봐 주니 고맙다, 옆에 있어주니 힘이 된다,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일다>의 저널리즘을 알리고 교육하는 일을 해나가려 해요. 그리고 나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대학매체를 꾸려나가는 여러분들과 지금 이렇게 편지를 나누는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과, 우리 사이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연대의 끈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만 긴 편지를 마무리할게요. 우린 또 만나게 될 거예요. (끝)

<일다> 2011년 3월 10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50

* 이전 글 보기>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온 편지 

* 석순에 보낸 편지(1) 여성주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 석순에 보낸 편지(2) 여성과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권을
* 석순에 보낸 편지(3) 언론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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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자연씨의 죽음 앞에서- 2009년 3월 일다 시론

일다와 함께 2011. 3. 9. 21:17

‘성상납’이 아니라 인신매매다
[시론] 故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조이여울/ 2009년 3월 18일) 
 
가끔씩 한국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사회이고, 여성운동의 발전과 함께 여성의 권리가 빠르게 신장된 사회가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故 장자연씨의 죽음에 얽힌 사건들도 이러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왜 아직도 대한민국의 ‘어떤 여성’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인 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채 살아가고, 죽음으로써야 그 사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일까요. 장자연씨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적 착취구조, 대상이 아닌 ‘고리’를 끊으려면
 
소속사 대표로부터 술자리에 나가고 접대를 하도록 강요를 받았고 폭행을 당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문건이 장자연씨 자필로 확인되었습니다.
 
연예인을 사이에 두고 매니지먼트사와 일명 ‘리스트’에 해당하는 거물급 인사들 간의 거래관계에 대해, 흔히 ‘성상납’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용어는 현실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공정한 계약관계 속에 묶여있는 연예인들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성상납’이 아니라 성적 착취이며 ‘인신매매’라는 용어가 더 적절합니다.
 
이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적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 일쑤입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상납’이라는 개념과 심지어 ‘공생관계’라는 인식 속에서, 연예인들의 지위와 이미지는 더욱 하락하게 되고 그만큼 성적인 폭력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이 ‘연예계의 더러운 뒷사정’ 정도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해자 혹은 가해집단이 피해자의 생존권을 쥐고 있을 경우, 인권침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됩니다.
 
일례로, 지난 해 KBS가 충격적인 ‘스포츠 성폭력의 실태’를 보도함으로써,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선뜻 피해를 고발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해자가 학생의 목줄을 쥐고 있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집단이 학생의 장래를 좌지우지할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는 연예인들은 사회의 모욕적인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스스로 검은 고리를 증언하고 끊어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의 인신매매 성격과 성매매의 구조를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 비리 척결하듯 정부가 조치 마련해야
 
우리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더 이상 동종업계의 ‘관행’이라고 이야기되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유력 인사들의 ‘리스트’가 거론되면서, 한 켠에선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깊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경찰과 검찰, 정부에 대한 신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직접 쓴 문서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장씨가 문건을 쓰게 된 이유와는 별도로 연예 매니지먼트를 둘러싼 잔혹한 범죄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불공정 계약에 따른 인신매매의 구조, 성적인 착취와 매수의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그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 매니지먼트 사와 방송과 언론, 대기업에 얽힌 고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법과 제도로 엄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그칠 문제도 아닙니다. 방송시장에서 연예인, 그것도 신인여자연예인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약자의 입장을 배려한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해 보입니다. 공무원 비리를 척결하듯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벌과 단속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는 바로 예방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공정하지 않은 계약관계는 그 자체로 연예인에 대해, 특히 여성연예인에 대해 인권침해를 가져옵니다. 절대로 시장에 맡겨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인-노예로 비유되는 연예인과 소속사와의 현 권력관계를 합법적인 중개사와의 관계나 일반 회사의 노무관계 수준으로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공정하지 않은 거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성적인 착취가 공생관계로 미화되지 않는 사회, 수사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이제 고인이 된 장자연씨의 명복을 빕니다.   일다 2009년 3월 18일 보도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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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일다와 함께 2011. 3. 4. 14:08

언론의 영향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이여울의 記錄>(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외된 이를 대변하는 비주류언론의 딜레마
  
석순은 여성주의 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지요? 영향력이란, 내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길 원하지요. 언론활동이란 것 자체가 널리 알려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다> 창간 때부터 줄곧 고민해왔지요.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다.

독자 수가 적은 매체는 보도내용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지 않고, 독자 수가 많은 매체는 실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보도는 현장에 즉각 반영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다>의 경우도 몇몇 보도기사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사실 <일다>의 기사들은 보도된 이후에, 큰 언론들이 해당 아이템을 다시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지요. 그런 일들은 창간 이래 줄곧 있어왔어요.
 
헌데 비주류언론의 기사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된 내용이기에, 큰 매체들은 그 내용을 가져다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발굴한 기사인양 행세하기 쉽습니다. 마땅히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 할 때조차도, 한국언론들은 ‘관행’이란 미명하에 정직하게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지요. 재정도, 인력도 열악한 곳에서 애써 발굴한 기사가, 규모가 큰 조직에서 일하는 정규직 언론인들에게 손쉬운 기획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 되니까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같은 주류언론과의 관계망도, <일다>의 관점과 보도내용이 더 넓게 퍼져나가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수의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일다>가 발굴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슈들을 알아봐주는 독자들도 항상 있답니다. <일다> 애독자의 상당수가 기자들, 작가들, 편집인들, 출판기획자들이라는 점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체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매체의 ‘영향력’과 관련한 나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해요. 사실상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을 담는 <일다>의 기사들이 이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요. 정성을 기울여 소중한 기사를 작성했건만, 이 울림이 어디까지 닿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고 마는 것인지 답답할 때가 왜 없겠어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부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국에 연락해 기사거리로 가져가라고 제보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로 10여 년간 일해온 지금,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매체의 영향력일까?
 
이를 테면 TV 방송은 영향력이 크지요. 그러나 과연 누구에게 무슨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방송의 어떤 프로그램 혹은 어떤 보도가 훌륭하다고 해서, 해당 방송이 광고나 다른 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롭게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요. 방송은 광고와 시청률에 의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외부적으로 검열이 따릅니다. 더구나 매체가 조장하는 소비와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많은 왜곡된 이미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미디어를 볼 때, 그 양면성을 함께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큰 매체를 통해서는 보도 내용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지요. 그러나 다루고 싶은 이슈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사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광고수주와 구독률(또는 시청률)이라는 무시 못할 물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학력도 높은 편인 언론인들의 지위와 신분이,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문제를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TV 뉴스에선 왜 노동 이슈를 그다지 주요하게 다루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선 방송국 기자와 직접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뉴스에서 노동 사안을 ‘노사가 싸운다’ 정도로밖에 다루지 않는지, 지금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중요한 시기에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지 물었지요. 기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라는 점도 있지만, 뉴스의 특성상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임금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엔 내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일하는 여성주의자 언론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지만 정작 기획회의 때 꺼내지도 못하는 사안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분야에서, 동의하지도 않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게다가 여성주의가 끼어들기엔, 언론계라는 노동현장은 아직도 상당히 남성중심적이지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그다지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 또한 개개인의 여성언론인에게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규모가 큰 매체에서 기자나 피디로 일하는 것이 덜 중요하고 의미가 적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성주의자가 어디에서 일하든, 그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지지하지요. 다만 언론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과, 여성주의 언론인으로서 ‘영향력’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 매체에서 하찮은 취급 받으며 묻히는 기사가 여성주의 저널에선 빛이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뤄진다 해도 한두 번 부각되고 말아버리지요. 그나마 선정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말입니다. 반면, 장애여성 이슈가 <일다>에서는 메인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매체에 실리는 것이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일까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지속적인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뉴스가 돌아가는 풍토를 좀 보세요. 아무리 큰 이슈도 하루 이틀밖에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하루 반짝”, 이게 한국의 뉴스를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요? 차별과 평등의 문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 생태적인 관점, 소수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이런 기사를 꾸준히 언제나 볼 수 있는 매체로서 <일다>는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고 그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언론의 영향력은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회에서는 “충성도” 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나는 “애정도” 라고 말하곤 하죠. 알짜배기 독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즉 독자들이 매체를 얼마나 아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다>는 독자들의 “애정도”에 있어선 손에 꼽히는 매체일 거라고 자부한답니다.

 
원고료도 거의 없는 <일다>에 흔쾌히 글을 기고해주는 필자들이 있고, 다른 매체 기자들과는 인터뷰하지 않지만 <일다>의 요청에는 기꺼이 응해주는 취재원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는 곧, 독자들이 <일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도 영향력 아닐까요?
 
여성주의 저널의 운영, <일다>의 재정
 

▲ 기사 모니터링과 후원캠페인 참여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일다 독자위원회.

영향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여성주의 매체는 ‘재정’의 문제에서 너무나도 큰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석순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성주의 언론의 존립 자체와 관련이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드리려 해요.

 
2003년 <일다>가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이 너무도 순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름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요? 나는 그보다는 ‘모래 위에 성을 쌓았다’는 비유를 더 즐겨 하지만 말입니다.
 
광고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이 되는 언론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인 <일다>는 구독료마저 없는 것입니다. 언론이 구독료도 아닌 ‘후원’으로, 광고 없이 유지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널의 운영을 책임져야 했던 나에겐 수년 간 너무나 버거운 짐을 얹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구나 창간 초기엔 편집장이면서 동시에 운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다>의 운명은 바람 부는 등잔 위의 불꽃이나 다름 없었지요.
 
대부분 인터넷 신문들, 소위 ‘남성들 조직’에 비하면 <일다>의 시스템은 소꿉장난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인터넷신문 관련한 실사를 나왔다가, <일다>의 재정상황을 확인하고는 거의 기절을 하셨지요. 바깥에서 보는 <일다>는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규모 있는 언론으로 보였는데, 매체가 운영될 수 있는 바탕인 재정 수준이 동호회 내지는 대학동아리 수준이었기 때문이에요.
 
재정이 약하고 운영이 부실한 관계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없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심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러던 것이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편집장을 맡게 되고(운영자와 저널 책임자가 분리되고),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준 덕분에 <일다>는 2009년에 유한회사(주식회사의 작은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미디어일다를 설립하고, 보다 튼튼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무 명의 사원(주주 개념)이 함께 조직을 세운 것인데, 상법 상으론 투자의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일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좀더 큰 후원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사실상 <일다>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은 돈이라기보다 애정과 정성입니다. 미약하게 세상에 태어난 작은 불꽃이 꺼질까 봐, 금이야 옥이야 지켜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그 마음이, 그 정성이 <일다>를 지금까지 있게 한 힘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300여명의 ‘일다의 친구’들. 후원금액으로 따지자면 매체를 굴러가게 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지만, 나는 친구들 명단을 볼 때마다 <일다>에 매달 기부를 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감탄하곤 합니다. 수십만 독자 수를 내세우는 매체들과 비교해 너무 약한 외침이라고, 혹은 수천 명이 큰 액수를 기부하는 조직들에 비해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니까요.
 
지금 <일다>는 박희정 기자가 3대 편집장을 맡아 저널을 책임지고 있고, 편집위원들과 통신원, 필자들이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윤정은 기자는 출판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필자 최현정씨의 책 <조용한 마음의 혁명>을 발간했지요.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함수연씨도 함께, 아주 작은 규모지만 (유)미디어일다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시기랍니다.
 
물론 아직도 <일다>는 고용을 보장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은 액수의 임금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론 일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구성원들이 매년 논의하고, 또 논의하고 있어요. 머리를 맞대면 뭔가 뾰족한 수가 하나씩 나온답니다. 제가 휴가를 얻어 과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다> 2011년 3월 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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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일다와 함께 2011. 2. 27. 14:23
여성과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권을
<조이여울의 記錄>(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공적인 장 마련하기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관한 ‘여성주의 저널리즘’의 태동과 역할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지요. 그럼 이어서 여성주의 저널의 특성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주의 매체는 여성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적인 장을 마련해주고, 공감의 힘을 바탕으로 위로와 지지를 보냅니다.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어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이 비단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조명이 필요한 인권 사안을 다룰 때, ‘성별을 따지지 않는 것’이 또한 여성주의입니다. 여성들이 공적인 장에서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크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펼쳐 제공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에요. (사적인 대화는 어쩌면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다>를 통해 다양한 필자를 발굴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여러분이 편지를 통해 이야기한 대로, 여성주의 저널에서는 특히 당사자들의 경험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다른 곳에선 들어주지도 않고 쉽게 왜곡했던 이야기들을 존중하지요. 그 동안 차별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할 곳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고 공감함으로써 지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감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연애로 미화되기 쉬운 ‘스토킹’에 대해서, 피해경험자가 직접 얘기하면 설득력이 있지요. 동거가 이슈화되었을 때도,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얘기해버리면 그게 호들갑 떨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지요. 낙태 논쟁에서도, 인공임신중절의 경험이 무엇인지 담담히 기술한 글을 접하게 되면 살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무색해질 때도 있습니다.
 
