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5.03.01 여성운동사에서 3.1운동의 위치
  2. 2011.03.09 故 장자연씨의 죽음 앞에서- 2009년 3월 일다 시론
  3. 2011.03.04 기록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4. 2009.02.17 가사 노동의 정치학
  5. 2008.05.23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6. 2008.05.09 여성들은 더 주체적이 되었나

여성운동사에서 3.1운동의 위치

일다와 함께 2015. 3. 1. 11:44

3.1운동은 한국여성들의 첫 사회운동
[특집] 3.1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유산④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 (2013년 3월 19일)

 
‘3.1운동’과 ‘유관순 열사’는 마치 동의어처럼 짝으로 따라다닌다. 16세 나이에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17세에 옥사한 유관순은 “민족의 누이”, “독립운동의 꽃”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 중 3.1운동을 ‘십대여성들이 주체가 된 독립운동’으로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당시에 보도활동을 한 외국인 저널리스트가 “3.1운동에서 여성들, 특히 어린 여성들의 역할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번 3.1절을 맞이해 총 4회에 걸쳐 3.1운동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여성사로서 당시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① 십대여성들의 3.1운동
② 독립투사였던 기생들
③ 3.1운동과 비폭력 정신
④ 여성운동사에서 3.1운동의 위치

 

‘여성들이 정치의 영역으로 나온 최초의 시기’
 
33.1운동이 일어났던 당대는 유교문화가 지배적이고 남녀가 유별하며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던 시절이었다. 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정절’과 ‘순종’이던 사회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3.1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시위대를 지휘하고 비밀결사모임을 조직했던 역사는 한국 여성운동사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 서대문형무소 1930년대 전경. 1919년 3.1운동으로 수감자가 급격히 증가하자, 일제는 서대문감옥 기존 건물을 신축해 수용인원 3천여 명 규모의 대규모 감옥으로 운용하였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3.1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한 최근 역사기록에서 여성의 주체성이나 활약상, 여성참여의 의미를 살려내고 있는 문헌은 많지 않다. 여성학계에서도 여성운동사로서 3.1운동을 조명하는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여성운동사에 대한 기록에서 3.1운동을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소중한 옛 자료들을 발굴해보자.
 
1928년 1월 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여성운동의 사적고찰”이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삼일운동 전체가 조선인민 전부에게 많은 정치적 의식을 환기한 것은 물론이지만은 조선신진여성으로서 정치적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때를 최초라고 하야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3.1운동 이전의 여성운동사상으로 여자교육사상과 ‘신여성’ 그리고 기독교 사상을 들고 있는데, 그 영역이 정치적 영역이 아니라 생활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매우 국한되어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에 반해 3.1운동은 여성의 정치의식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후 조선여성들이 이 계단을 통해 광범위한 영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 시기를 ‘여성운동의 제1기’라고 분류한다.
 
“삼일운동 이전의 소수 소위 신진여성의 사상은 오직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오직 여자교육사상의 선전 교육기관의 설치였다. 그들의 시야는 그 이상 넓지 못하였다. (…) 여자의 생활영역은 지극히 국한되어 있었다. 비교적 일찍 깨었다던 기독교인도 그 종교의 권외에 일보를 나서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제 관계에 대하여 삼일운동 이후의 조선민족운동은 분명히 많은 변화를 주었다. 신진여성의 의식을 발전시켜서 광범하여지도록 하였다. 여성의 정치의식이 이때로부터 발전하게 되었다.” -견원생(鵑園生)
 
여필종부, 삼종지도…낡은 봉건의 속박을 풀다
 
1967년 출간된 『이화팔십년사(梨花八十年史)』에서도 3.1운동을 계기로 변화하게 된 여성의 지위와 사회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학생들의 활동이 여성의 해방과 지위를 향상시켰으며 나아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남성과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필종부니 삼종지도이니 하는 낡아빠진 봉건제도가 조국 비상사태에 임해서 배운 여성들을 안방구석에 묶어놓을 힘도 없도록 시대는 변하고 사태는 급격했던 것이다. 3.1운동 때 여학생들은 대부분 생명을 걸고 일선에 나서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이런 활동은 여성을 봉건제도와 남성들의 이중 속박에서 늦추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화팔십년사』에서는 3.1운동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지독한 봉건제에서 벗어나 여성이 인간으로 인정받는 단계로 지위가 급격하게 향상되었으며, “여성이 자유를 누리게 되는 서곡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평등의식 확산돼
 
1971년 정요섭(1926-2005)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집필한 『한국여성운동사: 일제치하의 민족운동을 중심으로』에서, 저자는 3.1운동을 “한국여성들이 최초로 전개한 사회운동”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여성운동에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요섭 교수는 1919년 2월 동경여자유학생들의 국권회복을 위한 역할과 3.1운동 전야의 준비단계부터 시위행진에 참여하고 희생한 여성들의 역할을 주목하며, “이로부터 여성의 사회참여는 공인되고 따라서 여성교육의 이념도 평등을 지향하여 진일보하였다”고 평한다.
 
