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1.05 기록 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2. 2010.10.22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구입할 수 있는 곳

기록 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일다와 함께 2011. 1. 5. 14:21

경쟁사회에서 ‘평등’의 의미를 묻다
<조이여울 기록>(1) 우리는 동등한 존재인가?

외국에 나와 있으면 ‘국적’이나 ‘민족’이 나란 사람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번은 여행객을 상대하는 상인이 “한국인이냐?” 묻더니 “빨리빨리!”라고 말하며 인사하는 보았다. 힌두인은 “나마스테” 일본인은 “곤니치와”인데, 한국인은 “안녕하세요”가 아닌 “빨리빨리”라니, 이 상인이 한국사람을 좀 아나 보다 싶었다.

남인도의 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 해가 쨍쨍한 낮 시간 내내 낮잠을 자거나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들과 함께 쉰다. 상점이나 식당 문은 10시가 넘어야 열리는데, 1시부터 4시까지 휴식을 취하니 결국 일하는 시간은 오전에 잠깐, 그리고 오후 해질녘의 잠깐이다. 물론 여기서 ‘잠깐’이라는 표현은 한국사람인 나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외국에서 한인 집단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열심히 일한다’를 넘어서 ‘악착같이 일한다’는 것이고, 한국사회가 ‘바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이가 별로 없을 것 같다. 혹자는 한국의 노동력이 그만큼 질이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실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행복한 삶과 비추어보았을 땐 어떠할까.

나는 외국에서 듣는 이 “빨리빨리”라는 우리말이 ‘발 동동’이라는 의미로 들려와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한국사회를 하나의 캐릭터로 이미지화한다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심지어 이것을 한국 현대사회가 에너지 동력으로 삼아온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빠르다라는 개념에는 늘 ‘남보다’라는 혹은 ‘전보다’라는 비교가 들어가 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빠른 것은 없으니까. 더욱이 순위를 매기는 일이 일상적이고, 우열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운 경쟁사회일수록 그러한 종류의 ‘비교’는 그 중요도가 매우 높아진다. 뛰어나다거나 한심하다거나, 해냈다거나 실패했다거나, 성장했다거나 후퇴했다거나, 예쁘다거나 못났다거나 등등의 평가가 너무나도 자주 주어져 우리의 일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등한 인간 존엄성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이 문제를 내가 인생의 화두로 삼아온, 인류의 오래된 주제인 ‘평등’과 관련 지어 생각해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나면서부터 주어진다는 동등한 존엄성을 깨닫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본질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성향 혹은 형상과 가치들이 있다. 그 기준에 어떤 이들은 좀더 부합해 보이고 어떤 이들은 좀 덜 부합해 보인다. 선호하는 가치와 동떨어져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비교는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이를 테면 직장에서 어떤 기준도 없이 구인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동의할 만한, 일명 “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인사 관리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평등에 가깝다고 본다. 그럴수록 ‘능력’ 중심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지고, 배움이나 경험 유무 그리고 똑똑한가 순발력이 있는가 등의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건강을 비롯해 직장생활 원만히 할 성격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포함하여.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더 평가해주고 그에 따른 보상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부당한 대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성과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따르지 않을 때 불공평하다고 얘기될 것이다. 능력에 따른 평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합법적일 뿐 아니라, 인맥 위주의 사회시스템이 앞으로 변화해나가야 할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불편한 사실이 있는데, 쉽게 간과해버리는 점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굳이 꺼내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생존이 걸려 있는 이 무대가 누구에겐 쉽고 누구에겐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것을 잘 해내는 팔방미인이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남들보다 제대로 못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집중하여 일하기엔 건강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학습장애가 있어 사회화가 어려운 이들에겐, 염색체나 두뇌의 문제로 타인과 소통을 못하는 사람들에겐 공평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동등한 인간의 존엄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은 어떤 때이며, 평등이란 어떤 의미일까.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 미성년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것, 투표권을 갖는 것,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실 수도 있다는 것, 또는 재활치료나 활동보조인의 사용이 허용된다는 것? 제도와 법이 보장하는 평등이란,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아직 한참 덜 채워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커 보인다. 인간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세상에서 인정 받기를 바라고 만족을 얻길 바라며 사랑을 원하는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공적인 장에서가 아니라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성격이나 외모의 비교는 또 어떤가. 어떤 이들은 인기가 좋아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어떤 이들은 ‘비호감’이라며 타인들이 기피한다. 그것은 평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혹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따뜻하고 호의적인 인간관계를 어떤 이는 비교적 쉽게 얻는 것 같고 어떤 이는 얻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과연 인간관계 속에서 개개인이 동등하게 인정 받는 인간 존엄성을 어떤 식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괜찮은 세상이라면…

