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비평'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16 대안매체로서 일다의 성장(인터뷰) (2)
  2. 2010.01.15 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과의 인터뷰

대안매체로서 일다의 성장(인터뷰)

일다와 함께 2010. 1. 16. 09:00

*일본 아시아_태평양 대학(Asia Pacific University) 학생이며, 현재 핀란드 University of Helsinki에서 "대안매체와 민주주의"(Alternative Media and Democracy)를 공부하는 교환학생과의 메일인터뷰

 

1) 대안매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주 사용되는 *4가지 이론적 접근* 중에 어떠한 접근 방법이 <일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지

 

*4가지 이론적 접근: Understanding Alternative media Theoretical Approaches *

1번째 접근 커뮤니티 공헌에 근거하는 대안매체: serving a community

2번째 접근 주류 미디어의 대안으로서의 대안매체: alternative to mainstream media

3번째 접근 시민 사회(사회운동)에 근거하는 대안매체: linking alternative media to civil society

4번째 접근 뿌리형태(그만큼 활동,내용의 범위에 있어서 제한이 적음)의 대안매체: alternative media as rhizome

 

<일다>는 "주류미디어에 대안으로서의 대안매체"에 해당하겠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2003년 5월 1일 <일다 창간사>를 참고하실 수 있겠고요<일다> 1주년 기념 간담회 "여성주의 언론의 가능성" 관련 보도기사(더 넓은 곳에일다의 시선미치길, 문이정민)와, 2주년을 기념하여 제가 썼던 편집장 칼럼(일다 2년 나기, 조이여울)도 살펴보시면 <일다의 저널리즘>과 관련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 5주년을 맞아서 축하의 글들을 기고 받았는데, 이중 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계신 정민 선생님 글(연한 것은 강한 것보다 깊다)이 일다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합니다.


2) 지난 6년간 대안매체로서 <일다>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것과, <일다>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

 

한국은 식민지배와 (동족 간) 전쟁의 여파, 그리고 이어진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우대립' '흑백논리'가 현재까지도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지만, 그것은 쉽게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틀 안에 갇히곤 했습니다. 좌냐 우냐의 기준 외에 다른 섬세한 잣대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간이 부족합니다. 다양성이라는 말은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다>는 좌파매체냐 우파매체냐(주로 좌파매체로 분류되겠지요)의 단순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위태로운 줄타기'를 자청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바로 그 제3의 영역이 우리가 주목하는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탈북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그것입니다. 탈북자(재중동포와 새터민)들은 좌파진영에서 보았을 때 골칫거리입니다. 북한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이며, 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과 우익의 책략에 넘어가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다> 창간  시기만 해도 시민사회진영에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익에서 보았을 때 탈북자는 북한을 비난하는 용도로, 쉽게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해왔습니다.

 

<일다>에선 탈북자의 인권, 특히 탈북여성들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보도를 해왔습니다. 존재 그 자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일다>의 보도에 대해, 일각(좌파)에서 '여자 오마이인줄 알았더니 여자 조선일보였냐'는 식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지금 좌-우대립에 갇힌 한국사회의 수준이라 할 것입니다.

 

역시 이와 관련하여 <일다 창간사>, 4주년 맞아 제가 쓴 칼럼 [저널리즘, 새로운 지평, 조이여울]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대안매체를 제작, 운영하는 곳의 구조적 특징은 일반적인 회사구조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일다>의 경우는 어떠한지.

 

<일다>는 재정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저널을 만들어가는 상근 인력은 저와 편집장 두 사람입니다. 올해에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 두 명의 인력이 충원돼(그 중 한 분은 작년까지 기자로 일했던 분입니다총 네 사람이 일하고 있지만 여성주의 저널을 책임지는 사람은 둘입니다.

