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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5 기록 4.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2. 2011.01.24 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말하는 ‘고통’과 ‘치유’

기록 4.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일다와 함께 2011. 2. 5. 14:22
폭력 피해자를 죄인 취급하는 사회
<조이여울의 기록>(4) 살인피해자 가족의 죄의식, 그 사회적 의미 
 
우리는 살인, 성폭력과 같은 강력 범죄를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면서 살고 있다. 범행의 양상이 끔찍할수록, 피해자의 규모나 피해의 정도가 클수록 사회여론이 들썩인다. 그런데 나는 범죄 사건을 접하는 대중의 여론이 상당히 소모적이라는, 그래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성폭력,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며 가해자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 반응은 기껏 하루 이틀 후면 관심에서 밀려날 정도의 중요성밖에 지니지 않고 있다. 바로 이 가벼움 때문에, 나는 범죄 사건이 마치 사람들로부터 ‘열 받는다’ ‘충격적이다’ ‘화난다’ 하는 감정을 집단적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취급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해자를 향해 더 많은 분노를 표한다 해서, 그것이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 사건의 구체성이나 가해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그에 관한 정보를 돌리는 만큼, 피해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중을 두어 고려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극심한 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 지금 어떤 상황일지,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문제. 즉 피해자의 삶과 회복의 문제는 긴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하루 이틀 만에 사라져버리는 연기 같은 여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주제이다.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2010년 6월 2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주관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 좌측부터 공지영, 살인피해자 가족 김기은, 로버트 컬리,버드 웰시 ©국제 앰네스티  

 
“한국 (살인피해자) 가족들과 만나면서, 이 사회에서 그들이 어떻게 대우 받고 있는지를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 사회적 낙인이 많은 것 같다. 마치 가족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말이다.” (로버트 컬리)
 
작년 6월 20일,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버드 웰시(71), 로버트 컬리(55)씨는, 국내 살인피해 가족모임인 ‘해밀’ 소속 가족들과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 날 열린 사형제도 반대 메시지를 담은 초청강연이 끝날 무렵, 두 강연자는 “어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며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살인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한 것이었다. 버드 웰시씨는 사랑하는 이가 살해당했는데도 가족들은 아무런 정보도, 지원도, 안내도 받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 찾기에 관심이 있지 피해자를 지원하는 쪽에는 관심이 없다”며, 그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드 웰시씨는 또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자기 목소리 내길 어려워하고, 자기 경험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딸 줄리가 죽고 난 후, 자신은 14년간 딸에 대해 얘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줄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는 당일도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청중들 앞에 자랑스럽게 소개했었다.
 
로버트 컬리씨는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피해자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식의, 가혹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피해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나에겐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려는 “일종의 방어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길 바란다”고 한국 사회에 당부하며,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본인이 잘못한 느낌을 극복할 수 있길, 살아가는데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관련한 사회적 활동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당한 자’를 향한 냉정한 시선
 

주위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할 살인피해자의 가족들이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죄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치상으론 말도 안 되지만 그 상황이 어떤 건지 짐작해보는 건 우리에게 어렵지 않다.
 
죄지은 자만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다. 피해자도 죄의식을 갖는다.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해서 자식이 살해당한 게 아닐까? 내가 맞을 짓을 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맞고 사는 건가? 내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남들은 겪지 않는 고통을 겪는 것일까 등등. 폭력의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지지하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사회공동체가 해주어야만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찌된 일인지 피해자들의 마음과 몸을 돌보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 같은 악의적인 통념이 자리잡고서, 언제든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충격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해, 우리 문화가 가하고 있는 낙인을 몇 가지 언급해보자. “자식 먼저 보낸 죄인”이라거나, “부정 탔다”거나, “며느리를 잘못 들여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느니, 심지어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둥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오간다. 고통 당하는 이의 삶을 완전히 꺾어놓으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가혹한 이야기를, 무서운 시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이 정도로 낙인을 찍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엔 고통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오히려 끔찍한 상처일수록 ‘묻어야 할 이야기’가 된다. 피해를 당한 일이 “뭐 자랑이라고 얘기하느냐”는 말 속에는, ‘타인의 고통을 들어줄 이가 없다’는 각박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결국 그만큼 죄책감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공포를 당사자에게 전가하는 방식
 
피해를 겪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방어책”인 것 같다고 말한 로버트 컬리씨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저런 고통을 겪는 거야’ 라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그것은 곧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들, 즉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위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문화가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보는데, 그것은 범죄 피해와 같은 사건뿐 아니라 ‘질병’과 같은 고통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왔다.
 