집안에서 순종의 미덕만을 닦아왔던 우리나라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이후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민족운동, 여성 근대화 운동을 벌이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3.1운동은 여성의 사회적 각성의 계기가 되었고 이로부터 여성의 지위향상이 비롯되고 있다. 그리하여 1920년대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각 방면에서 여성의 사회적인 자아실현이 결실되는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정요섭 교수는 3.1운동 이후 조직된 여성단체가 1927년까지 70,80개를 헤아리게 되었다고 기록하며, 이후 1920년대 근우회(1927~1931) 등의 여성단체운동과 연결고리를 잇는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독립운동과정 속에서 성장
 
1980년에 3.1운동60주년 기념사업으로 ‘3.1 여성동지회’가 펴낸 『한국여성독립운동사: 3.1운동 60주년기념』에서도 여성항일운동가 고인 67인과 생존자 40인의 업적을 소개하며, 3.1운동을 여성이 사회적으로 진출하게 된 계기이자 첫 사회운동으로서 주목하고 있다.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인 박용옥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1996년 출간한 『한국여성항일운동사연구』에서 3.1운동에 대해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한국 여성운동의 초석으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나라의 여성운동은 서방국가의 경우와는 달리 주로 항일민족독립운동의 추진과정 속에서 발전했다. 그러므로 일제하 여성항일운동은 근대적 한국 여성상 정립의 필수적인 요체였다.”
 
박용옥 교수는 3.1만세운동 직후인 4월 중국 상해에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임시정부가 발표한 민주헌법에 “남녀평등”이 명문화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임시정부는 국내외의 전 민족의 뜻을 모아 세운 것인 만큼 남녀평등은 전 민족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에 이를 지지하고 후원하기 위하여 국내외의 많은 비밀단체들이 조직되고 활동했는데, 여성들도 상해와 평양, 서울 등 각지에서 많은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 근대화 운동, 교육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기록들은 3.1운동 당시 여성들의 참여를 한국의 여성운동사 흐름에서 자리매김하며, ‘정치적 무대’에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등장한 서막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시, 유관순을 기리며 

▲ '유관순굴'이라 불리는, 유관순이 순국한 여성옥사(지하감방)을 복원해놓은 곳. 허리를 펼 수도 없는 독감방 4개가 붙어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천안 아오내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고, 법정에서 ‘남의 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법관에게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히 항의하면서 재판장에게 호통을 치며 거부권을 행사한 이화학당의 유관순(1902-1920)은 3.1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기념되고 있다.
 
당시 16세의 유관순은 원심에서 3년 형을 받았지만 법정모욕죄가 덧붙여져 7년형이 언도되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일제가 독립운동가 여성들을 수감하고 고문하기 위해 신축한 여성옥사(지하감방)를 복원해놓고 있다. 여성옥사에는 허리를 펼 수도 없는, 1평도 채 안 되는 독감방 4개가 붙어있다. 여기가 바로 유관순이 온갖 고문과 악형으로 순국한 장소로, 일명 ‘유관순굴’이라고 불린다.
 
추계 최은희 기자의 기록에 따르면, 유관순은 16세의 미성년임에도 워낙 중형인 까닭에 청의를 입히지 않고 황토빛깔 수의를 입혔으며, 혹독한 형벌을 당하여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이 되어 중병환자와 같았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감옥 안에서도 수감자들을 일깨워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9월 28일, 17세의 나이로 옥사하기까지 숨이 붙어있는 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국권의 회복을 부르짖었다.
 
남녀노소가 참여한 ‘범국민 운동’이라는 키워드는 3.1운동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있다. 3.1운동의 역사에서 ‘성별 분리’와 ‘연령 차별’, ‘사회적 신분’이라는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어 일제의 가혹한 성적 탄압 앞에 비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저항했던 여성들의 용기와 정신은 반드시 기억되고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억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실체에 전보다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3.1운동의 의미 역시 폭을 넓혀 새롭게 인식할 수 있고, 현재에 다시 불러내올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자 살아있는 영감으로서 여성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 조이여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


故 장자연씨의 죽음 앞에서- 2009년 3월 일다 시론

일다와 함께 2011. 3. 9. 21:17

‘성상납’이 아니라 인신매매다
[시론] 故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조이여울/ 2009년 3월 18일) 
 
가끔씩 한국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사회이고, 여성운동의 발전과 함께 여성의 권리가 빠르게 신장된 사회가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故 장자연씨의 죽음에 얽힌 사건들도 이러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왜 아직도 대한민국의 ‘어떤 여성’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인 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채 살아가고, 죽음으로써야 그 사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일까요. 장자연씨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적 착취구조, 대상이 아닌 ‘고리’를 끊으려면
 
소속사 대표로부터 술자리에 나가고 접대를 하도록 강요를 받았고 폭행을 당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문건이 장자연씨 자필로 확인되었습니다.
 