전문성 부여하기
 
여성주의 저널은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여성들 혹은 소수자들이 전문가로서 발언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줍니다. 자신이 직접 겪고 체득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꼭 어떤 직위나 학위 또는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선 많은 사안에 있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되어야 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묻혀버리곤 하는 아이러니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물론 전문가 집단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너무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 전문가 집단의 경험이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과 동떨어져 있어서 해당분야에 대해 오히려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또 당사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이야기해줄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여성주의 저널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요. 평등하지 않은 사회이니까요. 그런데 그 비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가부장적인 제도나 시스템에 대해 날카롭게 날을 세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바탕에는 다른 대안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실행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바탕이 없을 때 비판은 소모적이 되기 쉽지요.
 
나는 제도적 불평등이나 차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글이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 더 환영 받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비판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의 선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대부분의 기사는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끌기 위해 선정성을 조금씩은 내포하고 있지요. 하지만 나의 경험상, 매체의 보도가 선정적인 만큼 그 내용은 허망해집니다. 과연 이것이 내가 바랐던 반응인가?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좀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론의 비판 기능은 생명력이지만, 대안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입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제시할 때, 우리의 지향은 훨씬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것이 비판의 대상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새로운 언어 만들기
 
편지 내용에서 ‘언어 사용’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내용,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짧게 설명하기가 어렵지요. 동성애, 성 정체성, 호모포비아와 같은 ‘성적 소수자’ 관련 기사의 예를 들어보지요. 사실 ‘소수자’나 ‘정체성’이라는 말도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적 소수자’ 또는 ‘성 정체성’이라니, 기본적인 기사의 카테고리조차 배경설명이 필요한 어려운 언어입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에 평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정보를 별로 갖지 않은 다수의 독자들에겐 당최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초기에는 ‘성적 소수자 관련 용어 설명’ 기사를 별도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독자들이 관심만 갖고 본다면 이 개념에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랐지요.
 
<일다>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재일조선인, 그들이 누구인지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실상 재일조선인의 존재와 그들의 현재 모습을 알려면, 우리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작업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배경설명을 건너뛰고 재일조선인 관련 사안을 다루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내용이 각색되어버립니다. 짤막한 보도로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일다>에서는 재일조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글(특별기획-“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 조경희로부터 듣다” 2008년 3월-7월)을 10회 이상 연재했는데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면, 아마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관심’이라는 그 자발성까지 언론에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대한 독자들 눈높이에 맞춰 호소력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몫은 우리에게 있다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새로운 언어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담고 있는 “병신”이라는 말은 가급적 쓰지 말기로 하고, 젊은 여성들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제 좀 자제하고, “편부”나 “편모”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용어 대신 “한부모”로, “미혼”보다는 “비혼”이라고, “폐경” 대신 “완경”이라고 용어를 바꿔 쓰기로 하자는 등의 흐름이 계속되어 왔지요.
 
마땅한 언어가 없던 상황에서 적절한 용어를 새로 만들고, 특히 부정적인 용어를 조금 더 긍정적인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퍼뜨리는 작업은 언제나 환영할 만합니다. 언론은 이를 더 확장해주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매체는 당연히 교육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교조주의라고 할 수 없지요. 우리는 평생 배워가는 존재이고, 자신이 아는 것만 재확인하려고 언론을 활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언론은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해주며 상용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이런 용어도 모르니? 아직도 이런 말을 쓰다니!” 식으로 들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조주의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태도의 문제이지요.
 
여기서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하자면, 나는 우리가 언어 사용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쪽이에요. 언어란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니까요. 언론은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고, 언어 사용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요. 어떤 이가 자신에게 낯선 용어 때문에 기사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혹은 내용이 중요한데도 용어에 신경 쓰느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럼에도 언어 자체에 이렇게 비중을 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차피 완벽한 언어도 아닌데 말이지요.
 
예를 들어 ‘장애우’라는 말은 장애인 권리를 위해 다가가자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금은 장애인을 특별히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어, 인권운동 진영에선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늘 써오던 대로 ‘장애우’라는 말을 고집한다고 해서, 그가 차별적이라거나 장애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용어를 빨리 접하는 사람들이 특정 계층이라는 점, 우리사회의 지식인 층이 늘 말만 앞서고 그 내용을 채우는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뒤처져 있다는 점을 알기에,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다> 2011년 2월 2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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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6.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1

일다와 함께 2011. 2. 19. 08:30
여성주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조이여울의 記錄>(6)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1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석순을 비롯한 대학 여성주의 매체의 역할
 
안녕하세요? 잇지님, <일다>에서 일하고 있는 조이여울입니다.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저는 지금 멀리 인도에서 잠시 머물고 있어요. 저널리스트로서 일해온 지 10년, 제 삶에 뭔가 매듭 짓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의 배려 속에 몇 달 간의 휴식을 갖기로 한 것이죠.
 
이곳에서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보고 <일다>의 저널리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보는 와중에, 석순으로부터 “여성주의자로서 언론을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그래서 휴가 중엔 <일다>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 외엔 일을 손에 잡지 않겠다는 결심을 깨고, 말 그대로 석순에게 (그리고 석순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대해서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하던 1990년대 중반에도 석순과의 교류가 있었고, 이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석순 편집위원들이 졸업 후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비교적 최근에도 <일다>를 꾸려가면서 여러분의 선배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요. <석순>과 중앙대학교 <녹지>, 그리고 성공회대 <앤> 모두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대학 매체들입니다.
 
석순에 대한 나의 생각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여성주의가 뿌리 내리기 척박한 땅에서 이만큼 자리를 잡다니 장하다’는 것이죠. 물론 석순과 녹지의 경우는, 이미 재정에 있어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배경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매체의 성격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느냐에 따라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이화여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1997년이었을 거예요. 당시 연대활동을 통해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고려대학에서의 여성주의 활동은 너무나도 적대적인 환경 속에 이루어졌기에 종종 위로를 전하러 가곤 했답니다.
 
여성문화제 기간에 학내 공간 중에서 성차별적인 곳에 깃발로 표시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남학생들이 여학생휴게실로 대거 몰려갔던 에피소드는 귀여운 짓에 불과했죠. 애써 만들어 붙인 플랜카드가 하루도 안돼 찢기는 상황은 좀 포악했지만요. 지금이야 학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겠지만, ‘무관심’이라는 벽은 어쩌면 더 높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 내용을 보니, 아마도 대학 내 여성주의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 중 상당 부분이 이 문제와 관련이 있을 듯 하군요. 이에 대해선 차차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먼저, 언론의 특성과 관련하여 내 의견을 전하고 싶어요. 학생 신분의 기자들은 자신이 사회 언론인에 비해 비교적 한정된, 작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매체가 다루는 주제와 독자의 범위를 본다면 물론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라는 지위의 특성상 노동문제와 같이 생존권에 있어 중요한 이슈를 다룰 때, 현실을 잘 조망하지 못한 채 이론적으로 (또는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등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지요.
 
우리는 주로 매체 시스템의 규모나 보도분량, 독자 수 등을 따져서 크고 작고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역할에 있어서 만큼은 대학매체가 작다고 보지 않아요. 각 매체의 특성이 있다고 여길 뿐이지요. 세계각국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프로그램과 어느 지역의 동네신문을 비교했을 때에도, 그 특성이 다를 뿐이지 역할에 있어 어느 쪽이 크다 작다 판단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언론에서만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있고, 같은 사안도 학생들의 시선으로 담겼을 때 역시 같은 학생인 독자들 눈높이에 좀더 맞춰서 다가갈 수 있지요. 특히 요즘처럼 “20대”라는 세대 자체가 키워드로 부각된 시기에, 학생들이 직접 발언하고 담론을 생성하는 과정은 대학의 담장을 넘어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도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성주의 언론’ 또는 여성주의와 언론
 
그럼 이제부터 여성주의 언론에 대해, 또는 ‘여성주의’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할게요. 언론은 사실성과 객관성, 그리고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요. 여성주의 언론은 이중 특히 ‘객관성’과 관련한 부분에서 논란이 됩니다. 어떤 사안을 보도하는 기자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거기에 여성주의라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편파적인 보도를 하게 되지 않냐는 지적을 받는 것이지요.
 
나는 기자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기자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는 않다는 걸 먼저 인정한다는 점이지요. 또한 언론은 특정 사안을 독자들에게 보다 ‘객관화’하여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언론도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론이 이미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때, 오류가 시작됩니다.
 
모든 매체는 색깔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색깔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독자들이 어떤 매체를 좋아하거나 그 보도활동에 신뢰를 갖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 매체의 논조와 기사의 방향에 동의하거나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실 아무 색깔도, 방향도 없는 매체는 언론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때의 객관성이란, 매체의 색깔에 맞춰 부풀리기나 끼워 맞추기 식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게(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지키지 않고 있는 윤리이지요) 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언론의 ‘객관성’과 ‘여성주의’의 관계는, 또 하나의 큰 원칙인 ‘공정성’의 배경 하에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언론들이 전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주의 언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성주의 저널리즘은 언론들이 실제로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순도 100%의 객관성이 있다는 듯 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쯤에서 <일다>라는 매체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일다’라는 말은 옛 우리말로 ‘이루어지다, 되다’라는 소망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뜻도 가지고 있는데 ‘물결이 일다, 파도가 일다’ 할 때의 생성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쌀을 일다’ 라고 할 때, 체로 쳐서 쭉정이와 알갱이를 거른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건져서 전달하는 언론의 기능을 감안했을 때, 어울리는 이름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제 ‘거른다’는 의미로, 여성주의와 언론의 관계를 설명해보도록 할게요. 주류 언론들은 이 변화무쌍하고 사건 많은 사회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화적으로 비유하자면, 세상이라는 그림을 다수 언론들이 녹색 계열의 색깔을 대부분 빼버리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들로부터 버려진 녹색 계열의 색깔을 주로 담는 매체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림에 녹색 계열의 색깔이 포함되었을 때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원래 어떤 그림이었는지 알려나가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성주의 저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나는 독자들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가 이곳에는 있군요” 라고 할 때, 혹은 “아, 그 사건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군요” 라는 반응을 보일 때, 그것이 곧 “이 언론이 한국의 언론시장에 공정성을 부여해주고 있군요” 라는 의미라고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보다 객관화시켜 주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고 말이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일다>가 세상에 나온 2003년에는 ‘여성주의’라는 용어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정말 알려지지 않은, 게다가 형편없이 대우받고 누가 걸치냐에 따라 왜곡되기 십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다>를 만든 이들은,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걸었을 때 독자들이 다가가기 어렵고 원치 않는 색깔로 이미지가 덮일 수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무엇이 아닌지)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주의 저널을 표방한 것입니다.
 
2011년, 이제 8살이 된 <일다>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은 이전에 비해 ‘여성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애써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일다>의 역할을 진단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계해가는 과정에서 나름 도출되고 있는 견해인데요. <일다>가 ‘여성주의 저널’로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사안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왔는지 지난 8년간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일다>에게 더욱 중요한 과제는 ‘여성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나가는 일이라기보다, 다양한 여성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을 더 크고 넓게 여는 것, 사회 곳곳에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연대의 끈을 더 튼튼히 엮는 것이랍니다. 

<일다> 2011년 2월 18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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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5.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온 편지

일다와 함께 2011. 2. 15. 14:48

대학 여성주의 매체들의 역할과 고민

<조이여울의 記錄>(5)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온 편지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이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위로 혹은 질타 그도 아니면 조언을 기다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조이여울 님 
저는 석순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잇지라고 합니다.
 