중풍과 한센병 등의 질병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공격들- ‘신의 형벌’을 받는 죄인이라고 여기고, 사회와 분리시키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눈에 띄면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했다–도 그 이면에 깔린 심리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직도 에이즈 환자에 대해 ‘신의 벌’이라고 이야기하는 몰상식한 종교인들이 있다.) 무서운 질병에 대한 공포를 환자에게 전가해서, 환자를 (자신과는 다른) 죄인으로 낙인 찍음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환자를 보면 연민을 느끼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 대신, 죄가 있다(문제가 있다)고 경멸하고 공동체에서도 분리해버리려는 시도에는 그 사회구성원들의 ‘무지’와 ‘공포를 다루는 비굴한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식으로 ‘나와는 다른’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불행이라고 간주하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겪게 된다면 어떠할 것인가. 내 자녀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한센병, 에이즈 등의 질병은 사회적인 공포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그 증상을 감소시키거나 예방책과 치료책이 빨리 나와주었을 거라는 정보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발언권과 회복을 지원하는 사회
 
살인, 성폭력과 같은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관심을 누구에게 보내는가? 혹시 끔찍한 범죄에 대한 우리의 공포감을 무마시키기 위해, 부러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는 것은 아닌가? 또 사회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제 할일 다 했다고 보는 것 아닌가?
 
사회공동체가 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배려해주지 않을수록, 범죄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와 같은 끔찍한 경험이 자신에겐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는 일일 거라고 마음으로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로 피해자 집단은 더더욱 사회에서 고립되고 격리되어 갈 것이다.
 
가해자를 욕하는 것은 피해자의 아픔에 동조하고 그 사연을 들어주고 위로를 보내기보다 훨씬 쉽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보다 단순하고 빠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이 폭력을 겪어 너무나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함께 아픔을 나누고 덜어주고 위로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북돋워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의’ 실현이자 사회공동체의 기본 역할 아닐까.
 
하루가 머다 하고 심각한 범죄 사건이 보도되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폭력행위가 선정성을 담고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절망하지 않고 하루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일다> 2011년 2월 5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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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말하는 ‘고통’과 ‘치유’

일다와 함께 2011. 1. 24. 15:23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
조이여울의 기록 (3) 살인피해자 가족들 ‘치유’를 말하다 
 
어떤 사안은 취재를 하고도 기사로 보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보도할만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거나, 보도할 시기를 조율하거나, 혹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서 미뤄두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몇 달 전엔 전혀 다른 이유로, 취재내용을 기사화하지 못한 사안이 생겼다. 그것은 작년 6월 21일,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미국의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방한해서 가진 강연내용이다.
 
정보 알수록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는 사형제도
 
한국은 지난 13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고, 작년 2월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발맞춰 여당 측에서 사형 요구 움직임이 일자, 사형제도 반대운동진영에서는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urder Victims' Family for Human Rights, MVFHR) 대표단을 초청해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힘을 싣고자 한 것이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선 이미 여러 각도에서 정보를 가지고 있던 터였다.
 