연예인을 사이에 두고 매니지먼트사와 일명 ‘리스트’에 해당하는 거물급 인사들 간의 거래관계에 대해, 흔히 ‘성상납’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용어는 현실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공정한 계약관계 속에 묶여있는 연예인들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성상납’이 아니라 성적 착취이며 ‘인신매매’라는 용어가 더 적절합니다.
 
이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적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 일쑤입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상납’이라는 개념과 심지어 ‘공생관계’라는 인식 속에서, 연예인들의 지위와 이미지는 더욱 하락하게 되고 그만큼 성적인 폭력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이 ‘연예계의 더러운 뒷사정’ 정도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해자 혹은 가해집단이 피해자의 생존권을 쥐고 있을 경우, 인권침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됩니다.
 
일례로, 지난 해 KBS가 충격적인 ‘스포츠 성폭력의 실태’를 보도함으로써,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선뜻 피해를 고발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해자가 학생의 목줄을 쥐고 있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집단이 학생의 장래를 좌지우지할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는 연예인들은 사회의 모욕적인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스스로 검은 고리를 증언하고 끊어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의 인신매매 성격과 성매매의 구조를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 비리 척결하듯 정부가 조치 마련해야
 
우리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더 이상 동종업계의 ‘관행’이라고 이야기되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유력 인사들의 ‘리스트’가 거론되면서, 한 켠에선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깊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경찰과 검찰, 정부에 대한 신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직접 쓴 문서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장씨가 문건을 쓰게 된 이유와는 별도로 연예 매니지먼트를 둘러싼 잔혹한 범죄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불공정 계약에 따른 인신매매의 구조, 성적인 착취와 매수의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그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 매니지먼트 사와 방송과 언론, 대기업에 얽힌 고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법과 제도로 엄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그칠 문제도 아닙니다. 방송시장에서 연예인, 그것도 신인여자연예인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약자의 입장을 배려한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해 보입니다. 공무원 비리를 척결하듯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벌과 단속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는 바로 예방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공정하지 않은 계약관계는 그 자체로 연예인에 대해, 특히 여성연예인에 대해 인권침해를 가져옵니다. 절대로 시장에 맡겨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인-노예로 비유되는 연예인과 소속사와의 현 권력관계를 합법적인 중개사와의 관계나 일반 회사의 노무관계 수준으로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공정하지 않은 거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성적인 착취가 공생관계로 미화되지 않는 사회, 수사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이제 고인이 된 장자연씨의 명복을 빕니다.   일다 2009년 3월 18일 보도 Link

Trackbacks 1 : Comments 0

Write a comment


기록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일다와 함께 2011. 3. 4. 14:08

언론의 영향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이여울의 記錄>(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외된 이를 대변하는 비주류언론의 딜레마
  
석순은 여성주의 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지요? 영향력이란, 내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길 원하지요. 언론활동이란 것 자체가 널리 알려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다> 창간 때부터 줄곧 고민해왔지요.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다.

독자 수가 적은 매체는 보도내용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지 않고, 독자 수가 많은 매체는 실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보도는 현장에 즉각 반영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다>의 경우도 몇몇 보도기사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사실 <일다>의 기사들은 보도된 이후에, 큰 언론들이 해당 아이템을 다시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지요. 그런 일들은 창간 이래 줄곧 있어왔어요.
 
헌데 비주류언론의 기사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된 내용이기에, 큰 매체들은 그 내용을 가져다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발굴한 기사인양 행세하기 쉽습니다. 마땅히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 할 때조차도, 한국언론들은 ‘관행’이란 미명하에 정직하게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지요. 재정도, 인력도 열악한 곳에서 애써 발굴한 기사가, 규모가 큰 조직에서 일하는 정규직 언론인들에게 손쉬운 기획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 되니까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같은 주류언론과의 관계망도, <일다>의 관점과 보도내용이 더 넓게 퍼져나가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수의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일다>가 발굴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슈들을 알아봐주는 독자들도 항상 있답니다. <일다> 애독자의 상당수가 기자들, 작가들, 편집인들, 출판기획자들이라는 점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체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매체의 ‘영향력’과 관련한 나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해요. 사실상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을 담는 <일다>의 기사들이 이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요. 정성을 기울여 소중한 기사를 작성했건만, 이 울림이 어디까지 닿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고 마는 것인지 답답할 때가 왜 없겠어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부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국에 연락해 기사거리로 가져가라고 제보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로 10여 년간 일해온 지금,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매체의 영향력일까?
 
