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7.17 <두 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씨와 만나다
  2. 2008.11.03 공동체상영 100회 기록한 다큐 <어느 날 그 길에서> (4)

<두 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씨와 만나다

일다와 함께 2012. 7. 17. 17:35

두 여성주의 감독이 진실에 접근하는 법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3년 전 묻혀버린 진실을 찾아가려는, 독립다큐멘터리 한 편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만 명을 넘기 어려운 독립영화 관객 수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4만을 훌쩍 넘었고, 이미 ‘사법적 재판’에서는 결론 내려진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은 그만큼 힘이 있는 기록이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록자의 시선’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화재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현장에서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가 대치하고 있었지만, <두 개의 문>은 양 측 중 어느 편에 설 것이냐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따라가며, 철거민과 특공대원의 죽음과 고통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있다.
 
진실을 찾는 문을 열기 위해 새로운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가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인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분홍치마’는 첫 작품 <마마상>(2005)에서 기지촌 성매매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일다>에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2004) 기획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이후 ‘커밍아웃 3부작’으로 불리는 <3XFTM>(2008),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을 통해 남/녀 이분법에 기반을 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2012년, 화제작 <두 개의 문>을 내놓은 것이다.
 
분야와 형식은 다르지만 미디어활동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서, 김일란 홍지유 두 감독을 만나 <두 개의 문>에 담긴 문제의식과 기대에 대해, 그리고 용산참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로서 취한 태도와 방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를 보면 ‘두 개의 문’은 얼마나 무리한 진압작전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인데,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의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영화에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를 설명해달라.
 
“2009년 ‘레아’(용산참사 이후 미디어활동가들이 만든 촛불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재판을 방청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하고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처음부터 우리가 경찰특공대에 대해 취한 태도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특공대원들이 착륙과 동시에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사전정보가 없어 출입문이 어디인지 몰라서, 두 개의 문 중에 어느 것이 망루로 통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망루 안에서는 바깥의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누가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문을 뜯느라 십분 가량을 지체했고, (철거민이나 특공대원이나) 위험하고 당황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담고자 했다.”
 
-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이를 테면 고 김남훈 경사(당시 31세)의 죽음의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부대원이 ‘농성자에게 있다’고 답했을 때, 방청객들은 그 말이 얼마나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지 알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고 화가 날 수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불리하게 작동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침묵에 꽂혔다. 그 대답을 한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거기에 좀더 신경이 쓰였다.” 

 

▲ <두 개의 문>을 만든 김일란, 홍지유 감독   © 촬영- 박희정 
 
-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그 때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재판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변호인단이 반대 심문에 필요한 속기록을 받아야 하는데 잘 넘어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레아’ 활동가들에게 녹음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1심 판결이 나고 나서였다. 경찰특공대원들이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거나, 진압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증거로 채택되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 법리적으로 봤을 때도 어이 없는 판결이었다. 이걸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두 개의 문>을 보며 ‘연분홍치마’의 작품에 어떤 흐름이 있다고 느꼈다. 두 개의 문은 경찰특공대원의 증언과 입장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용산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영화다. 첫 작품인 <마마상>도 굉장히 다루기 힘든 주제를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기지촌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이어진 커밍아웃 3부작도 배제된 사람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보인다.
 
“우리도 몰랐는데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면서 우리가 주목해왔던 사고의 방식이나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어떤 흐름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마마상>은 포주이기도 하고 성매매 여성이기도 했던 여성의 삶을 통해 성매매 구조의 다른 측면을 보려 했지만, 첫 다큐이다보니 그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미숙함이 많았던 것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시각을 드러내고자 했을 때, 선정적이지 않고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경험이 쌓인 것 같다. 가끔 그런 시각을 읽어주는 분들을 만났을 때 반갑다.”
 