인간이 제도의 힘을 빌어 타인을 죽이는 것까지 할 권리가 있을까? 하는 질문과 더불어, 누군가(사형집행관)는 합법적인 살인을 실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형제도와 관련해 주요하게 대두되는 윤리적인 문제다. 조금 더 사실에 접근해보면, 사형수 중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희생된 정치범이 많다는 점, 빈익빈부익부의 불공정한 재판 과정 즉 형평성의 문제와, 오판인 경우 보상할 길이 없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더 나아가 사형수의 상당수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점, 교정이 아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벌은 범죄자가 진실로 뉘우치고 사죄할 기회(피해자 측에서 사죄를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점, 또한 가해자를 특별한 존재로 악마화하고 살해함으로써 공포감을 조성하는 건 오히려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형제도는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세계각국에서 폐지하고 있는 흐름이며, 유럽연합은 회원국 가입 조건 중 하나로 ‘사형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형제도의 성격상, 보다 호전적인 성향의 정권 하에서 이 제도가 실행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2010년 6월 21일,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는 사형제도와 관련해 또 다른 차원에서 진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관한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에서, 사형폐지운동가이자 살해당한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버드 웰시(71), 로버트 컬리(55)씨는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는 제목을 걸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연은 물론,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보도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보도기사로 쓰기엔 너무 깊은 내용이었다고 할까? 어쩌면 내가 소화시키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증언은 살인피해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직면하여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제도 자체보다도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했다.
 
그것은 마음을 두들겨대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들이 준 메시지를 꼭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고서, 지난 6개월 간 그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 안에서 어떤 답이 떠오를 때까지, 가슴속에 얹힌 뭔가가 풀릴 때까지 계속 그들의 증언을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독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미움과 분노라는 감정의 속성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첫 국어시간에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남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당시 나는, 나이 든다는 것을 지혜로워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국어교사의 첫 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울 무렵, 그 선생님은 앞자리에 앉은 내가 귀여웠던지 굳이 말을 붙였다. 그러더니 “진달래” 같다느니 “상큼하다”느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웃으며 교실 문을 나섰다. 순간, 비위가 확 상하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뭐 저런 능글맞은 사람이 교사를 한담.’
 
예나 지금이나 정보통이었던 나의 레이더 망에 곧 그 교사의 ‘문제적’ 언행이 속속 접수됐다. 나는 선생님들이 단체로 연수나 여행을 갈 때, 버스 안에서 그 국어교사가 Y담(음담패설)을 해서 여선생님들이 피곤해했다는 얘길, 다른 학교로 전근한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젊은 여선생님이, 복도 맞은편에서 그 남자교사가 반갑다는 듯 팔을 벌리며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도망치듯 오던 길로 다시 종종걸음 하며 돌아가는 장면을 목격한 친구의 증언도 듣고야 말았다.
 
나는 분기탱천하여 반 친구들이나 친한 선생님들에게 그 국어교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얘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에는 ‘성희롱’이라는 언어(따라서 개념)도 없던 때인지라 능글맞다, 징그럽다, 교사로서 부적절하다 등의 표현으로 내 분노의 감정을 분출했다. 물론, 국어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반항(이란 이름의 공격)을 해서, 한 번은 학습부장이었던 친구가 내게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나를 무척 아껴주었던 그 친구의 지적은, 어쩌면 내가 걱정이 되어 한 얘기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증오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내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다.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돌아보며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무엇이 좋아진 게 있었던가? 단지 나는 미움이라는 불쾌한 감정 속에 기꺼이 마음을 감금시킨 채 두 학기라는 시간을 소모했을 따름이다.
 
가끔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데, 몇 년간은 ‘세상에 그렇게 징그러운 사람이 다 있었지!’ 하며 또다시 미움의 감정을 불러왔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점점 ‘내가 어떤 교사를 정말 미워했었지’ 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지금은 다만 15살 작은 몸으로 큰 미움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린 내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성희롱과 같은 사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인간의 내면에 품고 있는 감정과 그것이 미치는 결코 작지 않은 영향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일이었다.
 
미움이란, 증오란, 노여움이란, 복수심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먼저 찌른다는 것. 내게는 중2때의 경험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것 같다. 누군가를 정의의 이름으로 정죄하려 하지만, 결국 그 보복심리에 스스로 속박되어버리고야 마는 것. 아마 많은 이들이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깨닫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과거의 불쾌한, 혹은 끔찍한 사건을 그 이후의 시간에도 끊임 없이 스스로 재생시켜 내는 일이라는 것을.
 