이 글은 '여성주의자로서 언론을 한다는 것'에 관한 원고를 부탁하는 청탁서입니다. 하지만 이 글의 본심은 대학이라는 보다 작은 공간에서 여성주의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다 넓은 한국 사회라는 공간에서 여성주의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것입니다. 답답하고 막막했던 고민들을 쏟아내면서 위로 혹은 질타 그도 아니면 조언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 1983년 창간된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의 창간호 표지

우선 석순을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석순은 80년대 말 대학가를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세워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입니다. '여성'의 얘기만이 여성주의가 아니듯 석순에서는 여성으로 은유되어 왔던 소외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쓰기에 쑥스럽지만, 고려대학교 내 <일다>같은 언론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일다가 웹이라는 방식을 통해 글을 배포한다면, 저희는 종이지면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발간되며(이제 두 번으로 늘릴 예정입니다), 학생들이 내는 교지대를 통해 인쇄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35집까지 발간됐으며 현재 36집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번 36집 <여성주의 저널> 기획에서는 여성주의자가 언론활동을 하면서 겪는 고민과 난관에 대해 풀어내려 합니다. 원래 이 기획은 학내 여성주의 저널인 '석순'의 연대기와 시대적 상황을 엮어 '석순의 역사'를 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석순을 훑어보는 글이 석순활동을 하는 현 편집/수습위원들에겐 유익하고 흥미로울 수 있겠으나, 독자들에게는 '뻔한' 옛날 운동권 얘기로만 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좀 더 현재적 얘기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지금 여성주의 저널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풀어내보려 합니다.
 
<석순> <녹지> <앤>… 대학 여성주의 매체들의 고민
 

우선, 다른 학교 내 언론(지면을 갖고 글을 써서 여성주의관련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풀 예정인 집단)들과의 좌담회를 준비했었습니다. 여러 군데 초대장을 보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결국 좌담회에 응해준 중앙대 여성주의교지 <녹지>, 성공회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앤>친구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결국 다들 '힘들다'였지만, 그래도 '힘내보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런데 좌담만으로 저희의 먹먹한 고민들을 해결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학외에서 여성주의 언론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의 경험이 담긴 글을 받아보기 위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다>는 제가 자주 들리는 사이트 중 하나입니다. <일다>의 기사들은 다른 뉴스에서 시끄러웠던 일들을 (일부러) 안 다루기도 하고, 똑같은 소식을 다루더라도 다른 언론에서 들려주지 않았던 관점에서 서술돼있었습니다.
 
흔히 언론은 '중립적' 관점으로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수단적인 곳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론은 어떤 정치색도 띠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 받으며, 만에 하나 정치색을 뚜렷하게 밝히는 언론이 있다면 그 언론은 국민을 호도하며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의 언론관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언론'이란 말은 모순된 표현처럼 들립니다. "여성만 대변하는 언론이 무슨 언론이야"라는 '비난'은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을 편향된 '정치활동'으로 치환시켜버립니다. 즉 믿을 만한 ‘사실’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는 거죠.
 
고려대 학생들도 석순을 언론이라기보다 ‘활동’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활동이라는 표현은 응당 석순에게 어울릴 테지만, 독자들에게 뚜렷한 여성주의라는 색깔은 거부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실 석순의 독자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생산된 글이 읽히지 않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을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론화시키고 싶어도 읽어주는 사람과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적어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미미합니다.
 
독자가 적다는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비극(?)적입니다. 석순은 교지대를 받고 있어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독자의 수는 곧 매체를 생산할 자본금과도 직결된 문제니까요. 실제 많은 여성주의 언론이 후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여성주의 언론을 달가워해 광고를 선뜻 줄 리 없고,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을 받더라도 편집권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후원이나 구독료는 언론이 튼튼한 재정구조를 가질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이지만, 이건 독자가 많을 때 가능한 얘길 겁니다. 독자가 적은 여성주의 저널은 늘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거겠죠.
 
여성주의 언론은 이 세상에서 소외돼왔던 이들의 말을 전하려다보니 ‘언어의 부재’라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말이라는 게 워낙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념들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독자와의 지속적인 합의 없이 갑자기 새로운 말을 사용한다면 그 말은 언어로써 제 기능을 못하게 돼버리고요. 그런 측면에서 '비혼'이나 '완경기'라는 단어가 나름 상용화된 것은 정말 기뻐할 만한 일입니다.
 
여성주의 언론으로서 지적받는 또 다른 문제는 맥락이나 상황설명을 조목조목 하다 보니 글이 길다는 겁니다. 우리의 뜻을 제대로 전달해줄 언어가 부재하기 때문에, 일상화된 언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생략'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이죠. 조근조근 풀어가며 달래듯 '이래서 이러한 거야'라는 식의 설명은 독자들에게 '계몽적이다'라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우리가 독자를 계몽하려는 것인가? 우리의 말을 전하는 일이 '모르는 독자'를 '아는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져있던 것인가? 독자 스스로 '계몽되어야겠다!'라는 의식을 갖는 일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왜 날 계몽시키려들어?'라는 반감은 글쓴이를 이미 권위자로 인정하고 거기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일 테지요. 그렇다면 여성주의자들은 '계몽' 냄새가 최대한 나지 않게 써야하는 것일까? 자문과 자성이 꼬리를 뭅니다. 여성주의가 권위를 갖는 순간 그 권위마저 경계하느라, 여성주의자들은 할 말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자가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
 
그래도, 그래도 저에게 여성주의 저널은 저널로서 하고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그것은 '위로'였습니다. 내 탓이라 생각하며 꾹꾹 눌러두었던 경험들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나에게 공감해주는 글들. 거기서 자연스레 위로를 받았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줄곧 얻었던 것은 자유롭다는 해방감과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성주의 저널에는 경험담이 많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 했다"같이 대상화된 정보가 아니라, 나에게서 출발한 말들은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누군가를 향해 손길을 내미는 그런 기사 말입니다. 여성주의 저널은 정보전달자와 정보수용자라는 이분된 관계마저 흩뜨려 놓습니다.
 
그 다음은 '저항'입니다. 지금껏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불온합니다. 가려졌던 경험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퍼뜨리는 여성주의 언론은 근본적으로 현 체제와 완벽하게 타협할 수 없습니다. 여성주의자들 기질 자체가 그렇다기보다(그런 기질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체제에서 밀려난 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곳 사정이 단일한 것만은 아닙니다. 저마다 위치가 다르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릅니다. 동일한 사람도 어떤 곳에선 소외자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권력자가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외를 생산하는 위계적 구조만큼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 구조는 물론 자본주의 질서와 인종과 장애 그리고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주의에 맞서 위계적 구조를 허무는 게 여성주의 언론의 역할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성주의 언론은 할 일이 넘쳐 일손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은 너무나 온전합니다." © 일다

하지만 그 역할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마다 답답하고 암울하기만 합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은 너무나 온전합니다. 여전히 독자들은 무관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이 늘어 갑니다. 저항이 무력하다는 의구심이 뚜렷해져 갈수록 차라리 침묵하고만 싶어집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는 우리가 작고 낮은 산에서 외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더 높은 산에 오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크고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자들이 중심을 해체하기 위해 또 다른 중심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소외자들이 겪는 딜레마입니다. 여성주의가 태생적으로 크고 높은 산일 수 없다는 게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모순이 운명 같아 슬프지만, 그 만큼 할 말이 많다는 증거이기에 "힘내자"라고만 자꾸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그 힘 무엇으로 내야 할까요? 있던 힘도 빨아가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연대'는 낙담하는 여성주의자를 위해 있는 단어 같습니다. 나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이 가실만큼 함께 하자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요. 하지만 그마저 약발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대는 단순히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차이를 살펴 그것을 드러내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점들을 모색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연대입니다.
 
그런데 이제껏 저는 ‘같은’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작업에 인색했던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자라면 응당 나와 같다고만 생각한 것이죠.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동아줄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새삼 견고하고 높다란 탑이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내가 이 탑과 싸워 무너뜨리기보다 내가 이 탑이 되는 게 빠른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조이여울님의 답장을 기다립니다.
 
여성주의 저널활동을 해오면서 겪었던 보람과 회의, 그렇지만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하게 한 힘, 현실적으로 여성주의 저널이 당면한 문제와 나름 그에 대한 비책(!). 여성주의 저널 전반에 대해 가졌던 단상들을 들려주신다면 그것은 석순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잇지)

<일다> 2011년 2월 1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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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4.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일다와 함께 2011. 2. 5. 14:22
폭력 피해자를 죄인 취급하는 사회
<조이여울의 기록>(4) 살인피해자 가족의 죄의식, 그 사회적 의미 
 
우리는 살인, 성폭력과 같은 강력 범죄를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면서 살고 있다. 범행의 양상이 끔찍할수록, 피해자의 규모나 피해의 정도가 클수록 사회여론이 들썩인다. 그런데 나는 범죄 사건을 접하는 대중의 여론이 상당히 소모적이라는, 그래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성폭력,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며 가해자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 반응은 기껏 하루 이틀 후면 관심에서 밀려날 정도의 중요성밖에 지니지 않고 있다. 바로 이 가벼움 때문에, 나는 범죄 사건이 마치 사람들로부터 ‘열 받는다’ ‘충격적이다’ ‘화난다’ 하는 감정을 집단적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취급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해자를 향해 더 많은 분노를 표한다 해서, 그것이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 사건의 구체성이나 가해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그에 관한 정보를 돌리는 만큼, 피해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중을 두어 고려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극심한 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 지금 어떤 상황일지,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문제. 즉 피해자의 삶과 회복의 문제는 긴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하루 이틀 만에 사라져버리는 연기 같은 여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주제이다.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2010년 6월 2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주관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 좌측부터 공지영, 살인피해자 가족 김기은, 로버트 컬리,버드 웰시 ©국제 앰네스티  

 
“한국 (살인피해자) 가족들과 만나면서, 이 사회에서 그들이 어떻게 대우 받고 있는지를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 사회적 낙인이 많은 것 같다. 마치 가족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말이다.” (로버트 컬리)
 
작년 6월 20일,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버드 웰시(71), 로버트 컬리(55)씨는, 국내 살인피해 가족모임인 ‘해밀’ 소속 가족들과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 날 열린 사형제도 반대 메시지를 담은 초청강연이 끝날 무렵, 두 강연자는 “어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며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살인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한 것이었다. 버드 웰시씨는 사랑하는 이가 살해당했는데도 가족들은 아무런 정보도, 지원도, 안내도 받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 찾기에 관심이 있지 피해자를 지원하는 쪽에는 관심이 없다”며, 그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드 웰시씨는 또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자기 목소리 내길 어려워하고, 자기 경험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딸 줄리가 죽고 난 후, 자신은 14년간 딸에 대해 얘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줄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는 당일도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청중들 앞에 자랑스럽게 소개했었다.
 
로버트 컬리씨는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피해자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식의, 가혹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피해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나에겐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려는 “일종의 방어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길 바란다”고 한국 사회에 당부하며,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본인이 잘못한 느낌을 극복할 수 있길, 살아가는데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관련한 사회적 활동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당한 자’를 향한 냉정한 시선
 

주위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할 살인피해자의 가족들이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죄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치상으론 말도 안 되지만 그 상황이 어떤 건지 짐작해보는 건 우리에게 어렵지 않다.
 
죄지은 자만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다. 피해자도 죄의식을 갖는다.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해서 자식이 살해당한 게 아닐까? 내가 맞을 짓을 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맞고 사는 건가? 내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남들은 겪지 않는 고통을 겪는 것일까 등등. 폭력의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지지하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사회공동체가 해주어야만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찌된 일인지 피해자들의 마음과 몸을 돌보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 같은 악의적인 통념이 자리잡고서, 언제든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충격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해, 우리 문화가 가하고 있는 낙인을 몇 가지 언급해보자. “자식 먼저 보낸 죄인”이라거나, “부정 탔다”거나, “며느리를 잘못 들여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느니, 심지어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둥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오간다. 고통 당하는 이의 삶을 완전히 꺾어놓으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가혹한 이야기를, 무서운 시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이 정도로 낙인을 찍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엔 고통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오히려 끔찍한 상처일수록 ‘묻어야 할 이야기’가 된다. 피해를 당한 일이 “뭐 자랑이라고 얘기하느냐”는 말 속에는, ‘타인의 고통을 들어줄 이가 없다’는 각박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결국 그만큼 죄책감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공포를 당사자에게 전가하는 방식
 
피해를 겪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방어책”인 것 같다고 말한 로버트 컬리씨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저런 고통을 겪는 거야’ 라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그것은 곧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들, 즉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위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문화가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보는데, 그것은 범죄 피해와 같은 사건뿐 아니라 ‘질병’과 같은 고통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왔다.
 