Canon | MP250 series | 2010:09:10 14:56:12

일다 그림작가 시로의 작품 "경쟁"

나는 이전에도 페미니즘, 소수자의 인권과 같이 ‘평등’이라는 개념과 뗄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 이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되풀이 고민해보곤 했었다. 한 번은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평화를 지향하는 외국의 한 대안공동체의 규정에 대해 들려주었는데,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논의해볼 수 있는 예시였다.

그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 간에 비판을 하는 것도 지양할 뿐 아니라, 칭찬을 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며 자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칭찬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인정을 한다는 것인데, 그건 다른 누군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보단 덜 인정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으로,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훼방하는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과연 칭찬을 하지 않고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현실성에 있어서의 의문이 들긴 하였으나,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내용-사람을 비교하지 말라-이 평화로운 삶에 필수 요소임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사실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칭찬을 받는 이뿐 아니라 칭찬하는 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행위이다.

모두가 똑같이 인정을 받는다면 ‘인정을 받는다’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언제나 ‘남보다’라는 비교가 선행된다. 비교는 쉽게 우열을 낳게 되는데, 우열이라는 것은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안타깝게도 혹은 비극적으로 인간의 비교본능, 경쟁본능은 날 적부터 자리잡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많은 사랑을 줘도 언니 혹은 동생과 비교하여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끼면 깊숙한 곳에 불만을 품게 되고, 풍요롭게 사는 듯 보여도 더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해 자신의 환경에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어른들과 사회가 더욱 합세해 비교를 조장하고, 경쟁을 앞장서서 가르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릴 적에 나는 부모님에게 주위어른들이 “요즘은 딸 키우는 게 열 아들 안 부럽다”거나 “딸을 키우면 비행기를 타게 된다” 등의 얘기를 인사처럼 하는 걸 종종 보았다.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딸만 가진 부부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의 말이니까 말이다. 당시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자신했으므로, 우리 가족은 행복한데 왜 어른들은 저런 옹색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무의식 중에선 행여 아버지가 아들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것은 아주 가벼운 예일 뿐이다. 옛날부터 “아비 없이 키우니 더 엄격하게” 자식을 훈육하는 어머니의 사례는 미담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엄격하게” 라는 말의 구체적인 행위로는 매를 때렸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 “더 엄격하게” 라는 것이 어떤 ‘결핍’의 상태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자식도, 어머니도 잘 알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내로 태어나지 못했으니 남의 집 아들 부럽지 않게 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거나, 공부를 못하니 운동을 뛰어나게 잘해야 한다거나, 입양 된 아이니까 착하게 굴어야 한다거나, 엄마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보란 듯 성공해야 한다거나, 장애가 있으니 성격이라도 고와야 한다거나, 불 품 없이 생겼으니 애교를 키워야 한다거나, 독신으로 살 거면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한다거나, 동성애 커플이니까 더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해야 한다거나 등등.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세상이었다면 가지고 있지 않았을 의무감, 부담감,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처한 불리한 위치를 극복하며 삶의 동력으로 삼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받지 못할 때 부자연스러움과 억압감을 내면화하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인 여파는 평생을 지배하는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비교의 중요도 낮추기, 경쟁을 지양하기

경쟁사회에서 인간이 자신과 타인이 동등하다는 것을 ‘실재로’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며 우열을 평가하게 되는 순간, 동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은 크게 흔들린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가슴 속에 인류애 대신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분노를 키우게 된다.

인간 세상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비교가 필연적이고 경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우열을 나누거나 등수를 매기는 시스템에서 변화를 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인간의 기본권인 평등, 그리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이를 테면 학교에서 시험을 없애지는 않더라도 성적의 중요도를 낮출 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오로지 성적에만 모든 중요도가 부과되어 있지 않은가. 직장에서 학벌의 중요도를 낮추거나, 어떤 특정한 재능에만 더 가치를 높이 두지 않거나, 매스미디어가 부와 성공에 대해 크게 칭송하지 않거나, 지역사회가 다양한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 그리고 썩어나가도 좋은 큰 파이 대신 분배에 더 신경을 쓰는 정책을 펴는 것도 당연히 효과가 클 것이다.