- 이 작품을 통해 용산참사는 ‘철거민 vs. 경찰특공대’ 구도를 벗어나, 철거민과 특공대원들이 비슷한 위치에 놓이면서 과연 이들의 희생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적과 아군,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며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아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경찰특공대 자체를 (명령을 내린 자와) 분리해내고, 대원들을 상급자와 분리해내고, 그렇게 철거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탑 트윈스>(The Topp Twins: Untouchable Girls, 린 풀리, 뉴질랜드, 2009)라는 쌍둥이 레즈비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촌극을 하며 사회문제를 알리고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거기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은 진짜 어려운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입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도 저렇게 운동하려고 노력하는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죽 계속 고민해온 것 같다.”
 
-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 현장을 담은 칼라TV와 사자후TV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칼라TV 박성훈 PD를 인터뷰한 것도 ‘기록자를 기록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보았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재판 과정에서 그 영상들이 증거로 반복해서 틀어졌다. 그러나 박성훈씨도 말하듯이, 그 영상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다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영상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게 분명 있다. 그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었던 1인 미디어와 대안언론들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그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갈등이 벌어지는 것을 촬영한다기보다, 만에 하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의 목격자로서 그 자리에 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했던 많은 분들이 그 날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 박성훈씨가 사람들이 특종 잡았다고 칭찬하는데 자신은 비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자리에 있는지, 그 마음을 다시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의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09년 사건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상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똥이 튀고 불길이 번지는 화면을 보며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영상을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다큐를 보면서는 분명 그 영상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도 조금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영화를 보았다. 제작 과정에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썼는지.
 
“그건 굉장히 오랫동안 훈련된 것이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그 의미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유지하지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정은 한 이미지 자체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배치나 편집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그런 컷의 길이, 이 장면은 어떤 느낌을 만들게 될까, 그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만들어갔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은 ‘윤리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지난 작품들에 대해 ‘너희가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까 관객들이 눌리게 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강박적 윤리’가 아니라 관객들이 좀더 편하게, 감정을 방어하지 않고 다가가게 하는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음악의 사용이나 스릴러 장르를 가져온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 다큐가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적정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 음향의 사용을 드라마틱하게 한 것은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입장에서 좀더 편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편한 자세로 들어야 하는 게 있지 않나. 익숙한 내러티브 진행이라든가.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에 강요되지 않고 생각의 공간으로 들어오길 바랬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 고민을 하려면 어쨌든 영화적 익숙함이나 이끌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주사 놓을 때 안 아프게 하려고 탁 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참담함에 눌리면 ‘같이 고민해볼까요?’ 하는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서, 이것을 중화시킨다고 해야 하나. 감정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 영화에는 철거민 당사자나 유가족들 인터뷰는 등장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그 25시간 이전의 삶이나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을 배제하려고 한 것인가?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포스터   © 연분홍치마 
 
“철거민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악다구니 하는 철거민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깨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언사로 시작했을 때 모든 벽에 막힐 거라고 생각했다. 성폭력 문제도 피해여성의 순결함이나 무고함 이런 것에 기댈 때가 있지 않나. 하지만 그 여성이 어떤 여성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철거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든 불법 행위를 했든,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항하는 국민에게 특공대를 투입시켜 진압한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 그들의 명예가 나의 명예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랬다. 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갔고, 왜 요구를 했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걸 궁금해하려면 가장 필요한 태도가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이 전제 위에서 하자 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 우리는 아직 진실을 모르지만, 법정에서는 이미 철거민들에게 징역 4-5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두 개의 문>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이 철거민 석방특사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제철거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태도로 용산참사를 보아야 하는지, 이후에 진실규명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철거민들이 너무 많이 추락해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분들이 지금 항소심이 잡혀있다. 그 분들에게도 지금 감옥에 계신 분들과 같은 형이 내려질 수 있다. 이 분들을 또 다시 같은 이유로 감옥에 보내야 하는지, 탄원서를 작성해주시는 것을 부탁 드린다.
 