중풍과 한센병 등의 질병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공격들- ‘신의 형벌’을 받는 죄인이라고 여기고, 사회와 분리시키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눈에 띄면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했다–도 그 이면에 깔린 심리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직도 에이즈 환자에 대해 ‘신의 벌’이라고 이야기하는 몰상식한 종교인들이 있다.) 무서운 질병에 대한 공포를 환자에게 전가해서, 환자를 (자신과는 다른) 죄인으로 낙인 찍음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환자를 보면 연민을 느끼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 대신, 죄가 있다(문제가 있다)고 경멸하고 공동체에서도 분리해버리려는 시도에는 그 사회구성원들의 ‘무지’와 ‘공포를 다루는 비굴한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식으로 ‘나와는 다른’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불행이라고 간주하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겪게 된다면 어떠할 것인가. 내 자녀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한센병, 에이즈 등의 질병은 사회적인 공포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그 증상을 감소시키거나 예방책과 치료책이 빨리 나와주었을 거라는 정보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발언권과 회복을 지원하는 사회
 
살인, 성폭력과 같은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관심을 누구에게 보내는가? 혹시 끔찍한 범죄에 대한 우리의 공포감을 무마시키기 위해, 부러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는 것은 아닌가? 또 사회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제 할일 다 했다고 보는 것 아닌가?
 
사회공동체가 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배려해주지 않을수록, 범죄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와 같은 끔찍한 경험이 자신에겐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는 일일 거라고 마음으로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로 피해자 집단은 더더욱 사회에서 고립되고 격리되어 갈 것이다.
 
가해자를 욕하는 것은 피해자의 아픔에 동조하고 그 사연을 들어주고 위로를 보내기보다 훨씬 쉽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보다 단순하고 빠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이 폭력을 겪어 너무나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함께 아픔을 나누고 덜어주고 위로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북돋워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의’ 실현이자 사회공동체의 기본 역할 아닐까.
 
하루가 머다 하고 심각한 범죄 사건이 보도되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폭력행위가 선정성을 담고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절망하지 않고 하루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일다> 2011년 2월 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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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말하는 ‘고통’과 ‘치유’

일다와 함께 2011. 1. 24. 15:23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
조이여울의 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 ‘치유’를 말하다 
 
어떤 사안은 취재를 하고도 기사로 보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보도할만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거나, 보도할 시기를 조율하거나, 혹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서 미뤄두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몇 달 전엔 전혀 다른 이유로, 취재내용을 기사화하지 못한 사안이 생겼다. 그것은 작년 6월 21일,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미국의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방한해서 가진 강연내용이다.
 
정보 알수록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는 사형제도
 
한국은 지난 13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고, 작년 2월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발맞춰 여당 측에서 사형 요구 움직임이 일자, 사형제도 반대운동진영에서는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urder Victims' Family for Human Rights, MVFHR) 대표단을 초청해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힘을 싣고자 한 것이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선 이미 여러 각도에서 정보를 가지고 있던 터였다.
 
인간이 제도의 힘을 빌어 타인을 죽이는 것까지 할 권리가 있을까? 하는 질문과 더불어, 누군가(사형집행관)는 합법적인 살인을 실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형제도와 관련해 주요하게 대두되는 윤리적인 문제다. 조금 더 사실에 접근해보면, 사형수 중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희생된 정치범이 많다는 점, 빈익빈부익부의 불공정한 재판 과정 즉 형평성의 문제와, 오판인 경우 보상할 길이 없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더 나아가 사형수의 상당수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점, 교정이 아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벌은 범죄자가 진실로 뉘우치고 사죄할 기회(피해자 측에서 사죄를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점, 또한 가해자를 특별한 존재로 악마화하고 살해함으로써 공포감을 조성하는 건 오히려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형제도는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세계각국에서 폐지하고 있는 흐름이며, 유럽연합은 회원국 가입 조건 중 하나로 ‘사형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형제도의 성격상, 보다 호전적인 성향의 정권 하에서 이 제도가 실행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2010년 6월 21일,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는 사형제도와 관련해 또 다른 차원에서 진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관한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에서, 사형폐지운동가이자 살해당한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버드 웰시(71), 로버트 컬리(55)씨는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는 제목을 걸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연은 물론,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보도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보도기사로 쓰기엔 너무 깊은 내용이었다고 할까? 어쩌면 내가 소화시키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증언은 살인피해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직면하여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제도 자체보다도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했다.
 
그것은 마음을 두들겨대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들이 준 메시지를 꼭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고서, 지난 6개월 간 그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 안에서 어떤 답이 떠오를 때까지, 가슴속에 얹힌 뭔가가 풀릴 때까지 계속 그들의 증언을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독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미움과 분노라는 감정의 속성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첫 국어시간에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남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당시 나는, 나이 든다는 것을 지혜로워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국어교사의 첫 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울 무렵, 그 선생님은 앞자리에 앉은 내가 귀여웠던지 굳이 말을 붙였다. 그러더니 “진달래” 같다느니 “상큼하다”느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웃으며 교실 문을 나섰다. 순간, 비위가 확 상하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뭐 저런 능글맞은 사람이 교사를 한담.’
 
예나 지금이나 정보통이었던 나의 레이더 망에 곧 그 교사의 ‘문제적’ 언행이 속속 접수됐다. 나는 선생님들이 단체로 연수나 여행을 갈 때, 버스 안에서 그 국어교사가 Y담(음담패설)을 해서 여선생님들이 피곤해했다는 얘길, 다른 학교로 전근한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젊은 여선생님이, 복도 맞은편에서 그 남자교사가 반갑다는 듯 팔을 벌리며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도망치듯 오던 길로 다시 종종걸음 하며 돌아가는 장면을 목격한 친구의 증언도 듣고야 말았다.
 
나는 분기탱천하여 반 친구들이나 친한 선생님들에게 그 국어교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얘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에는 ‘성희롱’이라는 언어(따라서 개념)도 없던 때인지라 능글맞다, 징그럽다, 교사로서 부적절하다 등의 표현으로 내 분노의 감정을 분출했다. 물론, 국어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반항(이란 이름의 공격)을 해서, 한 번은 학습부장이었던 친구가 내게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나를 무척 아껴주었던 그 친구의 지적은, 어쩌면 내가 걱정이 되어 한 얘기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증오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내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다.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돌아보며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무엇이 좋아진 게 있었던가? 단지 나는 미움이라는 불쾌한 감정 속에 기꺼이 마음을 감금시킨 채 두 학기라는 시간을 소모했을 따름이다.
 
가끔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데, 몇 년간은 ‘세상에 그렇게 징그러운 사람이 다 있었지!’ 하며 또다시 미움의 감정을 불러왔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점점 ‘내가 어떤 교사를 정말 미워했었지’ 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지금은 다만 15살 작은 몸으로 큰 미움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린 내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성희롱과 같은 사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인간의 내면에 품고 있는 감정과 그것이 미치는 결코 작지 않은 영향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일이었다.
 
미움이란, 증오란, 노여움이란, 복수심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먼저 찌른다는 것. 내게는 중2때의 경험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것 같다. 누군가를 정의의 이름으로 정죄하려 하지만, 결국 그 보복심리에 스스로 속박되어버리고야 마는 것. 아마 많은 이들이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깨닫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과거의 불쾌한, 혹은 끔찍한 사건을 그 이후의 시간에도 끊임 없이 스스로 재생시켜 내는 일이라는 것을.
 
“보복은 치유가 아니다”
 
▲ 2010년 6월 2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관한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 버드 웰시(좌)와 로버트 컬리(우).  © 국제 앰네스티

 
사형제도가 법의 정의라기보다 “복수심”과 “증오”에 관한 것이라는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이사장 버드 웰시의 발언은 과연 적절하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 큰 이유로, 살인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죽인 자가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해야만 그 상실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된다는 것이다. 사형 집행과정을 피해자 유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사형제도의 바탕에 분노와 복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살인피해자의 가족들이 “가해자를 죽이는 일은 우리의 고통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앞장 서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의 목소리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밝히는 여러 정보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큰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살해당한 당사자와 소중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노라고 말할 수 없고, 가해자를 향해 더 큰 분노를 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997년 10월 1일, 로버트 컬리씨의 열살 난 아들 제프리는 친구 집에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제프리는 20대 초반의 두 청년에게 납치되어 성매매를 강요 당했고, 이를 거부하자 두 청년은 아이를 죽여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로버트 컬리씨는 아들이 건널목을 잘 건널까, 과제를 잘할까 걱정 밖에는 달리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고,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건 이전에는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형제도를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분노에 차 있었다”고 말했다. 로버트 컬리씨는 주 정부를 상대로 사형제도 복원운동을 하며, 미국의 사형 존폐논란에서 ‘찬성’ 입장의 논객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컬리씨는 자신이 사형제도를 보다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는 사형제도가 “인간이 운영하는 제도”라는 것,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면 사형을 피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는 것 등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형집행은 법의 이름으로 또 다시 살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함께 하게 됐다. 제프리가 죽고 난 뒤 6년 후, 컬리씨가 한 대학의 사형제도 반대회의에 참석해 공식적으로 발언한 날은 공교롭게도 아들의 생일이었다. 그는 그것이 단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란 무엇인가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이사장 버드 웰시의 외동딸 줄리 메리(23)는 어릴 적부터 외국어에 능해, 번역가로서 연방정부 사회보장국에 취직해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했다. 1995년 4월 19일은 그녀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빌딩으로 출퇴근한 지 8개월 정도되는 날이었고, 2주 후엔 연인과 결혼 발표를 예정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멕시코인과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연방정부 건물에 들어갔을 때, 폭탄이 터졌고 줄리를 비롯해 167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9.11 전까지 미국에서 최대 민간인 희생자를 낸 폭탄테러로, 범인은 걸프전에 참가해 훈장까지 받은 바 있는 26세의 티모시 맥베이와 그의 동료다. 그는 2001년 6월 11일 수백 명의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극물 주사로 공개 사형당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버드 웰시씨는 1년 만에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렸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가해자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이 고통을 줄이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치유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날 버드 웰시씨는 폭파사고 2주 후에 TV화면으로 보았던 가해자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건장한 남자가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눈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느꼈던 고통이란 걸 알았다.” 그는 가해자의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당신의 슬픔을 안다고.”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후, 웰시씨와 가해자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일에 대해 웰시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집에 찾아갔을 때 부엌 테이블에 아들 사진이 있었다. 나는 내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슬픔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떠나며 가족 모두와 포옹을 했고, 가해자의 동생에게 ‘우리 평생 알고 지내자. 너의 오빠가 죽는 걸 나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가해자 가족의 집을 나서면서, 버드 웰시씨는 비로소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설사 살인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의 가족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똑같이 당해보라고 말한다 해도, 이를 선뜻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웰시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통해, 살인을 저지른 자식을 둔 부모의 고통을 헤아리려 했고,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를 전하러 찾아간 것이다.
 
나는 순간,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기에 (또는 그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딸을 죽인 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까지 위로해줄 정도로 그 사랑을 확장시키려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없이 줄어들 수도 있고 세상을 덮어버릴 정도로 넓어질 수도 있다더니, 실제로 그의 마음은 감싸지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아동 성매수범들로부터 아들을 잃은 로버트 컬리씨는 현재 아동 성범죄 예방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가해자와 세상을 향해 더 크게 분노하기보다는, 살해당한 자식과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달려가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며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싣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다> 2011년 1월 2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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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2.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일다와 함께 2011. 1. 14. 15:18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 어떻게 볼 것인가
<조이여울의 기록> (2) 진단은 낙인이 되고, 원인은 답이 된다 
  
차별과 폭력, 사회적 소외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언론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피해의식’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거나 떠올리게 된다.
 
