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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3 나는 뜨겁게 보고 차갑게 쓴다
  2. 2011.02.27 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나는 뜨겁게 보고 차갑게 쓴다

자유 게시판 2013. 10. 3. 17:49

 

『나는 뜨겁게 보고 차갑게 쓴다』

-세상과 사람과 미디어에 관한 조이여울의 기록 

291쪽/ 판형 170*224 /값 15,000원
 

여성 저널리스트가 뜨거운 시선으로 발굴한 한국사회 

“이 책은 ‘여성’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노동, 동물, 환경, 농업, 생명윤리, 평화 등의 주제들과 끊임없이 교차시킴으로써, 여성주의의 전통적 쟁점들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들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복잡한 이론을 동원하거나 사실을 나열하는 대신, 때로는 저자의 맛깔스러운 이야기로, 때로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 보여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 책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 사회 의제를 어려운 이론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긍정적인 힘”이나 “용기”, “믿음”과 같은 가치들과 결부시켜 설명해간다. 이 책이 재미있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기존의 언론에서 사회 문제를 읽어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제3의 시선’으로 사회를 읽어내며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과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에서 저자가 주요하게 포착하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끌어올린다. 

“기억 저편에 은폐된 사실과 묻힌 역사를 발굴하여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생생한 현장을 복원해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저널리스트로서 그 역할을 해나간다는 것이, 그 과정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가슴 설레는 영감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큰 기쁨이고 영광이다.” (p.189) 

저자의 이 말은 <3장 발굴>의 발문에 수록된 글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다 알만한 ‘3.1운동’이나 ‘제주도 해녀’, ‘황우석 사태’를 주제로 삼으며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라고 말한다.

그는 역사적 사건들에서 그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진실이 어떻게 숨겨지고, 은폐되어 있는지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와 연결시켜 그 사건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주는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는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저자의 뜨거운 시선을 좇아가다 보면 노동, 사형제, 성매매, 환경, 소수자 인권, 평화 등 쉽게 풀리지 않을 듯한 실타래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저널리스트가 10년이 넘게 발굴한 한국 사회의 속살을 만나면서 한 시대의 문제를 공감하며 성찰적인 논쟁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다.
 

조이여울 기자가 차갑게 써 내려간 10년의 기록

“조이여울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단지 다른 기자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소수자들의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단순한 ‘기록자’에 머물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마치 없는 사람 취급 받았던 성 소수자, 입양인, 성폭력 생존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가시화 했고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진정 ‘이슈 생산자’였고, 가장 주목할 만한 기자였다.”
                                                              -전홍기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장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묘사한 것처럼 조이여울 기자는 ‘이슈 생산자’였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 인권, 저널리즘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담론을 생성해왔다. 지난 10년간 조이여울 기자의 글과 말에 대해 ‘날카롭다’고 기억하는 이가 많다. 

20대부터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논쟁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해온 저자는 신랄하고 비판적으로 한국 사회에 입을 대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들의 행태와 기사에 대해 비평하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저자는 특히 다른 어떤 영역보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기자들에 대해서 유독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주문한다. 

적어도 기자라면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생각하고, 배움 없이 취재하고, 성찰의 과정 없이 기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p.261) 

저자는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것과 다른 세계관을 만나 부단히 부딪히고 깨지는 작업인 동시에, 그를 통해 끝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기록은 사회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 빛을 쏘이게 하는 작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10여 년간 기록한 한국 사회의 초상!

저자와 함께 뜨겁게 보고, 우리 주변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이 가질 수 있는 힘, 희망

“글이 가질 수 있는 힘 혹은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문제에 얽힌 전 과정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돌아보고 궁극에 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것,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힘은 거기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이 책 한 권을 읽은 후 나는 여러 가지로 명쾌해졌다.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김소희 ‘작은자 야간학교’ 교사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이 추천의 글에 공감할 것이다. ‘시원하고, 따뜻하고, 재미있다’고. 이 책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로부터 “재미있다”, “시원하다”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2장 인터뷰>의 예만 들어보더라도 야생동물, 미혼모, 탈핵, 아동성폭력 후유증,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등 한국 사회의 뜨거운 현안 이야기들이다. 조이여울 기자는 기록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고 생기가 넘치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생동하는 현장이 있고,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여러 독자에게 공유되고 사회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기에, 저널리스트로서 나의 삶은 지지치 않을 것이며 인터뷰 또한 계속될 것이다.” (p.123) 