이를 테면 TV 방송은 영향력이 크지요. 그러나 과연 누구에게 무슨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방송의 어떤 프로그램 혹은 어떤 보도가 훌륭하다고 해서, 해당 방송이 광고나 다른 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롭게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요. 방송은 광고와 시청률에 의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외부적으로 검열이 따릅니다. 더구나 매체가 조장하는 소비와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많은 왜곡된 이미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미디어를 볼 때, 그 양면성을 함께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큰 매체를 통해서는 보도 내용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지요. 그러나 다루고 싶은 이슈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사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광고수주와 구독률(또는 시청률)이라는 무시 못할 물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학력도 높은 편인 언론인들의 지위와 신분이,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문제를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TV 뉴스에선 왜 노동 이슈를 그다지 주요하게 다루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선 방송국 기자와 직접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뉴스에서 노동 사안을 ‘노사가 싸운다’ 정도로밖에 다루지 않는지, 지금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중요한 시기에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지 물었지요. 기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라는 점도 있지만, 뉴스의 특성상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임금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엔 내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일하는 여성주의자 언론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지만 정작 기획회의 때 꺼내지도 못하는 사안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분야에서, 동의하지도 않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게다가 여성주의가 끼어들기엔, 언론계라는 노동현장은 아직도 상당히 남성중심적이지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그다지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 또한 개개인의 여성언론인에게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규모가 큰 매체에서 기자나 피디로 일하는 것이 덜 중요하고 의미가 적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성주의자가 어디에서 일하든, 그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지지하지요. 다만 언론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과, 여성주의 언론인으로서 ‘영향력’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 매체에서 하찮은 취급 받으며 묻히는 기사가 여성주의 저널에선 빛이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뤄진다 해도 한두 번 부각되고 말아버리지요. 그나마 선정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말입니다. 반면, 장애여성 이슈가 <일다>에서는 메인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매체에 실리는 것이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일까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지속적인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뉴스가 돌아가는 풍토를 좀 보세요. 아무리 큰 이슈도 하루 이틀밖에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하루 반짝”, 이게 한국의 뉴스를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요? 차별과 평등의 문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 생태적인 관점, 소수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이런 기사를 꾸준히 언제나 볼 수 있는 매체로서 <일다>는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고 그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언론의 영향력은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회에서는 “충성도” 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나는 “애정도” 라고 말하곤 하죠. 알짜배기 독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즉 독자들이 매체를 얼마나 아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다>는 독자들의 “애정도”에 있어선 손에 꼽히는 매체일 거라고 자부한답니다.

 
원고료도 거의 없는 <일다>에 흔쾌히 글을 기고해주는 필자들이 있고, 다른 매체 기자들과는 인터뷰하지 않지만 <일다>의 요청에는 기꺼이 응해주는 취재원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는 곧, 독자들이 <일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도 영향력 아닐까요?
 
여성주의 저널의 운영, <일다>의 재정
 

▲ 기사 모니터링과 후원캠페인 참여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일다 독자위원회.

영향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여성주의 매체는 ‘재정’의 문제에서 너무나도 큰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석순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성주의 언론의 존립 자체와 관련이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드리려 해요.

 
2003년 <일다>가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이 너무도 순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름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요? 나는 그보다는 ‘모래 위에 성을 쌓았다’는 비유를 더 즐겨 하지만 말입니다.
 
광고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이 되는 언론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인 <일다>는 구독료마저 없는 것입니다. 언론이 구독료도 아닌 ‘후원’으로, 광고 없이 유지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널의 운영을 책임져야 했던 나에겐 수년 간 너무나 버거운 짐을 얹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구나 창간 초기엔 편집장이면서 동시에 운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다>의 운명은 바람 부는 등잔 위의 불꽃이나 다름 없었지요.
 
대부분 인터넷 신문들, 소위 ‘남성들 조직’에 비하면 <일다>의 시스템은 소꿉장난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인터넷신문 관련한 실사를 나왔다가, <일다>의 재정상황을 확인하고는 거의 기절을 하셨지요. 바깥에서 보는 <일다>는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규모 있는 언론으로 보였는데, 매체가 운영될 수 있는 바탕인 재정 수준이 동호회 내지는 대학동아리 수준이었기 때문이에요.
 