개인차를 감안하고, 사회적 소외와 차별을 겪어 온 사람들이 그 결과로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탓도 아니다.
 
문제는 피해의식이 사람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상황을 쉽게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여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자신과 처지가 다른 이들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등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경우 피해의식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해당 주제에 관해 대화하는 건 불편한 일이 되고, 아예 ‘만남’ 자체를 꺼리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
 
때로 피해의식 혹은 그로 인한 배타성이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소수자 집단의 배타적인 성격이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또 하나의 낙인이 되어 차별을 지탱해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들여다보기 전엔 이해할 수 없는
 
작년 10월 재일조선인 선진유씨를 인터뷰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재일동포, 당신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일다> 2010년 10월 20일) 도쿄로 떠나기 전 나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너무 “폐쇄적”이라 일본사회와 소통하며 상황을 개선해나갈 통로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 대한 나의 관심은 몇 년 전 내 또래인 림혜영, 조경희씨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커졌는데,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지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이야. 천민집단 중에서도 천한 취급을 받아왔다면 설명이 될까?
 
한 번은 혜영씨가 지나는 말로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사람들 보라고 일부러 집을 깨끗하게 해놓는 경향이 있대요” 했다.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조선 사람들은 지저분하다-을 반영한 얘기였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은 사회의 편견과 낙인의 잣대에서 결코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코-카운셀러인 32세의 여성 선진유씨를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또 깜박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말이다. 나보다 좀 더 어린 세대라고 생각해서, 그새 일본사회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는 마음수련을 해온 그녀의 맑은 표정을 보며, 공포에 시달렸던 지난 시절의 그림자를 읽어내기 어려웠던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김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가해-피해의 역사, 전후에도 계속된 조선인학살, 규명되지 않은 폭력, 뿌리 깊은 인종차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 개인이 특유의 성격이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진유씨는 어릴 적부터 자주 망상에 시달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조울증,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의 질환을 앓았다고 했다.
 
선진유씨의 고통스런 경험은 ‘개인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해결책도 ‘개인적인 수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사회는 문제 해결은커녕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 경험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어 정신과 질환의 목록으로 나열될 뿐이었다.
 
진유씨는 학창시절 친구가 칼로 자신을 찌르는 꿈을 종종 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공포에 대해 대화할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대학 사물놀이 동아리활동을 하며 무대에 올랐을 때, 관중 중에 누가 “너희는 조선인이냐?”라고 묻자 공포감에 그만 몸이 굳어버린 경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다른 멤버들은 자기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인 친구들의 입장에서, 진유씨의 태도는 ‘피해의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진유씨의 악몽에 대해 만약 그 친구가 알았더라면, 내가 왜 너를 죽이려 하겠냐며 불쾌감에 말도 섞기 싫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대에 오른 사물놀이패 멤버들도 대체 조선인이냐고 묻는 게 뭐가 대수라고 공연을 망치는지 답답해했을 것이다.
 
피해의식이란 이렇게 악순환 된다. 자신의 감정과 태도가 이해를 받지 못하니 더더욱 주위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잃게 되고, 그럴수록 사회와의 벽은 두터워지는 것이다.
 
‘비주류’라는 꼬리표를 단 사람들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결핍된’ ‘열등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에, 개인은 쉽게 ‘집단’으로 평가를 받는다. ‘비주류’라는 정체성이 꼬리표가 되어, 더 이상 개인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 꼬리표는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평가를 하려 노력한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불명예스러운 이름이므로 개인의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상황을 빚어낸다.
 
“미혼모”라고 불리는 집단, 혹은 “아줌마”라고 불리는 집단, 외국인노동자 집단, 가난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동성애자 집단, 고아로 자란 사람들, 범죄자의 가족들, 특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고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결핍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꼬리표 떼기에 열중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과는 달라’ 이런 식으로 평가 받으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는 집단을 향한 사회적 차별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를 테면 상당수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이름을 쓰면서, 조선인이란 걸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일본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조선도서관 <문화센터 아리랑>의 부이사장인 송부자씨(72세, 여성)는 인터뷰에서, 자녀들이 괴롭힘 당하지 않게 하려고 매일 기모노를 입고 모피도 두른 채 학부모위원회 활동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역사를 바로 가르칠 때 정의가 생겨난다” <일다> 2010년 7월 27일 박희정 기자)
 
또 어떤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자기 정체성의 꼬리표를 지탱하느라 힘겹다. 화살을 안으로 돌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혹은 ‘우린 이래서 안돼’, ‘저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망신이야’ 하고 자기 자신과 내부집단에 대해 검열과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수집단의 사람들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을 규정을 무수히 만들어, ‘평균에 못 미치는 존재’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무게를 버텨내려 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소외의 문제가 민족성이나 종교성과 관련이 있을 경우엔, 해당 집단의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짐이 훨씬 커진다. 이 시대에 왜, 그것도 일본사회에서 공격 대상이 될 게 뻔한 상황에서 조선학교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하는가. 소수민족들은 여자들이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지 더 엄격하게 감시한다. 소수집단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의 몸은 쉽게 통제 대상이 된다. 더 민족적이고 더 종교적이어야 한다.
 
흑인남성들은 흑인여성이 백인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분개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연애에 왈가왈부할 일이 뭐 있으며 자존심 상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밝힌 바, 실상은 흑인남성이 백인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2배가량 높다고 한다.) 이런 시선이 있는 한, 흑인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결정에 대해 검열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 집단에 대해 ‘배신’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데 왜 개인이 이런 터무니없는 짐을 이고지고 가야 걸까. 왜 하루하루를 평화가 아닌 분쟁의 현장으로 삼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다가가기 한 뼘이 아쉽다
 
나는 소수자 집단의 피해의식이나 폐쇄성, 혹은 배타성이 주제로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이 말이 떠오를 때에도 ‘한 뼘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번 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같이, 다가가는 한 뼘의 거리 말이다.
 
때로 어떤 이의 피해의식이 특정한 개인을 향한 원망으로 표출되어 보일지라도, 사실 그 원인은 사회적 기반과 지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우리가 개인으로서 그 사람에게 잘못한 일은 없다 하더라도, 사회구성원인 개인으로서는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낄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 집단에 대해 “피해의식”에 절어 “폐쇄적(혹은 공격적)”이라고 평하고 있다면, 그러한 진단에 앞서 원인인 무엇인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원인을 찾아내 교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간편하게 진단만 내린다면, 그것은 낙인의 또 다른 양상일 뿐이다.
 
소수자 집단의 폐쇄성과 피해의식의 정도가 바로 그 집단이 속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사회가 소수민족에 대해 너그럽고 관대한 문화였다면, 또 역사를 지배가 아닌 평화를 바라는 관점에서 교육했더라면 재일조선인 집단의 폐쇄적인 성격은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진유씨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것은 “절대적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 기사 제목에 “당신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일본사회와 한국사회, ‘우리’가 들어야 할 시간이다. 재일조선인들의 권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반일감정을 드러내는 것 외에, 우리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현실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었는가. 또 우리 사회의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간혹 피해의식이나 배타성과 같은 소수자 집단 내부의 부정적인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하며 상대적 우월감을 확인하는데 사용하는 대신, 그 원인이 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 방법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한 번 듣게 되면 두 번 듣기는 훨씬 쉽다. 배경지식이 생겨 내 마음에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으니까.
 
<일다> 2011년 1월 1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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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일다와 함께 2011. 1. 5. 14:21

경쟁사회에서 ‘평등’의 의미를 묻다
<조이여울 기록>(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외국에 나와 있으면 ‘국적’이나 ‘민족’이 나란 사람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번은 여행객을 상대하는 상인이 “한국인이냐?” 묻더니 “빨리빨리!”라고 말하며 인사하는 보았다. 힌두인은 “나마스테” 일본인은 “곤니치와”인데, 한국인은 “안녕하세요”가 아닌 “빨리빨리”라니, 이 상인이 한국사람을 좀 아나 보다 싶었다.

남인도의 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 해가 쨍쨍한 낮 시간 내내 낮잠을 자거나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들과 함께 쉰다. 상점이나 식당 문은 10시가 넘어야 열리는데, 1시부터 4시까지 휴식을 취하니 결국 일하는 시간은 오전에 잠깐, 그리고 오후 해질녘의 잠깐이다. 물론 여기서 ‘잠깐’이라는 표현은 한국사람인 나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외국에서 한인 집단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열심히 일한다’를 넘어서 ‘악착같이 일한다’는 것이고, 한국사회가 ‘바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이가 별로 없을 것 같다. 혹자는 한국의 노동력이 그만큼 질이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실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행복한 삶과 비추어보았을 땐 어떠할까.

나는 외국에서 듣는 이 “빨리빨리”라는 우리말이 ‘발 동동’이라는 의미로 들려와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한국사회를 하나의 캐릭터로 이미지화한다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심지어 이것을 한국 현대사회가 에너지 동력으로 삼아온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빠르다라는 개념에는 늘 ‘남보다’라는 혹은 ‘전보다’라는 비교가 들어가 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빠른 것은 없으니까. 더욱이 순위를 매기는 일이 일상적이고, 우열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운 경쟁사회일수록 그러한 종류의 ‘비교’는 그 중요도가 매우 높아진다. 뛰어나다거나 한심하다거나, 해냈다거나 실패했다거나, 성장했다거나 후퇴했다거나, 예쁘다거나 못났다거나 등등의 평가가 너무나도 자주 주어져 우리의 일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등한 인간 존엄성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이 문제를 내가 인생의 화두로 삼아온, 인류의 오래된 주제인 ‘평등’과 관련 지어 생각해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나면서부터 주어진다는 동등한 존엄성을 깨닫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본질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성향 혹은 형상과 가치들이 있다. 그 기준에 어떤 이들은 좀더 부합해 보이고 어떤 이들은 좀 덜 부합해 보인다. 선호하는 가치와 동떨어져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비교는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이를 테면 직장에서 어떤 기준도 없이 구인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동의할 만한, 일명 “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인사 관리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평등에 가깝다고 본다. 그럴수록 ‘능력’ 중심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지고, 배움이나 경험 유무 그리고 똑똑한가 순발력이 있는가 등의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건강을 비롯해 직장생활 원만히 할 성격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포함하여.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더 평가해주고 그에 따른 보상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부당한 대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성과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따르지 않을 때 불공평하다고 얘기될 것이다. 능력에 따른 평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합법적일 뿐 아니라, 인맥 위주의 사회시스템이 앞으로 변화해나가야 할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불편한 사실이 있는데, 쉽게 간과해버리는 점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굳이 꺼내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생존이 걸려 있는 이 무대가 누구에겐 쉽고 누구에겐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것을 잘 해내는 팔방미인이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남들보다 제대로 못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집중하여 일하기엔 건강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학습장애가 있어 사회화가 어려운 이들에겐, 염색체나 두뇌의 문제로 타인과 소통을 못하는 사람들에겐 공평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동등한 인간의 존엄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은 어떤 때이며, 평등이란 어떤 의미일까.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 미성년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것, 투표권을 갖는 것,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실 수도 있다는 것, 또는 재활치료나 활동보조인의 사용이 허용된다는 것? 제도와 법이 보장하는 평등이란,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아직 한참 덜 채워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커 보인다. 인간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세상에서 인정 받기를 바라고 만족을 얻길 바라며 사랑을 원하는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공적인 장에서가 아니라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성격이나 외모의 비교는 또 어떤가. 어떤 이들은 인기가 좋아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어떤 이들은 ‘비호감’이라며 타인들이 기피한다. 그것은 평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혹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따뜻하고 호의적인 인간관계를 어떤 이는 비교적 쉽게 얻는 것 같고 어떤 이는 얻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과연 인간관계 속에서 개개인이 동등하게 인정 받는 인간 존엄성을 어떤 식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괜찮은 세상이라면…

Canon | MP250 series | 2010:09:10 14:56:12

일다 그림작가 시로의 작품 "경쟁"

나는 이전에도 페미니즘, 소수자의 인권과 같이 ‘평등’이라는 개념과 뗄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 이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되풀이 고민해보곤 했었다. 한 번은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평화를 지향하는 외국의 한 대안공동체의 규정에 대해 들려주었는데,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논의해볼 수 있는 예시였다.