무엇보다 수시로 비교가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당장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인정을 먹고 자라는 어린 아이들에게 “네가 최고야”, “너는 특별해” 라고 말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좋아, 너의 존재가 나를 기쁘게 해. 그렇지만 특별할 건 없어. 사람들의 가치는 모두 동등하니까.” 하는 자세로 대해주어야 더 교육적인 것 아닐까? 치열한 경쟁 때문에 친구도 없다는 요즘 학생들에게 “성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너희에게 식성의 차이가 있는 것보다 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우열을 가르는 일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그것이 평등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분별하고 평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다시피 한 나로서도, 인간의 존엄함과 신 앞에 동등한 존재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며 더 넓은 마음의 창이 열리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일다> 2011년 1월 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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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구입할 수 있는 곳

일다와 함께 2010. 10. 22. 16:59

* <트라우마>의 역자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심리학으로 본 한국사회 마음의 건강> 구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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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음의 혁명>

부제: 심리학으로 본 한국사회 마음의 건강


<책 소개>


사람들이 치유 작업을 하면 잘 될 수 있을런가 물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잘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전합니다. ‘마음을 여는 인간의 능력을, 어둠을 밝히는 투명성을 믿는다’라는 그런 뜻에서 저는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 투명성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투명성 덕에 오히려 나 자신이 치유 받습니다. 인간에게 낯선 이 땅 위에서, 조용한 혁명을 함께 시작했으면 합니다.”


상심리학자인 저자가 임상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한국 사회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의 토대를 제공한다.


최근 눈에 띄게 심리치유 에세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이 가지는 유일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단지 한 개인의 내적 병리를 분석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와 개인의 내면을 연결하는 조망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구조와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개인의 심리가 한국사회를 작동시키는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많은 심리학 서적들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그친다. 사회의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피상적인 대인관계 처세술을 던지거나 개인 내면의 병리 탓이라고 말할 뿐이다.


반면 이 책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내면적 힘을 긍정하는 철학과 인간관을 기반으로, 무력하고 상처받은 개인들을 넘어서 그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자기 심리를 이해하고, 타인과 이웃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그려 보인다.


특히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의 기원을 이해하고 이를 건강하게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을 유지한다. 일상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심리를 이해하고, 무력한 개인이 되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보다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북돋는다.


2010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수여하는 우수저작상 수상.


<추천사>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갈등과 고통, 이 깊은 상처들은 대부분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온 사회적 가치들에 의해 규정되고 점령된 채 살면서 입은 것들이다.

폭력 앞에 개개인은 대체로 무력하다.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갈등, 분노, 좌절들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나 방치된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최현정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 마음의 소리를 듣는 자아 여행을 권한다. 최현정의 발언은 매우 통찰력이 있다. 들을 수 있어야 공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이웃들의 아픔 또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 밖의 모든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이다. 그리고 이웃들과의 온전한 관계는 사회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용한 마음의 혁명’이다. 모든 변화는 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참으로 혁명이라고 할만하다.

- 이화영(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저자는 대학재학 시절부터 트라우마와 다양한 국가적, 사회적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임상심리학자다. 이 책은 그녀의 생생한 현장 체험과 냉철하면서도 폭넓은 학문적 분석, 예리한 임상적 통찰력이 결합되어 녹아 있는 책이다.

나는 저자 자신과 이 책이 조용한 마음의 혁명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가식을 벗어 던진 진정한 자기사랑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심리적 성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이훈진(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인간 내면의‘ 선함’과‘ 힘’, 그로 인한 인간 스스로의‘ 치유능력’에 대한 필자의 확고한 믿음은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다.

<마음의 조용한 혁명>은 사람 마음을 깊게, 넓게,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에 대한 사유’에 관한 책이다.

겨울날의 메마른 나뭇가지에 초록빛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잘 될 것이라 믿는다는 필자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긍정과 희망이 모여 이 땅 위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 평화박물관

 

/책의 구성/

사람은 상처입기 쉽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며 진실 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사람-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진정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누구이든 그 깊이에는 ‘미움 없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라나려는 강한 힘이 깃들여 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요인을 직시해야 한다. 혼란을 꿰뚫고 인간을 만나려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사회의 변화를 로저스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사람의 힘을 긍정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내 안의 갈등을 보살피며, 또 한편으로 타인이 겪는 고뇌를 헤아리며, 서로가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작동을 똑바로 바라보고자 한다. 마음의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두 눈을 가리고서 세상이 시커멓다 체념하는 일은 괴롭다. 자유로우려면 마음에서 오는 울림을,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을 잃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왜곡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있는 모습 그대로 성장해 나가려는 인간의 경향을 가로막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내 안의 진실된 내 모습과 접촉할 수 없는 정서무시환경 속에서, 그리고 인간 왜곡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폭력 속에서 살아남고자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찾는다.