재정이 약하고 운영이 부실한 관계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없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심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러던 것이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편집장을 맡게 되고(운영자와 저널 책임자가 분리되고),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준 덕분에 <일다>는 2009년에 유한회사(주식회사의 작은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미디어일다를 설립하고, 보다 튼튼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무 명의 사원(주주 개념)이 함께 조직을 세운 것인데, 상법 상으론 투자의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일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좀더 큰 후원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사실상 <일다>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은 돈이라기보다 애정과 정성입니다. 미약하게 세상에 태어난 작은 불꽃이 꺼질까 봐, 금이야 옥이야 지켜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그 마음이, 그 정성이 <일다>를 지금까지 있게 한 힘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300여명의 ‘일다의 친구’들. 후원금액으로 따지자면 매체를 굴러가게 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지만, 나는 친구들 명단을 볼 때마다 <일다>에 매달 기부를 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감탄하곤 합니다. 수십만 독자 수를 내세우는 매체들과 비교해 너무 약한 외침이라고, 혹은 수천 명이 큰 액수를 기부하는 조직들에 비해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니까요.
 
지금 <일다>는 박희정 기자가 3대 편집장을 맡아 저널을 책임지고 있고, 편집위원들과 통신원, 필자들이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윤정은 기자는 출판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필자 최현정씨의 책 <조용한 마음의 혁명>을 발간했지요.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함수연씨도 함께, 아주 작은 규모지만 (유)미디어일다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시기랍니다.
 
물론 아직도 <일다>는 고용을 보장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은 액수의 임금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론 일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구성원들이 매년 논의하고, 또 논의하고 있어요. 머리를 맞대면 뭔가 뾰족한 수가 하나씩 나온답니다. 제가 휴가를 얻어 과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다> 2011년 3월 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44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


가사 노동의 정치학

자유 게시판 2009. 2. 17. 11:05

2009년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다시금 1968년을 읽고 있다. 삼인에서 출간한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을 보면, 저자 중 한 사람인 타리크 알리는 이 책을 집필하던 1998년 당시 머리글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1968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는 가라앉은 대륙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계에, 자조와 이기주의가 평등한 세계에 대한 믿음을 대체해 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 그러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머리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시기
작가 수잔 왓킨스와 영화제작자 타리크 알리는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 등 모든 금기가 도전받고 깨뜨려진 시기", "전세계의 모든 세대에게 흔적을 남긴 해"였던 1968년의 기록을 모아, "정치적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당시 간행된 급진적 성향의 잡지 표지들, 정치만평과 시사칼럼, 각국 반전시위대의 모습, 동파키스탄 여학생들의 맨발 침묵시위, 언론에 공개된 체 게바라의 시신, 베트남전에 지친 미군병사들 사진, 초기 여성해방운동 포스터, 빠리 시내 벽에 쓰여진 낙서, 아프리카 속담과 흑인민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중엔 반전운동가이거나 신좌파인 여성들이 운동 과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소개되는데, 운동사회 내 가부장제 논란은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지속적인 논쟁 거리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사실 20~30년간이나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아니한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당시 여성들의 글 중에서 "가사 노동의 정치학"을 옮겨본다.

[가사 노동의 정치학]

그것은 완전히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은 모두 직업이 있었다. 그런데 왜 가사 노동을 분담하면 안 되는가? 나는 내 배우자에게 가사 노동을 분담하자고 제의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동의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너무 유식해서 당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따라서 몇 년 동안 대화가 계속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하지만 내가 그걸 잘할 수 없잖아. 각자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해야 해."
이것은 불행하게도 이런 의미다. 나는 접시를 닦는 일이나 요리에는 소질이 없어. 내가 잘하는 일은 목공일이나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 가구의 위치를 옮기는 일이야.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자주 가구의 위치를 옮기지?)

이것은 또 이런 의미다. 나는 단조롭고 시시하고 따분한 일은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그렇지만 그것은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나에게 보여줘야 할 거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리고 당신은 내가 그것을 할 때마다 시범을 보여줘야 해.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 일을 할 동안 앉아 있거나 독서를 하려고 하지마. 당신 혼자 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느낄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성가시게 만들 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행복했었는데." (그가 일을 할 차례가 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의미다. 예전에 '나'는 행복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일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이것은 이런 의미다. 가사 노동은 별 볼 일 없는 일이야. 그것은 내 품위를 떨어뜨리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그러나 당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아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성 해방은 진정한 정치운동이 아니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혁명이 아주 집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것.


팻 메이너디(Pat Mainardi)
레드스타킹즈 그룹 (Redstockings Group)
뉴욕, 1968년

Trackbacks 1 : Comments 0

Write a comment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일다와 함께 2008. 5. 23. 04:44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5주년 특별기획] 여성주의 시대진단②
 

여초(女超) 현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남성교원할당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초등교원 여초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 것을 비롯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에서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것에 대한 매체의 관심도 유달랐다. 대기업 임원급 여성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해, 여성의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천정’이 무너졌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문은 여성에게 얼마나 열려있는가. 여성들은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 걸까.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지위는 변화했을까.
 