그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 간에 비판을 하는 것도 지양할 뿐 아니라, 칭찬을 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며 자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칭찬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인정을 한다는 것인데, 그건 다른 누군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보단 덜 인정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으로,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훼방하는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과연 칭찬을 하지 않고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현실성에 있어서의 의문이 들긴 하였으나,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내용-사람을 비교하지 말라-이 평화로운 삶에 필수 요소임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사실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칭찬을 받는 이뿐 아니라 칭찬하는 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행위이다.

모두가 똑같이 인정을 받는다면 ‘인정을 받는다’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언제나 ‘남보다’라는 비교가 선행된다. 비교는 쉽게 우열을 낳게 되는데, 우열이라는 것은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안타깝게도 혹은 비극적으로 인간의 비교본능, 경쟁본능은 날 적부터 자리잡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많은 사랑을 줘도 언니 혹은 동생과 비교하여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끼면 깊숙한 곳에 불만을 품게 되고, 풍요롭게 사는 듯 보여도 더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해 자신의 환경에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어른들과 사회가 더욱 합세해 비교를 조장하고, 경쟁을 앞장서서 가르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릴 적에 나는 부모님에게 주위어른들이 “요즘은 딸 키우는 게 열 아들 안 부럽다”거나 “딸을 키우면 비행기를 타게 된다” 등의 얘기를 인사처럼 하는 걸 종종 보았다.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딸만 가진 부부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의 말이니까 말이다. 당시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자신했으므로, 우리 가족은 행복한데 왜 어른들은 저런 옹색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무의식 중에선 행여 아버지가 아들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것은 아주 가벼운 예일 뿐이다. 옛날부터 “아비 없이 키우니 더 엄격하게” 자식을 훈육하는 어머니의 사례는 미담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엄격하게” 라는 말의 구체적인 행위로는 매를 때렸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 “더 엄격하게” 라는 것이 어떤 ‘결핍’의 상태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자식도, 어머니도 잘 알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내로 태어나지 못했으니 남의 집 아들 부럽지 않게 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거나, 공부를 못하니 운동을 뛰어나게 잘해야 한다거나, 입양 된 아이니까 착하게 굴어야 한다거나, 엄마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보란 듯 성공해야 한다거나, 장애가 있으니 성격이라도 고와야 한다거나, 불 품 없이 생겼으니 애교를 키워야 한다거나, 독신으로 살 거면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한다거나, 동성애 커플이니까 더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해야 한다거나 등등.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세상이었다면 가지고 있지 않았을 의무감, 부담감,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처한 불리한 위치를 극복하며 삶의 동력으로 삼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받지 못할 때 부자연스러움과 억압감을 내면화하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인 여파는 평생을 지배하는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비교의 중요도 낮추기, 경쟁을 지양하기

경쟁사회에서 인간이 자신과 타인이 동등하다는 것을 ‘실재로’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며 우열을 평가하게 되는 순간, 동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은 크게 흔들린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가슴 속에 인류애 대신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분노를 키우게 된다.

인간 세상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비교가 필연적이고 경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우열을 나누거나 등수를 매기는 시스템에서 변화를 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인간의 기본권인 평등, 그리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이를 테면 학교에서 시험을 없애지는 않더라도 성적의 중요도를 낮출 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오로지 성적에만 모든 중요도가 부과되어 있지 않은가. 직장에서 학벌의 중요도를 낮추거나, 어떤 특정한 재능에만 더 가치를 높이 두지 않거나, 매스미디어가 부와 성공에 대해 크게 칭송하지 않거나, 지역사회가 다양한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 그리고 썩어나가도 좋은 큰 파이 대신 분배에 더 신경을 쓰는 정책을 펴는 것도 당연히 효과가 클 것이다.


무엇보다 수시로 비교가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당장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인정을 먹고 자라는 어린 아이들에게 “네가 최고야”, “너는 특별해” 라고 말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좋아, 너의 존재가 나를 기쁘게 해. 그렇지만 특별할 건 없어. 사람들의 가치는 모두 동등하니까.” 하는 자세로 대해주어야 더 교육적인 것 아닐까? 치열한 경쟁 때문에 친구도 없다는 요즘 학생들에게 “성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너희에게 식성의 차이가 있는 것보다 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우열을 가르는 일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그것이 평등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분별하고 평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다시피 한 나로서도, 인간의 존엄함과 신 앞에 동등한 존재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며 더 넓은 마음의 창이 열리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일다> 2011년 1월 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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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구입할 수 있는 곳

일다와 함께 2010. 10. 22. 16:59

* <트라우마>의 역자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심리학으로 본 한국사회 마음의 건강> 구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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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음의 혁명>

부제: 심리학으로 본 한국사회 마음의 건강


<책 소개>


사람들이 치유 작업을 하면 잘 될 수 있을런가 물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잘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전합니다. ‘마음을 여는 인간의 능력을, 어둠을 밝히는 투명성을 믿는다’라는 그런 뜻에서 저는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 투명성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투명성 덕에 오히려 나 자신이 치유 받습니다. 인간에게 낯선 이 땅 위에서, 조용한 혁명을 함께 시작했으면 합니다.”


상심리학자인 저자가 임상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한국 사회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의 토대를 제공한다.


최근 눈에 띄게 심리치유 에세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이 가지는 유일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단지 한 개인의 내적 병리를 분석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와 개인의 내면을 연결하는 조망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구조와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개인의 심리가 한국사회를 작동시키는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많은 심리학 서적들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그친다. 사회의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피상적인 대인관계 처세술을 던지거나 개인 내면의 병리 탓이라고 말할 뿐이다.


반면 이 책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내면적 힘을 긍정하는 철학과 인간관을 기반으로, 무력하고 상처받은 개인들을 넘어서 그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자기 심리를 이해하고, 타인과 이웃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그려 보인다.


특히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의 기원을 이해하고 이를 건강하게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을 유지한다. 일상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심리를 이해하고, 무력한 개인이 되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보다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북돋는다.


2010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수여하는 우수저작상 수상.


<추천사>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갈등과 고통, 이 깊은 상처들은 대부분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온 사회적 가치들에 의해 규정되고 점령된 채 살면서 입은 것들이다.

폭력 앞에 개개인은 대체로 무력하다.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갈등, 분노, 좌절들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나 방치된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최현정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 마음의 소리를 듣는 자아 여행을 권한다. 최현정의 발언은 매우 통찰력이 있다. 들을 수 있어야 공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이웃들의 아픔 또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 밖의 모든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이다. 그리고 이웃들과의 온전한 관계는 사회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용한 마음의 혁명’이다. 모든 변화는 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참으로 혁명이라고 할만하다.

- 이화영(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저자는 대학재학 시절부터 트라우마와 다양한 국가적, 사회적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임상심리학자다. 이 책은 그녀의 생생한 현장 체험과 냉철하면서도 폭넓은 학문적 분석, 예리한 임상적 통찰력이 결합되어 녹아 있는 책이다.

나는 저자 자신과 이 책이 조용한 마음의 혁명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가식을 벗어 던진 진정한 자기사랑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심리적 성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이훈진(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인간 내면의‘ 선함’과‘ 힘’, 그로 인한 인간 스스로의‘ 치유능력’에 대한 필자의 확고한 믿음은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다.

<마음의 조용한 혁명>은 사람 마음을 깊게, 넓게,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에 대한 사유’에 관한 책이다.

겨울날의 메마른 나뭇가지에 초록빛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잘 될 것이라 믿는다는 필자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긍정과 희망이 모여 이 땅 위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 평화박물관

 

/책의 구성/

사람은 상처입기 쉽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며 진실 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사람-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진정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누구이든 그 깊이에는 ‘미움 없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라나려는 강한 힘이 깃들여 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요인을 직시해야 한다. 혼란을 꿰뚫고 인간을 만나려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사회의 변화를 로저스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사람의 힘을 긍정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내 안의 갈등을 보살피며, 또 한편으로 타인이 겪는 고뇌를 헤아리며, 서로가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작동을 똑바로 바라보고자 한다. 마음의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두 눈을 가리고서 세상이 시커멓다 체념하는 일은 괴롭다. 자유로우려면 마음에서 오는 울림을,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을 잃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왜곡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있는 모습 그대로 성장해 나가려는 인간의 경향을 가로막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내 안의 진실된 내 모습과 접촉할 수 없는 정서무시환경 속에서, 그리고 인간 왜곡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폭력 속에서 살아남고자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찾는다.

1장. 화려한 가면은 벗어놓고

좋은 학벌에 번듯한 직장, 돈 많고 화려한 인생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꿈꾸는 명예로운 삶이다. 한국 사회에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서 극화된 경제적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은 그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규격화하고, 단순화 시켰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프로이트 시대에는 자기 내면의 선함과 악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왜곡된 자기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다. 미, 부, 명성처럼 부풀려진 겉모양에 마음이 팔리다 보니 진실한 정체성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함, 그것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마음의 고통이다.

2장. 성장할 권리를

위기에 빠진 사회의 역사 속에는 늘 십대가 있었다. 세상을 고민하고 철학을 공부하던 십대들의 공동체가 곧 위기의 순간에 변화를 이끌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경제적 우위를 성취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관 안에서 아이는 아직 이길 수 없는, 즉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한 관점 안에서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므로 아이가 본연 그대로 성장할 여지는 제약된다. 성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이의 존재가 ‘어른의 세계’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3장. 마음의 목소리 듣기

마음에 방어가 생긴 연유를 이해할 수 있다면, 방어 이면에 놓인 깊은 내면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두려운 나머지 방어하고자 애쓰고, 그 대가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게 되기도 하며,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가 가시털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계속 그 옷을 두르고 날카롭게 털을 세우며 나약한 나 자신을 숨길 것인가 혹은 진실로 한걸음 나아가 사람들과 손잡을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4장. 폭력의 기억, 침묵당하기를 거부하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공통된 경험은 함께 이야기하면서 울고, 웃을 수 있었기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이렇듯 궁극적으로는 공감하는 사회, 또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혜로운 결론을 내릴 채비를 잘 갖추어 보자. 자기 역량의 테두리를 설정하고, 할 만한 수준에서 조금씩 실천해보는 소중한 경험도 간직한다. 마음의 힘은 그 안에서 솟아오른다. 이건 왠지 옳지 못하다 싶을 때, 무엇이 옳지 못하고 무엇이 옳은 걸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 공동의 정서적 경험은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된다. 그 정서 경험이 분노일 때 그것은 의분이고, 의분은 어우러진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힘의 원천이 된다. 그 정서 경험이 슬픔일 때 그것은 애도이고, 애도는 우리의 공동체를 감싸 안는 따뜻한 기운이 될 것이다.


/차례/

들어가는 말 / 어둠을 밝히는 무한한 마음의 가능성

1장 화려한 가면은 벗어놓고
-건강한 자기사랑
-성공 신화의 쳇바퀴
-어떤 자살에 대하여
-우리는 무력할 뿐인가
-울타리, 안과 밖
-깨어있는 접촉

2장 성장할 권리를
아이들의 우울을 이해하려면
공부 못하는 아이
심리학에서 보는 우리 교육 현장
이별의 슬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아동성폭력, 안전하지 않은 사회
십대들의 힘으로 변화하는 사회

3장 마음의 목소리 듣기
-어김없이 욱신대는 마음의 흉터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
-연애와 상처 입은 사랑
-실체가 없는 마음의 체험
-호저 고슴도치의 가시 털, 방어기제
-충분히 슬퍼하기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4장 폭력의 기억, 침묵당하기를 거부하다
-트라우마
-국가 폭력, 그 비인간성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우리 집 옆 골목의 가정폭력과 성착취
-폭력과 해리현상
-폭력에 맞서는 힘
-정의로운 행동

 

<저자 소개 - 최현정> 

서울대학교에서 임상·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임상심리 수련을 마쳤다. 국가폭력, 성폭력, 조직적 성착취 체계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으며 이와 관련된 글을 쓰거나 연구를 했다.