조이여울 기자가 말하는 기록 작업은 생동하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거기서 희망을 발견해서 매체를 통해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즐겁고 생기가 넘치는 작업”의 생생한 기운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저널리스트의 고뇌에 찬 10년의 기록일 뿐 아니라, 그 기록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소리 없이 희망의 씨앗을 뿌려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저자 소개: 조이여울

저널리스트. 20대부터 페미니즘과 사회운동에 대한 논쟁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해오다 2003년 미디어 <일다>를 창간하였다.
왜곡되거나 날조된 사회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은폐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글을 다수 발표함으로써, 주류 저널리즘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언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여성주의 저널리즘, 평화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미디어운동가이기도 하다.
 

차례

여는 글 성찰하는 사람의 글은 따뜻하다 

1장. 기획모든 문제에는 해결의 열쇠가 있다

“우리는 보복이 아닌 회복을 원한다”
-살인피해자 가족이 말하는 사형제와 진정한 치유

스무 살 임씨의 일기장, 그슬린 진실
-섹스산업의 호황 속에 거래되는 여성의 몸

평등하게 일하고 싶다
-노동의 성별 분리와 차별에 대한 보고서

너무 젊지도, 너무 늙지도 말라?
-나이주의, 고용시장을 움직이는 이상한 법칙

‘또 하나의’ 사람, 트랜스젠더
-성 염색체에 갇히지 않는 인간의 다양성에 대하여
 

2장. 인터뷰그들 스스로 말하게 하라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야생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황윤 감독

“한국은 잘사는데, 왜 아이를 포기하는 거죠?”
-한국입양아의 아버지 리처드 보아스, 미혼모 인권을 말하다

핵 없는 미래, 정치 패러다임 변화에 달렸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박진희 소장에게 듣는 ‘녹색정치’의 가능성

“성폭력을 둘러싼 ‘시선’이 변해야 해요”
-생존자 너울이 말하는 아동성폭력의 특성과 후유증

‘오래된 미래’를 심는 사람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의 싹 틔운 농부 한영미
 

3장. 발굴 ▶ 숨은 그림, 혹은 은폐된 의미 찾기

이름 없는 수많은 ‘유관순들’을 기억하라
-10대 여성과 기생들이 주도한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묻힌 해녀 정신 ‘캔다’
-우리가 몰랐던 해녀공동체의 역사와 삶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체실험 대상으로 전락했나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다 

4장. 언론비평 ▶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고 가려지는가 

► 뉴스는 포르노다?

특종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좋아하는 ‘전문가’/ 신문 기사에서 ‘장애인 찾기’/ 성폭력 보도, 누구의 시선을 대변하나 / 사실 왜곡 일순위는 ‘동성애’/ 어머님의 눈물 보여주려 했다? /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와 한국 언론 / 환경비용 고려하지 않는 ‘그들만의’ 계산법 / 언론이 만든 전쟁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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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일다와 함께 2011. 2. 27. 14:23
여성과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권을
<조이여울의 記錄>(7)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2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공적인 장 마련하기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관한 ‘여성주의 저널리즘’의 태동과 역할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지요. 그럼 이어서 여성주의 저널의 특성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주의 매체는 여성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적인 장을 마련해주고, 공감의 힘을 바탕으로 위로와 지지를 보냅니다.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어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이 비단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조명이 필요한 인권 사안을 다룰 때, ‘성별을 따지지 않는 것’이 또한 여성주의입니다. 여성들이 공적인 장에서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크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펼쳐 제공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에요. (사적인 대화는 어쩌면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다>를 통해 다양한 필자를 발굴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여러분이 편지를 통해 이야기한 대로, 여성주의 저널에서는 특히 당사자들의 경험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다른 곳에선 들어주지도 않고 쉽게 왜곡했던 이야기들을 존중하지요. 그 동안 차별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할 곳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고 공감함으로써 지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감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연애로 미화되기 쉬운 ‘스토킹’에 대해서, 피해경험자가 직접 얘기하면 설득력이 있지요. 동거가 이슈화되었을 때도,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얘기해버리면 그게 호들갑 떨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지요. 낙태 논쟁에서도, 인공임신중절의 경험이 무엇인지 담담히 기술한 글을 접하게 되면 살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무색해질 때도 있습니다.
 
