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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일다와 함께 2008. 5. 23. 04:44
노동시장, 여성의 지위 어떻게 변했나
[5주년 특별기획] 여성주의 시대진단②
 

여초(女超) 현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남성교원할당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초등교원 여초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 것을 비롯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에서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것에 대한 매체의 관심도 유달랐다. 대기업 임원급 여성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해, 여성의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천정’이 무너졌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문은 여성에게 얼마나 열려있는가. 여성들은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 걸까.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지위는 변화했을까.
 
공교롭게도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이랜드로 대표되는 여성노동사안들은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적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발이 묶여있다.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단결권 억압, 여성들이 다수인 직무에 대한 성차별 통념과 불법파견,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외주화 확산 문제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과연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변화했는지, 여성노동의 현 주소를 찾아가보자.
 
법제도 바뀌었는데 현실은 왜?
 
▲ [변한 것과 변치 않은 것]     © 박희정
“소수의 여성들이 상위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성의 고시합격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은. (사람들은)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데, 상당히 소수죠.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체감합니다.” (정형옥)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전반적인 지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2% 정도에 그친다. 20년 전인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당시에 비해 5%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여성임금은 남성의 67.8%에 불과해 무려 30% 이상 격차가 있다. 이 같은 지표들을 토대로 보았을 때에도, 노동시장 내 여성의 지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정형옥(성공회대 여성학 강사)씨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갈수록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차별이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작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유통업계 여성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여있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 한가운데 ‘성별직무분리’가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통서비스업 내의 20개 업무 중에서 남녀의 비중이 40~60%인 “중립” 직무는 3개에 불과해, 결국 대다수 업무가 ‘남성의 일’, ‘여성의 일’로 나뉘어 있었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연구팀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성별 격차’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성별의 노동자 즉 “비교의 대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형옥씨는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려면, 누구에 비해서 불이익 받는지 비교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성별로 직무를 분리해버려서 여성들과 유사한 일을 하는 남성들이 없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해서도 비교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별로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여성들이 성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기는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일, 여자의 일’
  아직도
 
▲ 철도공사의 불법파견으로 비롯된 KTX승무원들의 투쟁은 한국노동시장의 성차별 문제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별 직무분리는 유통업계만 아니라 금융 쪽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06년 증권노조 여성위원회가 진행한 ‘증권산업 여성비정규고용실태조사’에서도 성별직무분리가 임금과 고용형태, 승진 등에서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격차를 심각하게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정희선(현 전국운수산업노조)씨는 “단일하게 한 가지 차별만이 존재하면 문제의식을 갖기가 더 쉬운데,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면서 특히 ‘고졸여성, 대졸남성’과 같이 성별 직무분리가 학력과 결합되어 마치 “(차별이 아닌) 당연한 신분이자 자격”처럼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희선씨는 특히 ‘왜 지금도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철도공사의 경우에 기관사는 거의 다 남자들이죠. 지하철이나 전기 쪽도 여성이 별로 없고. 만약 여자기관사가 뽑혔다 하면 그게 미담이 되고, 인생 성공기가 되고, 이슈가 되죠.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항공 쪽 조종사들도 거의 여자가 없죠.”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는 일자리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여성들의 취업은 제한을 받게 된다. 정희선씨는 “주요 공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경우 아주 엘리트들만 본사 관리직으로는 몇 들어갈 순 있을 텐데, 일종의 양극화라고 봐야죠. 관리직에만 소수 뽑고, 기술직이라든가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에요. 통념적으로 대학졸업장 필요 없는 안정적인 직업들, 직종들엔 여자들이 갈 수가 없어요. 대신 콜센터 같은 데로 가게 되는 거죠.”
 
“당연히 남자의 일”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아예 처음부터 구직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점도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한 요인이 된다. 정희선씨는 “노동조합도 이제 ‘채용’의 문제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조합이) 여성고용이나 장애인고용과 같은 이슈를 새로 개발해서, 성별로 구분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아직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교육이 되고 캠페인이 되지 않으면 남자의 일은 앞으로도 계속 남자의 일이 되겠죠.”
 
일하는 엄마의 삶의 질은 개선되었을까

 
빈순아(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씨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육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때도 노동공약 자체를 별로 얘기한 바가 없는데, 그나마 공약을 내놓은 것이 보육이죠. 보육은 책임지겠다는 둥 큰소리 쳤지만 피부로 와 닿는 변화가 없어요.”
 
빈순아씨는 어린이집이 지역마다, 국가가 관리하는 형태로, 저렴하게 누구나 아이를 보낼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저소득층의 경우엔 보육료 감면혜택이 있지만,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한부모 여성의 경우엔 아직도 보육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보육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들이 보육을 떠안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아이를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여성의 노동력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공보육 강화와 더불어, 여성노조는 현안으로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은 왜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성별 임금격차 문제는 여성의 빈곤과 경제적 자립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데이터나 연구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같은 시간 일하는데도 왜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나는 것인지, 연구를 통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이를 토대로 여성운동 내부에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활동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여성노동의 이원화, 소외된 여성들에게 ‘초점을’

 
▲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간병인
한편,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여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지만, 일부 여성들 중에는 전문직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경력 관리를 하는 층이 생겨난 것에 대해 여성노동시장이 “이원화”되었다고 분석하며 여성들 간 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씨는 “(여성들 중에) 남녀고용평등법의 효과라고 보여지는 일부 ‘개선된’ 층이 있다”면서, 반면 저임금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면 더욱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여성들은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여성노동시장이 양극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여성노동자들은 간병인, 도우미, 청소용역, 백화점 판매원과 같은 서비스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100만원 미만 월 소득을 받는 여성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비껴가 있고, 경력관리가 되지 않으며, 건강이 악화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고 고용불안에 떠는 여성들.
 
은수미씨는 저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과 비정규노동자들의 심각한 노동현실에 비해, 여성운동이나 시민단체들 내부에서 이러한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은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남녀고용평등 정책과 적극적 조치 등이 어떤 여성들에게 효과가 있고, 어떤 여성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는지 모니터링을 해봐야 할 때입니다. 명확하게 혜택을 받지 못한 층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책이 만들어져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초점을 옮겨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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