현재 상담실 안에서는 심리치료를 하고 있고 상담실 밖에서는 공동체 속에서 치유력을 발견해나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하고 있다. 파괴적인 환경으로 인한 삶의 고통을 병리화 하는 입장에 반대하며 혼자였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자기 안에 잠재된 힘을 발견하게 될 때,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맑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서로 <트라우마: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고문폭력 생존자 심리치료>, <성격장애 로샤평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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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의 "산책"

일다와 함께 2010. 1. 30. 10:00

"산책" - 박상은의 일러스트 (일다 www.ildaro.com)


<일다>에서 그림작가 별로 작품갤러리를 만드니, 확실하게 작가들의 색깔이 드러난다.
박상은 작가의 그림은 밝고 다정한 느낌을 주어서 좋았다. 위트도 있고...

[박상은의 일러스트] http://www.ildaro.com/sub.html?section=sc45
16개 연재작품 중 4개는 정말 많이 좋아했고, "산책"은 오랫동안 내 컴 바탕화면에 깔려있었다.


안타깝게도 작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올해 연재를 중단했는데...

상은씨, 부디 에너지를 회복하고 즐거운 일들 많이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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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매체로서 일다의 성장(인터뷰)

일다와 함께 2010. 1. 16. 09:00

*일본 아시아_태평양 대학(Asia Pacific University) 학생이며, 현재 핀란드 University of Helsinki에서 "대안매체와 민주주의"(Alternative Media and Democracy)를 공부하는 교환학생과의 메일인터뷰

 

1) 대안매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주 사용되는 *4가지 이론적 접근* 중에 어떠한 접근 방법이 <일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지

 

*4가지 이론적 접근: Understanding Alternative media Theoretical Approaches *

1번째 접근 커뮤니티 공헌에 근거하는 대안매체: serving a community

2번째 접근 주류 미디어의 대안으로서의 대안매체: alternative to mainstream media

3번째 접근 시민 사회(사회운동)에 근거하는 대안매체: linking alternative media to civil society

4번째 접근 뿌리형태(그만큼 활동,내용의 범위에 있어서 제한이 적음)의 대안매체: alternative media as rhizome

 

<일다>는 "주류미디어에 대안으로서의 대안매체"에 해당하겠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2003년 5월 1일 <일다 창간사>를 참고하실 수 있겠고요<일다> 1주년 기념 간담회 "여성주의 언론의 가능성" 관련 보도기사(더 넓은 곳에일다의 시선미치길, 문이정민)와, 2주년을 기념하여 제가 썼던 편집장 칼럼(일다 2년 나기, 조이여울)도 살펴보시면 <일다의 저널리즘>과 관련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 5주년을 맞아서 축하의 글들을 기고 받았는데, 이중 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계신 정민 선생님 글(연한 것은 강한 것보다 깊다)이 일다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합니다.


2) 지난 6년간 대안매체로서 <일다>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것과, <일다>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

 

한국은 식민지배와 (동족 간) 전쟁의 여파, 그리고 이어진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우대립' '흑백논리'가 현재까지도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지만, 그것은 쉽게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틀 안에 갇히곤 했습니다. 좌냐 우냐의 기준 외에 다른 섬세한 잣대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간이 부족합니다. 다양성이라는 말은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다>는 좌파매체냐 우파매체냐(주로 좌파매체로 분류되겠지요)의 단순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위태로운 줄타기'를 자청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바로 그 제3의 영역이 우리가 주목하는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탈북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그것입니다. 탈북자(재중동포와 새터민)들은 좌파진영에서 보았을 때 골칫거리입니다. 북한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이며, 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과 우익의 책략에 넘어가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다> 창간  시기만 해도 시민사회진영에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익에서 보았을 때 탈북자는 북한을 비난하는 용도로, 쉽게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해왔습니다.

 

<일다>에선 탈북자의 인권, 특히 탈북여성들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보도를 해왔습니다. 존재 그 자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일다>의 보도에 대해, 일각(좌파)에서 '여자 오마이인줄 알았더니 여자 조선일보였냐'는 식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지금 좌-우대립에 갇힌 한국사회의 수준이라 할 것입니다.

 

역시 이와 관련하여 <일다 창간사>, 4주년 맞아 제가 쓴 칼럼 [저널리즘, 새로운 지평, 조이여울]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대안매체를 제작, 운영하는 곳의 구조적 특징은 일반적인 회사구조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일다>의 경우는 어떠한지.

 

<일다>는 재정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저널을 만들어가는 상근 인력은 저와 편집장 두 사람입니다. 올해에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 두 명의 인력이 충원돼(그 중 한 분은 작년까지 기자로 일했던 분입니다총 네 사람이 일하고 있지만 여성주의 저널을 책임지는 사람은 둘입니다.

 

하지만 일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지요. (만드는 사람들 참고) 운영위원, 편집위원과 고정 필자들, 통역-번역가, 독자위원들과 자문 주시는 분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창간 때부터 2007년까지 약 5년간 편집장을 맡았고, 2008년부터는 윤정은씨가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기자로 활동하고 있고요. 윤정은씨는 이라크에서 기록활동을 하고 돌아온 2005년에 <일다>와 만났고, 저널리스트로서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3년간 <일다>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저와는 직책과 역할이 다를 뿐 동료관계로 <일다>운영에 함께해왔습니다. 윤정은 편집장 체계가 시작된 2008년부터, '저널'로서의(NGO가 아닌일다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한국회사의 분위기는 너무 관료적이지요. 틀에 박힌 상명하복 구조인데다가 나이주의, 학연과 지연, 남성들간의 돈독한 인맥쌓기로 대표할 수 있겠습니다. <일다>는 그러한 관료제 시스템과는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역할과 권한'이 다르더라도, '동료'로서 서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필요하겠지요. 학연이나 지연, 인종, 나이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평등한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그룹들이 빠지는 오류가 있다고 보는데요. "횡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이 종종 '역할과 권한'을 불분명하게 하거나 혼동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초기부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일다>에서도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4) 대안매체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이 재정문제인데, 대안매체라는 타이틀과 현실적 조직의 관리 면에서 갈등하거나 힘든 점은.

 

재정적인 한계가 뚜렷했지요. <일다> '무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광고영업을 하지 않으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독자들의 자발적인 구독료, 즉 후원금을 통해 운영해왔고, 적은 액수지만 컨텐츠 판매료나 1년 한두 번의 행사 수익 등이 기본 재정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사로서의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웠지요. <일다>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준 아름다운재단에서 2005년부터 2년간 재정지원(연간 약 13백만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떤 언론이든 광고영업을 하는 것은 '언론의 독립성' 면에나 저널리즘의 성격 면에서 제한요소, 또는 위험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한국언론들은 광고수익에 의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일다>는 결국 자체 사업을 통해 자립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올해부터 체계를 정비하고(20명의 출자자가 모여 유한회사로 법인화했습니다. 초대 대표이사를 제가 맡았습니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일다>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펼쳐보는 교육사업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을 또다시 벌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만큼 오기까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다>는 이제 7년이 되어갑니다. 젊다는 이유로, 이 매체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돈도 없는데, 운영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이, 겁도 없이, 이상만 가지고 시작했으니까요. 여성주의 매체가 필요하다는 뜻을 공유하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창간때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인력을 충원할 재정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이제는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거친 시행착오들은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고, 이제 미래를 위한 설계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창간 이후 줄곧 '운영'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 몰라 당혹스럽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일다 사람들은 이렇게 엄혹한 시절(뒤로 돌아가버린 민주주의 사회에서), 꿈을 꿉니다.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5)
<일다>는 대안매체의 중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책임감도 막중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앞으로 <일다>가 대안매체의 정착을 위해 학술적 연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학계나, 학술적인 영역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그러나 일다의 저널리즘에 대한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물론 하고 있습니다. 출판은 역시나 재정부담이 큰 지라, 현실화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2009년 12월 이메일로 답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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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 BlogIcon 트루디 2010.01.24 09:24 Modify/Delete Reply

    일다의 성장 지켜보면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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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과의 인터뷰

일다와 함께 2010. 1. 15. 07:30


“저널리스트로서 끊임없이 제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이죠”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기자를 만나다

글 김윤나영 dongglmoon@hanmail.net
사진 용락 dydfkr@gmail.com


중국 내 탈북여성, 골프장 캐디 노동조합원 집단 해고, 평범한 여성의 눈으로 재구성한 한국전쟁 구술사, 돌봄 노동자 성희롱 문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조이여울 기자가 최근에 쓴 기사목록이다. 다분히 마이너한 주제다. 조이여울 기자는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편협함’이 아니라 ‘공정성’이라고 말한다. 그녀를 만나 어떻게 여성주의 저널리스트가 되었는가, 한국 언론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를 물어봤다.

“기자 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처음에는 풀뿌리운동, 여성운동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어요. 취재를 하더라도 저를 제3자가 아니라 그 안에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주의자로서 저널리즘 윤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운동가이기보다는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조이여울 기자는 『일다』의 창간 멤버다. 대학시절에는 자치기구인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여성주의 운동이 ‘부차적인 운동’으로 여겨져 주목받지 못하던 1990년대에 대학에서 『3차성징』이라는 여성주의 언론 매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글쟁이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을 창구가 부족하거나 편협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죠. 여성들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매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활동은 졸업 후 진로와도 이어졌다. 2000년에 여성신문사에 입사했다. 직업과 운동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02년에 대선을 앞두고 여성신문사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이에 반발하여 몇몇 기자들과 사표를 썼다.

대선 시기가 다가오자 진보 언론이 ‘여성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박근혜 지지론’을 부각시켰다. 조이여울 기자는 “여성운동이 민주화 운동과 함께 했는데도, 여성주의를 박근혜와 연결시키는 언론의 현실이 실망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모아졌다. 2003년 1월에 새 매체를 준비하여 5월에 일다를 창간했다.

사각지대를 비추는 것은 ‘편협함’이 아니라 ‘공정성’

기자 활동을 할수록 한국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주류 언론․좌파 매체 언론인들을 만나 보아도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작년에 독일에서 온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한국에는 언론이 없다’고 했어요. 가볍고 선정적이고 시끄럽게만 한다는 거예요. 깊이 있는 기사를 보기 어려운 것은 한국 사회의 특징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한국언론이라는 틀 안에서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이여울 기자가 보기에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왜곡된 거울일수도 있고 먼지 낀 거울일 수도 있다. 거울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기존에 비춰지지 않은 곳을 조명하는 데서 언론의 공정성이 나온다. “혹자는 ‘여성주의 저널리즘이 편협하다’고 하지만, 주류언론이 비추려하지 않는 곳을 비추는 것이 공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조이여울 기자는 오히려 “독자들이 왜 정치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봐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주류언론을 보면 인물의 중요성에 ‘위계’를 부여하면서 쓸 데 없는 것도 중요한 이슈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여성들, 사회적 약자와 관련되어 꼭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슈는 아예 다뤄지지 않거나 스쳐지나가듯 다뤄진다. “기성언론은 특정집단만을 부각시키면서, 기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언론인이라면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가,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문제’가 빠진 기성언론의 황우석 사태 보도

황우석 사태는 한국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보도 관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황우석은 국가를 상징하는 코드였다. 진보매체라 불리는 한겨레에서조차 황우석 사진과 태극기를 나란히 실으며 선전했던 때가 있었다. 이미 관련 분야에선 연구에 의혹이 쏟아졌지만 주류 언론에서는 제기된 의혹을 성실히 따라가 보도할 수 없었다. 황우석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 대한 비하나 타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주류 한국언론시장에서는 왜곡이 쉽게 일어나며 사실 보도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일다에서는 난자 수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황우석 연구팀이 대형 산부인과와 연결하여 난자를 수급 받은 사실을 포착했다. 윤정은 기자가 보도를 냈다. 자칫하면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떨리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불임여성의 임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산부인과에서는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을 쓴다.  큰 병원은 대학과 결탁하여 연구용으로 난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 때 난자 기증자들은 난자를 적출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설명 받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 난소가 연구소로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국제적으로 난자는 한 사람당 3~4개만 적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한 번에 60개씩 빼낸 사례도 있다. 약을 독하게 쓰면 더 과배란이 되는데 여성에게는 치명적이다. 난자를 빼내다가 몸이 마비되고 심지어 사망한 사례도 있다.  


“여성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죠. 고민하다보면 마음도 아프고 머리도 아픕니다. 당사자가 바로 옆에 누군가로 생각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것쯤은 대의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죠.” 이후 난지수급과 불임여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어떤 언론도 여론화하지 않았다. 후속보도로는 이후 줄기세포 연구 진행상황에 대한 내용이 보도될 뿐이었다.