 

하지만 일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지요. (만드는 사람들 참고) 운영위원, 편집위원과 고정 필자들, 통역-번역가, 독자위원들과 자문 주시는 분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창간 때부터 2007년까지 약 5년간 편집장을 맡았고, 2008년부터는 윤정은씨가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기자로 활동하고 있고요. 윤정은씨는 이라크에서 기록활동을 하고 돌아온 2005년에 <일다>와 만났고, 저널리스트로서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3년간 <일다>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저와는 직책과 역할이 다를 뿐 동료관계로 <일다>운영에 함께해왔습니다. 윤정은 편집장 체계가 시작된 2008년부터, '저널'로서의(NGO가 아닌일다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한국회사의 분위기는 너무 관료적이지요. 틀에 박힌 상명하복 구조인데다가 나이주의, 학연과 지연, 남성들간의 돈독한 인맥쌓기로 대표할 수 있겠습니다. <일다>는 그러한 관료제 시스템과는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역할과 권한'이 다르더라도, '동료'로서 서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필요하겠지요. 학연이나 지연, 인종, 나이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평등한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그룹들이 빠지는 오류가 있다고 보는데요. "횡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이 종종 '역할과 권한'을 불분명하게 하거나 혼동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초기부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일다>에서도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4) 대안매체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이 재정문제인데, 대안매체라는 타이틀과 현실적 조직의 관리 면에서 갈등하거나 힘든 점은.

 

재정적인 한계가 뚜렷했지요. <일다> '무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광고영업을 하지 않으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독자들의 자발적인 구독료, 즉 후원금을 통해 운영해왔고, 적은 액수지만 컨텐츠 판매료나 1년 한두 번의 행사 수익 등이 기본 재정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사로서의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웠지요. <일다>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준 아름다운재단에서 2005년부터 2년간 재정지원(연간 약 13백만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떤 언론이든 광고영업을 하는 것은 '언론의 독립성' 면에나 저널리즘의 성격 면에서 제한요소, 또는 위험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한국언론들은 광고수익에 의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일다>는 결국 자체 사업을 통해 자립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올해부터 체계를 정비하고(20명의 출자자가 모여 유한회사로 법인화했습니다. 초대 대표이사를 제가 맡았습니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일다>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펼쳐보는 교육사업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을 또다시 벌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만큼 오기까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다>는 이제 7년이 되어갑니다. 젊다는 이유로, 이 매체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돈도 없는데, 운영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이, 겁도 없이, 이상만 가지고 시작했으니까요. 여성주의 매체가 필요하다는 뜻을 공유하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창간때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인력을 충원할 재정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이제는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거친 시행착오들은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고, 이제 미래를 위한 설계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창간 이후 줄곧 '운영'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 몰라 당혹스럽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일다 사람들은 이렇게 엄혹한 시절(뒤로 돌아가버린 민주주의 사회에서), 꿈을 꿉니다.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5)
<일다>는 대안매체의 중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책임감도 막중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앞으로 <일다>가 대안매체의 정착을 위해 학술적 연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학계나, 학술적인 영역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그러나 일다의 저널리즘에 대한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물론 하고 있습니다. 출판은 역시나 재정부담이 큰 지라, 현실화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2009년 12월 이메일로 답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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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 BlogIcon 트루디 2010.01.24 09:24 Modify/Delete Reply

    일다의 성장 지켜보면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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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과의 인터뷰

일다와 함께 2010. 1. 15. 07:30


“저널리스트로서 끊임없이 제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이죠”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기자를 만나다

글 김윤나영 dongglmoon@hanmail.net
사진 용락 dydfkr@gmail.com


중국 내 탈북여성, 골프장 캐디 노동조합원 집단 해고, 평범한 여성의 눈으로 재구성한 한국전쟁 구술사, 돌봄 노동자 성희롱 문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조이여울 기자가 최근에 쓴 기사목록이다. 다분히 마이너한 주제다. 조이여울 기자는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편협함’이 아니라 ‘공정성’이라고 말한다. 그녀를 만나 어떻게 여성주의 저널리스트가 되었는가, 한국 언론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를 물어봤다.