다큐 개봉을 준비하면서 여러 방식으로 관객들을 소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눴다. 영화에서 사법적 진실규명은 끝났다고 했지만, 사회적 재판은 다시 불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9월 국정조사와 연결시켜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있다. 사과해야 할 사람과 집단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활동들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정치권에도 감시와 압력이 되어주시면 좋겠다.” (조이여울, 2012/07/17)
 

[기사 링크] 두 여성주의 감독이 진실에 접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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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상영 100회 기록한 다큐 <어느 날 그 길에서>

일다와 함께 2008. 11. 3. 16:24

로드킬(Roadkill)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 2006

한국에서 생태다큐멘터리 장르를 개척한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가 극장상영에서도 호응을 얻었지만, 그 이후 공동체상영 100회를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 교통사고)을 다룬 다큐입니다.

공동체상영이란, 지역관객들을 위해 언제, 어디서라도 영화 관람이 가능하도록 마련한 대안적인 상영방식인데요. 학교과 단체, 소모임, 지역축제, 작은 마을 단위까지 전국의 다양한 공동체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3월, 극장 상영을 앞두고 황윤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요. 야생동물의 시선, “인간 종(種)을 넘어선 관점”으로 영상을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생활에서든, 매체를 통해서든 야생동물의 시선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날 그 길에서> 공동체상영 확산 소식이 무척 반갑습니다
.


야생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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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회 곳곳에 남성중심적인 편견과 차별이 스며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애인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철저한 비장애인 중심의 이기적인 사회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시선을 배우고 그 눈높이에 맞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눈높이로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구에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에는,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시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36)은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야생동물의 시선, 즉 “인간 종(種)을 넘어선 관점”에서 영상을 기록하려 노력한다.
 
황윤 감독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삶을 포착한 <작별>(2001)부터,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의 자연보호구역 호랑이들의 이야기<침묵의 숲>(2004), ‘로드 킬’(road kill)을 영상에 담은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로 이어지는 ‘야생동물 3부작’을 만들었다. 그 중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가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상영관을 얻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생태다큐멘터리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윤 감독을 만나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본 세상 이야기와, 그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과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황윤 감독의 영화가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은 기존의 영상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가.
 
“미디어가 야생동물을 그리는 방식은 문제가 많다. <킹콩>이나 <늑대인간>, <괴물>에서처럼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묘사한다. 야생동물을 야만적이라고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야생은 ‘야만’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고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인간 문명이 ‘야만’이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미지는 희화화되는 경우도 많은데, 동물이 주제가 되는 코미디나 광고에서 볼 수 있다. 때로 아이의 목소리가 덧입혀져 의인화되기도 한다. ‘크레인’(<작별>에 등장하는 새끼호랑이)도 당시 TV에 출연한 적이 많았는데, TV에선 <작별>과는 정반대 모습으로 등장했다. 개구쟁이, 장난꾸러기로 나왔다. 미디어의 관습화된 표현이다.
 
반면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자연다큐멘터리들은 순기능이 있다. 나 역시 어릴 때 이런 영상들을 통해 동물들을 볼 수 있었고,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이 되어 동물들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서 동물들의 보호자 혹은 관리자 위치에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 감독은 야생동물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야생동물들이 우리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구도 작은 마을이다. 지구라는 어머니에게서 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체로,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사람도 동물인데,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람과 떼어내어 한 차원 낮게 바라본다. 그래서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들 때는 야생동물이란 말 대신 ‘대지의 거주자들’이라는 낯선 표현을 사용했다.”

동물원의 동물들의 삶을 다룬 "작별", 2001

영화 <작별>을 보면 동물원의 이미지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까 “미디어의 관습화된 표현”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달라.
 
“동물원은 ‘꿈과 낭만의 공간’으로 포장되어 있다. 아이들에겐 동화 같은 곳이다. 언제나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동물장난감과 인형이 있고, 코끼리 열차가 다니는 곳.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장치가 되어 있다. 그런데 대중미디어가 이를 더욱 강화한다. ‘동물원의 여름 나기’, ‘겨울 나기’, ‘휴일의 동물의 풍경’ 등 한결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갇힌 동물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동물원 역사가 100년이라는데, 나는 한 번쯤은 관광객들의 입장이 아닌 동물들의 입장으로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동물들의 입장에서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지 담고 싶었다.”
 
<작별>은 무엇보다 야생동물들의 감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감정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냈는가.
 