그 자리에 기자는 없었다

조이여울 기자는 ‘기성언론기자들이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또 다른 예로 징병제 토론회를 들었다. 주류 언론 기자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하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기사 방향에 끼워 맞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도 자료만 보고 흥밋거리 위주로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여성학자들이 모여 ‘징병제도와 성차별 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연 적이 있어요. 징병제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배제시킨다는 내용과 외국 사례가 발제됐습니다. 토론회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일다에서는 이것을 실을 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었어요. 징병제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었습니다.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같이 고민하다 보면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죠.”

주류언론에서는 그 토론회의 내용을 ‘군 가산점제 부활’과 연결시켰다. 조선일보에서는 “여성학자도 여성이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그 토론회에는 기성언론 기자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취재처에 직접 가기도 전에 미리 기사의 방향과 관점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징병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였다면 그 자리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과 미흡한 부분이 보였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성언론에는 징병제 문제가 자기 문제라는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군대를 다른 방식으로 갈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징병제를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성별 논쟁을 붙이는 식입니다.” 

묻혀가는 해녀들의 목소리를 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제주도 해녀 기사’를 꼽았다. 해녀들의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전혀 주목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여성신문에서 해녀들의 기록을 복원했던 경험은 ‘사각지대’에 있는 사안들을 발굴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을 굳혀주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처음엔 그냥 너무 만나고 싶어서 갔어요.” 가기 전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녀로 언론에 검색해 보니 ‘제주 해녀와 서양 잠수부 중에 누가 물속에서 오래 버티나’ 외에 별다른 기사가 없었다. 도청과 시청에 관련 기록이나 정책이 있는지 찾아갔고, 제주 대학 섬 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찾았는데 자료가 너무 미비했다. “이전까지 나에게는 해녀라는 직업에 신비감이 있었는데 공무원들은 해녀를 천한 직업이라고 여겨서 충격을 받았어요.”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에서 관심을 가졌다.

해녀 일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대가 끊긴 상황이다. 한때 해녀의 경제 활동 내역은 제주도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을 차지했다. 해녀들은 조합을 통해 학교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봉사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해녀들은 항일운동을 했다. 해녀들의 노래는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해녀들의 공동체 문화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런 해녀들이 사라지고 있다. 해녀 문화에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독특한 가치가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연구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녀들에게는 직업병이 있어요. 귀가 울려서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녀는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직업병이 있어도 산업재해로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약이라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기사를 썼죠.” 해녀들은 공동체적인 경제활동을 해도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남성 어민 중심으로 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해녀 식당에 찾아가서 어떻게 운영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해녀식당을 만들지 않았다. 정부에서 관광 목적으로 해녀식당을 열어줬다. 우리는 바다에서도, 집에서도, 밭에서도, 여기서도 소처럼 일한다”라는 답이 왔다. 조이여울 기자는 해녀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해녀의 존재를 알지만 우리 사회는 해녀를 외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내세운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제 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데 소재나 관점의 한계는 없을까.


여성주의 프레임이 꼭 여성의 입장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한 개인 속에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이는 주류에 속하기도 하고 비주류에 속할 수도 있다. 여성주의는 소수자 감수성을 넓혀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일다가 여성 의제뿐만 아니라 아동·농민·이주노동자·장애인 등의 사안을 포괄할 수 있는 이유다.


“일다에서 주력해서 다루는 사안 중에 아동인권 문제가 있어요. 이혼 갈등이 있을 때 양육권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법정에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발언이 어머니 입장에서는 유리할 때도 있지만, 아이의 정서를 고려했을 때 좋은 경험이 아닐 수도 있죠.” 

때로는 아동인권이 여성의 입장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인 어머니보다 더 약자다. 예를 들면 입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머니 입장에서 볼 것인가 아이 입장에서 볼 것인가. “지금까지 저의 관점은 소수자 혹은 여성의 관점이었지 어린이의 관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이 ‘끊임없이 제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 2009년 가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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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학

일다와 함께 2010. 1. 14. 08:00

간만에 엄청난 글발을 만났다.
아마추어 작가로는, <단추의 도둑맞은 일기>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문체에 이끌려,
원래 '생활글'이라 하려던 연재명을 '생활문학'이라고 바꿨다.

윤춘신의 생활문학(1) 언 땅에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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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뮤지션 강허달림, 그녀의 성장을 바라며

일다와 함께 2008. 10. 1. 18:49

강허달림의 단독 공연 소식이 들리네요. 5월 싱글앨범 <독백> 발매와 더불어 콘서트가 열렸을 때, 비로소 말로만 듣던 그녀의 무대를 찾아갔는데요. 에디뜨 삐아프를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음색과 가창력, 그리고 무대장악력에 푹 빠져 당장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강허달림은 <일다>와 인연이 깊은 여성뮤지션입니다. 2003년 창간 시기에 문이정민 기자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첫 인터뷰였다고 하지요. 올해 5주년을 맞아 "그때 그 사람" 기획으로 그녀를 인터뷰하면서, 강허달림 음악인생 5년과 <일다>의 5년을 서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연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실력 있고 색깔이 있는 강허달림과 같은 뮤지션들이 잘 성장해나갔으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3년 강허달림의 첫 인터뷰 기사: 나만의 색깔을 찾아서
뮤지션 강허달림
 
[여성주의 저널 일다] 문이정민

‘강허달림’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시골소녀, 꿈을 꾸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40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마을. 그녀는 거기서 태어나 자랐다. 가난한 소작농의 집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모든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동네를 휩쓸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무엇보다 노래는 “동네 콩쿠르에서 냄비는 다 탈 만큼” 잘했다.

그녀가 “인생을 걸” 목표를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 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아버지 환갑잔치 선물로 들어온 TV를 가질 수 있었다. 가요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이선희의 ‘그대여, 잘못은 내게 있어요’를 듣고 그대로 “꽂혔다”. 그때 마음먹었다. ‘가수 해야지’ 하고. 그렇게 마음먹은 후에는 한번도 그 꿈을 버린 적이 없다.

순천시에 있는 중학교에 올라가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옷 잘 입는 애들”이 수두룩했다. 그녀는 자연히 밀렸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언니는 3일 밤을 굶으며 시위를 해 결국 대학에 갔지만 바로 밑인 그녀는 중 3때 상고를 선택했다. 당시 어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난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겠어!”라는 호기어린 선언을 했고 그녀는 그게 좋았다. 그녀가 진학한 상고에는 기타 중창반이 있어 잔뜩 기대했지만 기타를 못 사서 들어갈 수 없었다. 조금 후에야 4천원짜리 기타를 사서 ‘물음표 음악학원’에서 수강할 수 있었다.

마침 KBS 청소년 가요제가 열렸다. 그녀는 원장선생님을 한달 동안 따라다니며 조른 끝에 곡을 하나 받았고 녹음한 테이프를 서울로 보냈다. 3차 예선까지 통과, 본선 진출자 리스트에까지 올랐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용기백배 했다. ‘난 서울로 갈 거야, 할 수 있어.’

[기사 전체 보기]


그로부터 5년 후, 2008년 강허달림 인터뷰: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5주년 특별인터뷰] 그때 그 사람② 강허달림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마음이 아팠다. 무대에 선 그의 입에서 한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느낀 느낌을 말로 표현하자면, 그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의 허스키한 음색과 감각적인 몸짓이 그토록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인지, 이 무대가 있기까지 참으로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나 보구나 하는 추측 때문인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보컬을 만난 설렘이 되려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든 것인지.
 
누군가 물었다면 즐거운 공연이었고 세션도 훌륭했다고 답했을 테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 여운으로 남은 느낌은 눈물을 쏟게 만들 것 같은 슬픔이었다. 이렇게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가수가 또 있었나? 생각해보니, 한 사람 떠오르긴 했다. 전설적인 프랑스 가수 에디뜨 삐아프. 그 외엔 생각나는 이가 없었다.
 
슬픔이 배인 소리,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 강허달림은 그런 소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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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림사랑 (cafe.daum.net/dali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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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래 2008.10.01 22:23 Modify/Delete Reply

    루나틱 홀에서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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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를 요구하며

일다와 함께 2008. 8. 9. 17:17
간통죄 폐지를 요구하며
성적 자기결정권 영역에 공권력 개입해선 안돼
 

법의 역할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인권이 큰 화두가 된 21세기 들어와선 더더욱 법이 사회적인 통념을 좇아가는 데 그 역할을 제한해선 안 되며, 사회구성원들의 실제 삶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간통죄를 존속시키고 있는 현행 법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보다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 더 우선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간의 권리가 혼인이라는 계약관계 속에서 부차적으로 취급되거나 희생되어도 좋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개인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최근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자율권이 지켜져야 할 영역에 공권력을 무차별 투입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아왔습니다. 경찰이 지역의 골목 골목까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서도, 이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사생활 권이 침해된다는 피해사실은 간과한 채, 해당 지역의 범죄 발생 건을 낮추거나 발생 시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편의주의에 치중할 따름이죠.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이 도입하고자 했던 효도특별법 제정(안) 역시 ‘효’라는 유교윤리를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강제적으로 부여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하겠다는 발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노인복지의 문제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법적인 강제를 통해 짐 지워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간통죄 역시 혼인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정조’를 지키지 않았을 때 국가가 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므로, 이 법을 존속시키는 것은 사생활이나 개인의 자율권 영역에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양심이나 가치관, 혹은 타인과의 소통으로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통죄가 21세기 들어와서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인권, 특히 프라이버시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소중한 가치로써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간통죄 존속과 여성의 권리

간통죄 존속을 여성의 권리와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최근 있어왔는데, 그 때의 ‘여성’은 기실은 혼인관계 속에서 한 남성의 ‘배우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를 남녀평등과 연관 짓는 데엔 큰 한계가 있습니다. 간통죄는 그 입법의 시발이 남편 가문에 속해 ‘정조’를 지키지 않은 여성을 단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간통죄 존속이 여성들을 위한 보루라거나 약자를 위한 장치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적절치 않습니다.

간통죄는 이혼심판청구를 할 때에만 고소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혼을 하기 위해, 혹은 위자료를 받기 위해, 이혼 시 더 많은 재산을 분할 받기 위해 필요한 건 간통죄가 아니라, 이혼과정이나 부부 재산과 관련해 공평하고 합리적인 법적 절차입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절실한 것은 간통죄 고소를 하지 않아도 배우자의 외도가 충분히 이혼의 사유가 되도록 이혼의 문턱을 낮추는 일입니다.

혹자는 배우자의 외도가 상대 배우자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으므로, 일종의 ‘가해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연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변심’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커다란 심적 충격을 받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변심’한 연인을 사회가 범죄자로 몰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배우자의 외도에 있어서 합리적인 해결방식은 혼인관계의 의무가 있는 이상 고통을 겪은 상대 배우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해야 할 일이지요.

이와 관련한 민사법상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방안도 고려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엔 우리 사회의 성 차별과 부계혈통주의의 상징이었던 호주제가 폐지됨과 더불어, 부부 간 평등한 재산권을 갖도록 하기 위한 장치들이 속속 마련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공평한 재산분할이 이루어지도록 이혼할 때 배우자가 재산을 몰래 빼돌리지 못하게 재산조회제도 등도 도입될 예정이고, 혼인 중에도 부부가 재산을 분할해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압니다. 이 같은 변화는 여성들의 권리 의식이나 사회적인 평등 지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정조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무엇보다 간통죄를 둘러싸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의 화두입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다른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에 의해 침해되어선 안 되는 소중한 권리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특히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부녀에 대한 정조 침해의 죄’로써 문제를 삼아왔습니다. 우리 법이 여전히 배우자 간의 성폭력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으며, 인권의 문제를 혼인관계에 의한 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간통죄가 존속되고 있는 이유는 이 법의 시초가 그러했듯이 ‘정조권’의 연장선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성들이 간통죄 존속의 수혜자인양 이야기되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권이 전제주의나 독재정권 치하에서처럼 쉽게 무시되어서도, 양보해서도 안 되는 인간존엄성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혼인계약을 통한 가정’을 깨지 말라는 의도로 공권력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통제하거나 특정 시대의 윤리를 법으로 강제하려는 행위는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2005/11/15 [02:00]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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