공교롭게도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이랜드로 대표되는 여성노동사안들은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적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발이 묶여있다.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단결권 억압, 여성들이 다수인 직무에 대한 성차별 통념과 불법파견,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외주화 확산 문제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과연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변화했는지, 여성노동의 현 주소를 찾아가보자.
 
법제도 바뀌었는데 현실은 왜?
 
▲ [변한 것과 변치 않은 것]     © 박희정
“소수의 여성들이 상위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성의 고시합격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은. (사람들은)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데, 상당히 소수죠.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체감합니다.” (정형옥)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2% 정도에 그친다. 20년 전인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당시에 비해 5%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여성임금은 남성의 67.8%에 불과해 무려 30% 이상 격차가 있다. 이 같은 지표들을 토대로 보았을 때에도, 노동시장 내 여성의 지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정형옥(성공회대 여성학 강사)씨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갈수록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차별이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작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유통업계 여성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여있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 한가운데 ‘성별직무분리’가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통서비스업 내의 20개 업무 중에서 남녀의 비중이 40~60%인 “중립” 직무는 3개에 불과해, 결국 대다수 업무가 ‘남성의 일’, ‘여성의 일’로 나뉘어 있었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연구팀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성별 격차’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성별의 노동자 즉 “비교의 대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형옥씨는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려면, 누구에 비해서 불이익 받는지 비교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성별로 직무를 분리해버려서 여성들과 유사한 일을 하는 남성들이 없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해서도 비교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여성들이 성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기는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일, 여자의 일’
  아직도
 
▲ 철도공사의 불법파견으로 비롯된 KTX승무원들의 투쟁은 한국노동시장의 성차별 문제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별 직무분리는 유통업계만 아니라 금융 쪽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06년 증권노조 여성위원회가 진행한 ‘증권산업 여성비정규고용실태조사’에서도 성별직무분리가 임금과 고용형태, 승진 등에서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격차를 심각하게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정희선(현 전국운수산업노조)씨는 “단일하게 한 가지 차별만이 존재하면 문제의식을 갖기가 더 쉬운데,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면서 특히 ‘고졸여성, 대졸남성’과 같이 성별 직무분리가 학력과 결합되어 마치 “(차별이 아닌) 당연한 신분이자 자격”처럼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희선씨는 특히 ‘왜 지금도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철도공사의 경우에 기관사는 거의 다 남자들이죠. 지하철이나 전기 쪽도 여성이 별로 없고. 만약 여자기관사가 뽑혔다 하면 그게 미담이 되고, 인생 성공기가 되고, 이슈가 되죠.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항공 쪽 조종사들도 거의 여자가 없죠.”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는 일자리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여성들의 취업은 제한을 받게 된다. 정희선씨는 “주요 공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경우 아주 엘리트들만 본사 관리직으로는 몇 들어갈 순 있을 텐데, 일종의 양극화라고 봐야죠. 관리직에만 소수 뽑고, 기술직이라든가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에요. 통념적으로 대학졸업장 필요 없는 안정적인 직업들, 직종들엔 여자들이 갈 수가 없어요. 대신 콜센터 같은 데로 가게 되는 거죠.”
 
“당연히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아예 처음부터 구직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점도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한 요인이 된다. 정희선씨는 “노동조합도 이제 ‘채용’의 문제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조합이) 여성고용이나 장애인고용과 같은 이슈를 새로 개발해서, 성별로 구분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아직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교육이 되고 캠페인이 되지 않으면 남자의 일은 앞으로도 계속 남자의 일이 되겠죠.”
 
일하는 엄마의 삶의 질은 개선되었을까

 
빈순아(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씨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육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때도 노동공약 자체를 별로 얘기한 바가 없는데, 그나마 공약을 내놓은 것이 보육이죠. 보육은 책임지겠다는 둥 큰소리 쳤지만 피부로 와 닿는 변화가 없어요.”
 
빈순아씨는 어린이집이 지역마다, 국가가 관리하는 형태로, 저렴하게 누구나 아이를 보낼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저소득층의 경우엔 보육료 감면혜택이 있지만,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한부모 여성의 경우엔 아직도 보육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보육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들이 보육을 떠안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아이를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여성의 노동력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공보육 강화와 더불어, 여성노조는 현안으로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은 왜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성별 임금격차 문제는 여성의 빈곤과 경제적 자립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데이터나 연구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같은 시간 일하는데도 왜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나는 것인지, 연구를 통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이를 토대로 여성운동 내부에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활동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여성노동의 이원화, 소외된 여성들에게 ‘초점을’

 
▲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간병인
한편,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여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지만, 일부 여성들 중에는 전문직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경력 관리를 하는 층이 생겨난 것에 대해 여성노동시장이 “이원화”되었다고 분석하며 여성들 간 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씨는 “(여성들 중에) 남녀고용평등법의 효과라고 보여지는 일부 ‘개선된’ 층이 있다”면서, 반면 저임금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면 더욱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여성들은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여성노동시장이 양극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여성노동자들은 간병인, 도우미, 청소용역, 백화점 판매원과 같은 서비스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100만원 미만 월 소득을 받는 여성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비껴가 있고, 경력관리가 되지 않으며, 건강이 악화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고 고용불안에 떠는 여성들.
 