“보복은 치유가 아니다”
 
▲ 2010년 6월 2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관한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초청강연>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 버드 웰시(좌)와 로버트 컬리(우).  © 국제 앰네스티

 
사형제도가 법의 정의라기보다 “복수심”과 “증오”에 관한 것이라는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이사장 버드 웰시의 발언은 과연 적절하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 큰 이유로, 살인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죽인 자가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해야만 그 상실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된다는 것이다. 사형 집행과정을 피해자 유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사형제도의 바탕에 분노와 복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살인피해자의 가족들이 “가해자를 죽이는 일은 우리의 고통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앞장 서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의 목소리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밝히는 여러 정보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큰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살해당한 당사자와 소중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노라고 말할 수 없고, 가해자를 향해 더 큰 분노를 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997년 10월 1일, 로버트 컬리씨의 열살 난 아들 제프리는 친구 집에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제프리는 20대 초반의 두 청년에게 납치되어 성매매를 강요 당했고, 이를 거부하자 두 청년은 아이를 죽여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로버트 컬리씨는 아들이 건널목을 잘 건널까, 과제를 잘할까 걱정 밖에는 달리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고,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건 이전에는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형제도를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분노에 차 있었다”고 말했다. 로버트 컬리씨는 주 정부를 상대로 사형제도 복원운동을 하며, 미국의 사형 존폐논란에서 ‘찬성’ 입장의 논객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컬리씨는 자신이 사형제도를 보다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는 사형제도가 “인간이 운영하는 제도”라는 것,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면 사형을 피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는 것 등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형집행은 법의 이름으로 또 다시 살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함께 하게 됐다. 제프리가 죽고 난 뒤 6년 후, 컬리씨가 한 대학의 사형제도 반대회의에 참석해 공식적으로 발언한 날은 공교롭게도 아들의 생일이었다. 그는 그것이 단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란 무엇인가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 이사장 버드 웰시의 외동딸 줄리 메리(23)는 어릴 적부터 외국어에 능해, 번역가로서 연방정부 사회보장국에 취직해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했다. 1995년 4월 19일은 그녀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빌딩으로 출퇴근한 지 8개월 정도되는 날이었고, 2주 후엔 연인과 결혼 발표를 예정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멕시코인과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연방정부 건물에 들어갔을 때, 폭탄이 터졌고 줄리를 비롯해 167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9.11 전까지 미국에서 최대 민간인 희생자를 낸 폭탄테러로, 범인은 걸프전에 참가해 훈장까지 받은 바 있는 26세의 티모시 맥베이와 그의 동료다. 그는 2001년 6월 11일 수백 명의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극물 주사로 공개 사형당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버드 웰시씨는 1년 만에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렸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가해자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이 고통을 줄이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치유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날 버드 웰시씨는 폭파사고 2주 후에 TV화면으로 보았던 가해자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건장한 남자가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눈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느꼈던 고통이란 걸 알았다.” 그는 가해자의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당신의 슬픔을 안다고.”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후, 웰시씨와 가해자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일에 대해 웰시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집에 찾아갔을 때 부엌 테이블에 아들 사진이 있었다. 나는 내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슬픔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떠나며 가족 모두와 포옹을 했고, 가해자의 동생에게 ‘우리 평생 알고 지내자. 너의 오빠가 죽는 걸 나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가해자 가족의 집을 나서면서, 버드 웰시씨는 비로소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설사 살인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의 가족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똑같이 당해보라고 말한다 해도, 이를 선뜻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웰시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통해, 살인을 저지른 자식을 둔 부모의 고통을 헤아리려 했고,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를 전하러 찾아간 것이다.
 
나는 순간,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기에 (또는 그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딸을 죽인 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까지 위로해줄 정도로 그 사랑을 확장시키려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없이 줄어들 수도 있고 세상을 덮어버릴 정도로 넓어질 수도 있다더니, 실제로 그의 마음은 감싸지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아동 성매수범들로부터 아들을 잃은 로버트 컬리씨는 현재 아동 성범죄 예방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가해자와 세상을 향해 더 크게 분노하기보다는, 살해당한 자식과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달려가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며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싣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다> 2011년 1월 24일에 실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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