1장. 화려한 가면은 벗어놓고

좋은 학벌에 번듯한 직장, 돈 많고 화려한 인생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꿈꾸는 명예로운 삶이다. 한국 사회에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서 극화된 경제적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은 그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규격화하고, 단순화 시켰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프로이트 시대에는 자기 내면의 선함과 악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왜곡된 자기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다. 미, 부, 명성처럼 부풀려진 겉모양에 마음이 팔리다 보니 진실한 정체성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함, 그것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마음의 고통이다.

2장. 성장할 권리를

위기에 빠진 사회의 역사 속에는 늘 십대가 있었다. 세상을 고민하고 철학을 공부하던 십대들의 공동체가 곧 위기의 순간에 변화를 이끌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경제적 우위를 성취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관 안에서 아이는 아직 이길 수 없는, 즉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한 관점 안에서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므로 아이가 본연 그대로 성장할 여지는 제약된다. 성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이의 존재가 ‘어른의 세계’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3장. 마음의 목소리 듣기

마음에 방어가 생긴 연유를 이해할 수 있다면, 방어 이면에 놓인 깊은 내면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두려운 나머지 방어하고자 애쓰고, 그 대가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게 되기도 하며,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가 가시털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계속 그 옷을 두르고 날카롭게 털을 세우며 나약한 나 자신을 숨길 것인가 혹은 진실로 한걸음 나아가 사람들과 손잡을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4장. 폭력의 기억, 침묵당하기를 거부하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공통된 경험은 함께 이야기하면서 울고, 웃을 수 있었기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이렇듯 궁극적으로는 공감하는 사회, 또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혜로운 결론을 내릴 채비를 잘 갖추어 보자. 자기 역량의 테두리를 설정하고, 할 만한 수준에서 조금씩 실천해보는 소중한 경험도 간직한다. 마음의 힘은 그 안에서 솟아오른다. 이건 왠지 옳지 못하다 싶을 때, 무엇이 옳지 못하고 무엇이 옳은 걸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 공동의 정서적 경험은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된다. 그 정서 경험이 분노일 때 그것은 의분이고, 의분은 어우러진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힘의 원천이 된다. 그 정서 경험이 슬픔일 때 그것은 애도이고, 애도는 우리의 공동체를 감싸 안는 따뜻한 기운이 될 것이다.


/차례/

들어가는 말 / 어둠을 밝히는 무한한 마음의 가능성

1장 화려한 가면은 벗어놓고
-건강한 자기사랑
-성공 신화의 쳇바퀴
-어떤 자살에 대하여
-우리는 무력할 뿐인가
-울타리, 안과 밖
-깨어있는 접촉

2장 성장할 권리를
아이들의 우울을 이해하려면
공부 못하는 아이
심리학에서 보는 우리 교육 현장
이별의 슬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아동성폭력, 안전하지 않은 사회
십대들의 힘으로 변화하는 사회

3장 마음의 목소리 듣기
-어김없이 욱신대는 마음의 흉터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
-연애와 상처 입은 사랑
-실체가 없는 마음의 체험
-호저 고슴도치의 가시 털, 방어기제
-충분히 슬퍼하기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4장 폭력의 기억, 침묵당하기를 거부하다
-트라우마
-국가 폭력, 그 비인간성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우리 집 옆 골목의 가정폭력과 성착취
-폭력과 해리현상
-폭력에 맞서는 힘
-정의로운 행동

 

<저자 소개 - 최현정> 

서울대학교에서 임상·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임상심리 수련을 마쳤다. 국가폭력, 성폭력, 조직적 성착취 체계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으며 이와 관련된 글을 쓰거나 연구를 했다.

현재 상담실 안에서는 심리치료를 하고 있고 상담실 밖에서는 공동체 속에서 치유력을 발견해나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하고 있다. 파괴적인 환경으로 인한 삶의 고통을 병리화 하는 입장에 반대하며 혼자였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자기 안에 잠재된 힘을 발견하게 될 때,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맑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서로 <트라우마: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고문폭력 생존자 심리치료>, <성격장애 로샤평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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