은수미씨는 저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과 비정규노동자들의 심각한 노동현실에 비해, 여성운동이나 시민단체들 내부에서 이러한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은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남녀고용평등 정책과 적극적 조치 등이 어떤 여성들에게 효과가 있고, 어떤 여성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는지 모니터링을 해봐야 할 때입니다. 명확하게 혜택을 받지 못한 층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책이 만들어져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초점을 옮겨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관련기사
여성들은 더 주체적이 되었나
여유가 없는 삶, 불안한 여성들

2008/05/15 [11:59] ⓒ www.ildaro.com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


여성들은 더 주체적이 되었나

일다와 함께 2008. 5. 9. 00:04
여성들은 더 주체적이 되었나
[5주년 특별기획] 여성주의 시대진단①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의 성차별 구조와 통념은 상당히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권리의식을 키우며 당당하고 공평하게 살아가길 원했고, 호주제를 비롯한 가부장제의 잔재들을 없애거나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상적인 차별에도 저항했다. 여성의 사회참여의식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분명 사회 현상적으로는 변화나 뚜렷이 나타나는 흐름들이 관찰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 개개인의 삶은 어떠한가, 여성들은 이전보다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여성들이 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할까. <일다>에서 ‘여성주의 시대진단’을 기획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다. 물론 여성들은 이전의 남존여비 사회와 비교했을 때,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지 못한 현상들도 보인다.
 
성형 요구하는 사회, 명품 요구하는 사회
 
“20대 남녀의 사랑과 섹스에 대한 생각을 보면, 여자들이 확실히 주도적이 되었구나 하는 걸 느껴요.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섹스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남자들이 원하기 때문에 준다는 식으로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즐긴다는 거죠.”
 
대학에서 ‘성과 인간관계’ 수업을 하고 있는 배정원(연세성건강센터 소장)씨는 젊은 여성들의 성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고 평한다. 성에 대해 금기시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성행위를 할 때에도 보다 주체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배정원씨는 여성들이 “도구화되고 있고, 자존감을 갖기 어렵다”는 상반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명품으로 치장한 미모의 모델’을 내세우는 매스미디어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성형수술을 하고 명품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없고, 물건에 기대고 외모에 기대는 것은 자아존중감의 문제가 있는 거죠.”
 
외모지상주의에 물신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매체가 주는 이미지 모델이 턱도 없이 기가 막힌 거라서, 그런데 너무 이른 시기에 자연스럽게 주입시키다 보니 (개개인이) 그러한 기준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내공을 쌓기란 어려운 일이죠.”
 
특히 사회에 성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성적인 주체성이나 평등과는 거리가 먼 현상이다. 배정원씨는 성의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성 구매 행위를 하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소비를 하기 위해 어린 여성들이 몸을 상품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성 산업으로 빠져드는 십대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조직적으로 (성 산업에) 걸려들게 하는 위험요소가 많은데 경험이 부족해서 그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거예요. 한 번 발을 들여놓았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는 거죠.”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
 
임상심리사 최현정(주디스 허먼 저 <트라우마> 역자)씨도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아존중감을 갖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아존중감이란 무엇일까.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내가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어떤 실패 경험이 있어도 나는 이러한 사람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거나 추스르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개념이 다양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서, 한쪽 측면에서 타격을 받더라도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자기 가치를 유지하죠. 그것이 자아존중감이 있는 것입니다.”
 
최현정씨는 사람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 “한쪽의 특정영역을 강조하게 되면” 자아존중감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사회가 다양하게 정의해주고 다양한 모습들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외모와 같이 눈에 보이는 가치만 부각시키니까, 개인들은 자기 가치를 지키기가 어려워 진다”는 설명이다.
 
남녀 불문하고 “갈수록 완벽한 상을 추구”하는 사회가 갖는 해악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사람은 모두 열등하거나 잘난 면이 있잖아요. 기쁜 감정이 있으면, 슬픈 감정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운 사람도 있고. 그런데 자기 단점은 다 숨기려 하고 오로지 잘난 모습만 보이려는 거예요. 감추고 피할수록 더 악화되거든요. 사회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지가 않고 인위적인 모습이죠.”
 