전문성 부여하기
 
여성주의 저널은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여성들 혹은 소수자들이 전문가로서 발언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줍니다. 자신이 직접 겪고 체득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꼭 어떤 직위나 학위 또는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선 많은 사안에 있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되어야 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묻혀버리곤 하는 아이러니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물론 전문가 집단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너무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 전문가 집단의 경험이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과 동떨어져 있어서 해당분야에 대해 오히려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또 당사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이야기해줄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여성주의 저널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요. 평등하지 않은 사회이니까요. 그런데 그 비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가부장적인 제도나 시스템에 대해 날카롭게 날을 세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바탕에는 다른 대안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실행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바탕이 없을 때 비판은 소모적이 되기 쉽지요.
 
나는 제도적 불평등이나 차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글이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 더 환영 받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비판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의 선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대부분의 기사는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끌기 위해 선정성을 조금씩은 내포하고 있지요. 하지만 나의 경험상, 매체의 보도가 선정적인 만큼 그 내용은 허망해집니다. 과연 이것이 내가 바랐던 반응인가?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좀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론의 비판 기능은 생명력이지만, 대안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입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제시할 때, 우리의 지향은 훨씬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것이 비판의 대상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새로운 언어 만들기
 
편지 내용에서 ‘언어 사용’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내용,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짧게 설명하기가 어렵지요. 동성애, 성 정체성, 호모포비아와 같은 ‘성적 소수자’ 관련 기사의 예를 들어보지요. 사실 ‘소수자’나 ‘정체성’이라는 말도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적 소수자’ 또는 ‘성 정체성’이라니, 기본적인 기사의 카테고리조차 배경설명이 필요한 어려운 언어입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에 평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정보를 별로 갖지 않은 다수의 독자들에겐 당최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초기에는 ‘성적 소수자 관련 용어 설명’ 기사를 별도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독자들이 관심만 갖고 본다면 이 개념에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랐지요.
 
<일다>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재일조선인, 그들이 누구인지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실상 재일조선인의 존재와 그들의 현재 모습을 알려면, 우리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작업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배경설명을 건너뛰고 재일조선인 관련 사안을 다루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내용이 각색되어버립니다. 짤막한 보도로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일다>에서는 재일조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글(특별기획-“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 조경희로부터 듣다” 2008년 3월-7월)을 10회 이상 연재했는데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면, 아마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관심’이라는 그 자발성까지 언론에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대한 독자들 눈높이에 맞춰 호소력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몫은 우리에게 있다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새로운 언어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담고 있는 “병신”이라는 말은 가급적 쓰지 말기로 하고, 젊은 여성들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제 좀 자제하고, “편부”나 “편모”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용어 대신 “한부모”로, “미혼”보다는 “비혼”이라고, “폐경” 대신 “완경”이라고 용어를 바꿔 쓰기로 하자는 등의 흐름이 계속되어 왔지요.
 
마땅한 언어가 없던 상황에서 적절한 용어를 새로 만들고, 특히 부정적인 용어를 조금 더 긍정적인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퍼뜨리는 작업은 언제나 환영할 만합니다. 언론은 이를 더 확장해주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매체는 당연히 교육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교조주의라고 할 수 없지요. 우리는 평생 배워가는 존재이고, 자신이 아는 것만 재확인하려고 언론을 활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언론은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해주며 상용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이런 용어도 모르니? 아직도 이런 말을 쓰다니!” 식으로 들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조주의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태도의 문제이지요.
 
여기서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하자면, 나는 우리가 언어 사용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쪽이에요. 언어란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니까요. 언론은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고, 언어 사용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요. 어떤 이가 자신에게 낯선 용어 때문에 기사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혹은 내용이 중요한데도 용어에 신경 쓰느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럼에도 언어 자체에 이렇게 비중을 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차피 완벽한 언어도 아닌데 말이지요.
 
예를 들어 ‘장애우’라는 말은 장애인 권리를 위해 다가가자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금은 장애인을 특별히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어, 인권운동 진영에선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늘 써오던 대로 ‘장애우’라는 말을 고집한다고 해서, 그가 차별적이라거나 장애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용어를 빨리 접하는 사람들이 특정 계층이라는 점, 우리사회의 지식인 층이 늘 말만 앞서고 그 내용을 채우는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뒤처져 있다는 점을 알기에,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다> 2011년 2월 2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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