“동물들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언어가 달라 동물들을 인터뷰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얼굴과 표정을 클로즈업해 담았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눈동자와 표정, 몸짓을 통해 동물들의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려 했다. 사람들은 동물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상대에게 귀 기울이면 가능하다.
 
미디어에서는 동물원을 보여줄 때, 인간을 중심에 놓고 동물들을 배경으로 둔다. 나는 반대로 동물들을 중심으로 관람객들이 배경이 되는 영상을 담았다. 전시장에 비치는 사람들의 이미지,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 발자국과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 안에 갇힌 동물들의 시선에서 담았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도로 위에서 죽음을 당하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다. <작별> 이후 계속해서 야생동물 이슈를 다루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를 찍게 되면 결국 다음 작품에서도 그와 관련된 주제를 깊이 파고들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작별>을 찍으면서 ‘야생동물소모임’과 만나게 된 것이 인생의 최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임 구성원들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얻고, 새로운 관점도 배우고, 영화도 촬영하게 됐다. ‘야생동물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야생동물들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몰라보았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동물들이 이미 멸종 위기로 가고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고, 지금이라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촬영 장면

<어느 날 그 길에서>의 경우엔 중간중간 감독의 상상력이 표현되는데, 영상을 구현해내고 편집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로드 킬 이야기기 때문에 <작별>과는 달리 동물들을 가까이서 촬영할 수 없었다. 죽은 동물들의 이전 모습을 추적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담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도로에서 참혹하게 죽기 전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이었고, 이들에게 일상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1분 전까지 고라니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었고, 삵은 쥐를 잡으러 가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발동했다. 동물들의 대화를 상상해서 자막을 넣는 방식을 택했다. 목소리를 입히면 ‘인격화’하는 우려가 있어서 무성영화처럼 글자만 넣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자동차들이 무섭게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야생동물들의 눈높이에 맞추게 된 것 같다.
 
“이 작품에서도 야생동물의 눈높이에서 도로와 자동차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갈대 숲 사이로 고라니가 고개를 빼고 마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으면, 카메라를 갈대 위에 두고 마을의 모습을 담아 고라니의 눈에 비친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깜깜한 밤에 동물들의 눈에 비친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지,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영상들을 만들어냈다. 또 두꺼비의 입장에서 자동차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영상에 담기 위해, 바닥에 렌즈를 붙이고 위로 차가 지나가게 하는 방법을 썼다.”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야생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인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항상 관객의 눈을 고려하는지 궁금하다. 또,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촬영할 때 언제나 이 영상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고민한다. 나는 <작별>이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들 때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발 영상을 만들고자 한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야생동물들이 어떤 상황인지, 한번쯤은 갇힌 동물들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바라보고, 로드 킬 당하는 동물들 입장에서 도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랬다.
 
<어느 날 그 길에서>의 ‘길’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동물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도로를 뜻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도로개통식에 가보면 ‘행복을 이어준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언론도 도로개설에 대해 ‘시간 단축, 물류 비용 절감, 지역경제 발전 기대’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경제성장에 대한 신화, 개발이 더 풍요로운 삶으로 가게 해줄 거라는 믿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관객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와 다른 관점으로, 개발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황윤 감독 “우리는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공동체상영 문의 http://www.OneDayontheRo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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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던 이 2008.11.03 17:23 Modify/Delete Reply

    하이퍼텍 나다에서 두 작품을 연속으로 보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리산을 감싸는 도로 전체에서 로드킬이 일어나고 있다는 결과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팔팔이의 죽음에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고요. 차를 타지 않을 수는 없지만 절대 내 손으로 운전하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더 확고하게 해 준 영화였어요. 지금도 마음이 아프네요.

  2. 화사 2008.11.04 01:39 Modify/Delete Reply

    와아..황윤 감독님!!!

    저도 하이퍼텍 나다에서 두 작품 연속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돼서 '작별'을 못봤어요..ㅜ.ㅜ

    아아..공동체 상영 신청(?)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여울 2008.11.04 10:49 Modify/Delete

      아마도... 공동체를 만들어서 신청을 해야겠지요..? ^^
      화사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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