“기자 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처음에는 풀뿌리운동, 여성운동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어요. 취재를 하더라도 저를 제3자가 아니라 그 안에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주의자로서 저널리즘 윤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운동가이기보다는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조이여울 기자는 『일다』의 창간 멤버다. 대학시절에는 자치기구인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여성주의 운동이 ‘부차적인 운동’으로 여겨져 주목받지 못하던 1990년대에 대학에서 『3차성징』이라는 여성주의 언론 매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글쟁이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을 창구가 부족하거나 편협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죠. 여성들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매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활동은 졸업 후 진로와도 이어졌다. 2000년에 여성신문사에 입사했다. 직업과 운동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02년에 대선을 앞두고 여성신문사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이에 반발하여 몇몇 기자들과 사표를 썼다.

대선 시기가 다가오자 진보 언론이 ‘여성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박근혜 지지론’을 부각시켰다. 조이여울 기자는 “여성운동이 민주화 운동과 함께 했는데도, 여성주의를 박근혜와 연결시키는 언론의 현실이 실망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모아졌다. 2003년 1월에 새 매체를 준비하여 5월에 일다를 창간했다.

사각지대를 비추는 것은 ‘편협함’이 아니라 ‘공정성’

기자 활동을 할수록 한국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주류 언론․좌파 매체 언론인들을 만나 보아도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작년에 독일에서 온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한국에는 언론이 없다’고 했어요. 가볍고 선정적이고 시끄럽게만 한다는 거예요. 깊이 있는 기사를 보기 어려운 것은 한국 사회의 특징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한국언론이라는 틀 안에서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이여울 기자가 보기에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왜곡된 거울일수도 있고 먼지 낀 거울일 수도 있다. 거울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기존에 비춰지지 않은 곳을 조명하는 데서 언론의 공정성이 나온다. “혹자는 ‘여성주의 저널리즘이 편협하다’고 하지만, 주류언론이 비추려하지 않는 곳을 비추는 것이 공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조이여울 기자는 오히려 “독자들이 왜 정치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봐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주류언론을 보면 인물의 중요성에 ‘위계’를 부여하면서 쓸 데 없는 것도 중요한 이슈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여성들, 사회적 약자와 관련되어 꼭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슈는 아예 다뤄지지 않거나 스쳐지나가듯 다뤄진다. “기성언론은 특정집단만을 부각시키면서, 기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언론인이라면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가,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문제’가 빠진 기성언론의 황우석 사태 보도

황우석 사태는 한국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보도 관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황우석은 국가를 상징하는 코드였다. 진보매체라 불리는 한겨레에서조차 황우석 사진과 태극기를 나란히 실으며 선전했던 때가 있었다. 이미 관련 분야에선 연구에 의혹이 쏟아졌지만 주류 언론에서는 제기된 의혹을 성실히 따라가 보도할 수 없었다. 황우석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 대한 비하나 타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주류 한국언론시장에서는 왜곡이 쉽게 일어나며 사실 보도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일다에서는 난자 수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황우석 연구팀이 대형 산부인과와 연결하여 난자를 수급 받은 사실을 포착했다. 윤정은 기자가 보도를 냈다. 자칫하면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떨리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불임여성의 임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산부인과에서는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을 쓴다.  큰 병원은 대학과 결탁하여 연구용으로 난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 때 난자 기증자들은 난자를 적출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설명 받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 난소가 연구소로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국제적으로 난자는 한 사람당 3~4개만 적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한 번에 60개씩 빼낸 사례도 있다. 약을 독하게 쓰면 더 과배란이 되는데 여성에게는 치명적이다. 난자를 빼내다가 몸이 마비되고 심지어 사망한 사례도 있다.  


“여성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죠. 고민하다보면 마음도 아프고 머리도 아픕니다. 당사자가 바로 옆에 누군가로 생각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것쯤은 대의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죠.” 이후 난지수급과 불임여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어떤 언론도 여론화하지 않았다. 후속보도로는 이후 줄기세포 연구 진행상황에 대한 내용이 보도될 뿐이었다.