특히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가 커질수록 여성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자아존중감을 갖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전보다 오히려 스테레오타입이 더 추가가 되고 있죠. 예쁘고, 착하고, 애도 잘 키우는 수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현모양처가 꿈이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딸을 키우는 함수연(교육문제 관련 자유기고가)씨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에 분노하며 모두가 괴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맡겨야 하는 건지, 해왔던 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 갈등을 겪고 있다 했다.
 
남편의 지위와 아이의 성적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대리만족을 하던 여성들의 모습에서 지금 현재는 얼마나 더 나아져가고 있는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함수연씨는 “엄마들에게는 자기 생활이 없다”고 말한다.
 
“옛날 부모들은 제때 먹이고 입히는 게 과제였는데, 지금은 완벽하게 키우려고 몰아치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뒤쳐지는 느낌을 받고, 뒤쳐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아이가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버드 보내라는 양육서가 판 치는 세상에서 과연 그 ‘평균’이라는 게 어떤 것이겠어요?”
 
함수연씨는 여성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은, 공포스러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 떠밀리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때만 해도 현모양처 되겠다는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가보니 성차별도 경험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되지 않았잖아요. 결과적으로는 현모양처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것에 대한 좌절감이 있어서, 애한테 투영하고 집착하는 것 같아요.”
 
자식의 과제를 대신해 줄뿐 아니라 다 큰 아이 입에 밥을 떠먹여주고, 아이들끼리 놀다가 다툼이 있으면 끼어들어서 대신 싸우고, 자식의 인생이 곧 자기의 인생이라고 여기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너무 무서워져서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으니까, 엄마가 더 붙어 다니게 된다”고 한다.
 
“요즘은 집안에만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전업주부라 해도 아르바이트 하나씩 하구요. 하지만 기혼여성들의 주된 관심사는 집값과 아이들 교육이에요.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자기 아이, 자기 가족, 우리의 재산증식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여유가 없는 삶이죠.”
 
‘가족해체론’ 급부상 이면에 가족주의 더욱 강화돼
 
겉잡을 수 없는 사교육 열풍에 대해, 여성학자 조주은(<현대 가족 이야기>의 저자)씨는 ‘무한경쟁 시대 가족의 생존전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제 가족들이 자신들이 일하지 않는 노년의 삶을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사람들이 오래 사니까, 자식들한테 물려줄 금융자산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돈을 벌 때 아이의 사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 가족에 대한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한국사회는 최근 이혼가정, 미혼모 가정,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 동성애자 공동체, 경제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담론이 급부상했다.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한국의 뿌리깊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족주의를 벗어나 다른 인간관계를 꿈꾸는 시도들은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는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가족해체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정상가정’들이 있잖아요. 그들의 연대가 더욱 공고해진다고 할까요. 자녀교육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어요.”
 
경쟁을 부추기면서 구성원들에게 안전 망을 구축해주지 않는 사회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한경쟁 사회로 접어들면서 평생직장 개념도 깨지고, 사회의 공적 서비스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 상류층이 아니고는 여성들이 현재가 없고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미래는 보이지 않고 결국 자식을 통해 비전을 보려 한다는 거죠.”
 
자신을 알고 삶을 꿈꾸기 이전에 요구 받는 것
 
‘평등’이라는 개념이 법과 제도에 반영되어가고 ‘여성주의’가 사회에 일정 정도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지금의 시대,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다른 무엇보다 ‘돈’이 상징이 된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대에서 여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몇 가지 현상들을 토대로 점검해보았다.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특정한 모습과 특정한 삶의 형태를 강요 받고 있다. 가녀린 몸매와 볼륨 있는 가슴, 큰 키와 작은 얼굴, 투명하고 어려 보이는 피부 등 외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은 보다 구체적이고 까다로워졌다. 살이 찌면 안 되고, 코가 낮아선 안 되며, 나이가 들어서도 안 되는 기이한 수준이다.
 
무한경쟁에 내몰렸지만 결코 공정하지 않은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은 당당하게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커리어 우먼’이면서 좋은 여자친구, 기특한 며느리, 무엇보다 자식 잘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기대 받고 있다. 그러니 여성들은 만족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맛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어떤 부분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보다는 사회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더 많이 갖게 된다.
 
이 시대, 과연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고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자기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여성들의 삶은 주체적인가.
 
여성주의가 여성들의 삶, 나아가 모든 사회구성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지금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과연 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었나를 다시금 상기시켜보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와 여성 개개인들, 그리고 여성운동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여유가 없는 삶, 불안한 여성들

2008/05/01 [11:04] ⓒ www.ildaro.com

Trackbacks 3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