그 자리에 기자는 없었다

조이여울 기자는 ‘기성언론기자들이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또 다른 예로 징병제 토론회를 들었다. 주류 언론 기자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하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기사 방향에 끼워 맞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도 자료만 보고 흥밋거리 위주로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여성학자들이 모여 ‘징병제도와 성차별 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연 적이 있어요. 징병제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배제시킨다는 내용과 외국 사례가 발제됐습니다. 토론회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일다에서는 이것을 실을 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었어요. 징병제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었습니다.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같이 고민하다 보면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죠.”

주류언론에서는 그 토론회의 내용을 ‘군 가산점제 부활’과 연결시켰다. 조선일보에서는 “여성학자도 여성이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그 토론회에는 기성언론 기자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취재처에 직접 가기도 전에 미리 기사의 방향과 관점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징병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였다면 그 자리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과 미흡한 부분이 보였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성언론에는 징병제 문제가 자기 문제라는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군대를 다른 방식으로 갈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징병제를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성별 논쟁을 붙이는 식입니다.” 

묻혀가는 해녀들의 목소리를 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제주도 해녀 기사’를 꼽았다. 해녀들의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전혀 주목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여성신문에서 해녀들의 기록을 복원했던 경험은 ‘사각지대’에 있는 사안들을 발굴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을 굳혀주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처음엔 그냥 너무 만나고 싶어서 갔어요.” 가기 전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녀로 언론에 검색해 보니 ‘제주 해녀와 서양 잠수부 중에 누가 물속에서 오래 버티나’ 외에 별다른 기사가 없었다. 도청과 시청에 관련 기록이나 정책이 있는지 찾아갔고, 제주 대학 섬 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찾았는데 자료가 너무 미비했다. “이전까지 나에게는 해녀라는 직업에 신비감이 있었는데 공무원들은 해녀를 천한 직업이라고 여겨서 충격을 받았어요.”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에서 관심을 가졌다.

해녀 일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대가 끊긴 상황이다. 한때 해녀의 경제 활동 내역은 제주도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을 차지했다. 해녀들은 조합을 통해 학교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봉사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해녀들은 항일운동을 했다. 해녀들의 노래는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해녀들의 공동체 문화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런 해녀들이 사라지고 있다. 해녀 문화에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독특한 가치가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연구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녀들에게는 직업병이 있어요. 귀가 울려서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녀는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직업병이 있어도 산업재해로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약이라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기사를 썼죠.” 해녀들은 공동체적인 경제활동을 해도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남성 어민 중심으로 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해녀 식당에 찾아가서 어떻게 운영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해녀식당을 만들지 않았다. 정부에서 관광 목적으로 해녀식당을 열어줬다. 우리는 바다에서도, 집에서도, 밭에서도, 여기서도 소처럼 일한다”라는 답이 왔다. 조이여울 기자는 해녀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해녀의 존재를 알지만 우리 사회는 해녀를 외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내세운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제 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데 소재나 관점의 한계는 없을까.


여성주의 프레임이 꼭 여성의 입장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한 개인 속에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이는 주류에 속하기도 하고 비주류에 속할 수도 있다. 여성주의는 소수자 감수성을 넓혀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일다가 여성 의제뿐만 아니라 아동·농민·이주노동자·장애인 등의 사안을 포괄할 수 있는 이유다.


“일다에서 주력해서 다루는 사안 중에 아동인권 문제가 있어요. 이혼 갈등이 있을 때 양육권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법정에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발언이 어머니 입장에서는 유리할 때도 있지만, 아이의 정서를 고려했을 때 좋은 경험이 아닐 수도 있죠.” 

때로는 아동인권이 여성의 입장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인 어머니보다 더 약자다. 예를 들면 입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머니 입장에서 볼 것인가 아이 입장에서 볼 것인가. “지금까지 저의 관점은 소수자 혹은 여성의 관점이었지 어린이의 관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이 ‘끊임없이 제3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연세언론출판협의회 『언론비평』 2009년 가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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