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상영 100회 기록한 다큐 <어느 날 그 길에서>

일다와 함께 2008.11.03 16:24

로드킬(Roadkill)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 2006

한국에서 생태다큐멘터리 장르를 개척한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가 극장상영에서도 호응을 얻었지만, 그 이후 공동체상영 100회를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 교통사고)을 다룬 다큐입니다.

공동체상영이란, 지역관객들을 위해 언제, 어디서라도 영화 관람이 가능하도록 마련한 대안적인 상영방식인데요. 학교과 단체, 소모임, 지역축제, 작은 마을 단위까지 전국의 다양한 공동체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3월, 극장 상영을 앞두고 황윤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요. 야생동물의 시선, “인간 종(種)을 넘어선 관점”으로 영상을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생활에서든, 매체를 통해서든 야생동물의 시선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날 그 길에서> 공동체상영 확산 소식이 무척 반갑습니다
.


야생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OLYMPUS CORPORATION | u30D,S410D,u410D | Normal program | Pattern | 1/8sec | F/3.1 | 0.00 EV | 5.8mm | ISO-64 | Off Compulsory | 0000:00:00 00:00:00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회 곳곳에 남성중심적인 편견과 차별이 스며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애인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철저한 비장애인 중심의 이기적인 사회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시선을 배우고 그 눈높이에 맞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눈높이로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구에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에는,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시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36)은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야생동물의 시선, 즉 “인간 종(種)을 넘어선 관점”에서 영상을 기록하려 노력한다.
 
황윤 감독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삶을 포착한 <작별>(2001)부터,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의 자연보호구역 호랑이들의 이야기<침묵의 숲>(2004), ‘로드 킬’(road kill)을 영상에 담은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로 이어지는 ‘야생동물 3부작’을 만들었다. 그 중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가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상영관을 얻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생태다큐멘터리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윤 감독을 만나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본 세상 이야기와, 그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과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황윤 감독의 영화가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은 기존의 영상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가.
 
“미디어가 야생동물을 그리는 방식은 문제가 많다. <킹콩>이나 <늑대인간>, <괴물>에서처럼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묘사한다. 야생동물을 야만적이라고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야생은 ‘야만’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고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인간 문명이 ‘야만’이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미지는 희화화되는 경우도 많은데, 동물이 주제가 되는 코미디나 광고에서 볼 수 있다. 때로 아이의 목소리가 덧입혀져 의인화되기도 한다. ‘크레인’(<작별>에 등장하는 새끼호랑이)도 당시 TV에 출연한 적이 많았는데, TV에선 <작별>과는 정반대 모습으로 등장했다. 개구쟁이, 장난꾸러기로 나왔다. 미디어의 관습화된 표현이다.
 
반면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자연다큐멘터리들은 순기능이 있다. 나 역시 어릴 때 이런 영상들을 통해 동물들을 볼 수 있었고,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이 되어 동물들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서 동물들의 보호자 혹은 관리자 위치에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 감독은 야생동물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야생동물들이 우리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구도 작은 마을이다. 지구라는 어머니에게서 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체로,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사람도 동물인데,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람과 떼어내어 한 차원 낮게 바라본다. 그래서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들 때는 야생동물이란 말 대신 ‘대지의 거주자들’이라는 낯선 표현을 사용했다.”

동물원의 동물들의 삶을 다룬 "작별", 2001

영화 <작별>을 보면 동물원의 이미지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까 “미디어의 관습화된 표현”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달라.
 
“동물원은 ‘꿈과 낭만의 공간’으로 포장되어 있다. 아이들에겐 동화 같은 곳이다. 언제나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동물장난감과 인형이 있고, 코끼리 열차가 다니는 곳.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장치가 되어 있다. 그런데 대중미디어가 이를 더욱 강화한다. ‘동물원의 여름 나기’, ‘겨울 나기’, ‘휴일의 동물의 풍경’ 등 한결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갇힌 동물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동물원 역사가 100년이라는데, 나는 한 번쯤은 관광객들의 입장이 아닌 동물들의 입장으로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동물들의 입장에서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지 담고 싶었다.”
 
<작별>은 무엇보다 야생동물들의 감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감정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냈는가.
 
“동물들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언어가 달라 동물들을 인터뷰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얼굴과 표정을 클로즈업해 담았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눈동자와 표정, 몸짓을 통해 동물들의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려 했다. 사람들은 동물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상대에게 귀 기울이면 가능하다.
 
미디어에서는 동물원을 보여줄 때, 인간을 중심에 놓고 동물들을 배경으로 둔다. 나는 반대로 동물들을 중심으로 관람객들이 배경이 되는 영상을 담았다. 전시장에 비치는 사람들의 이미지,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 발자국과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 안에 갇힌 동물들의 시선에서 담았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도로 위에서 죽음을 당하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다. <작별> 이후 계속해서 야생동물 이슈를 다루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를 찍게 되면 결국 다음 작품에서도 그와 관련된 주제를 깊이 파고들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작별>을 찍으면서 ‘야생동물소모임’과 만나게 된 것이 인생의 최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임 구성원들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얻고, 새로운 관점도 배우고, 영화도 촬영하게 됐다. ‘야생동물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야생동물들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몰라보았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동물들이 이미 멸종 위기로 가고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고, 지금이라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촬영 장면

<어느 날 그 길에서>의 경우엔 중간중간 감독의 상상력이 표현되는데, 영상을 구현해내고 편집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로드 킬 이야기기 때문에 <작별>과는 달리 동물들을 가까이서 촬영할 수 없었다. 죽은 동물들의 이전 모습을 추적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담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도로에서 참혹하게 죽기 전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이었고, 이들에게 일상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1분 전까지 고라니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었고, 삵은 쥐를 잡으러 가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발동했다. 동물들의 대화를 상상해서 자막을 넣는 방식을 택했다. 목소리를 입히면 ‘인격화’하는 우려가 있어서 무성영화처럼 글자만 넣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자동차들이 무섭게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야생동물들의 눈높이에 맞추게 된 것 같다.
 
“이 작품에서도 야생동물의 눈높이에서 도로와 자동차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갈대 숲 사이로 고라니가 고개를 빼고 마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으면, 카메라를 갈대 위에 두고 마을의 모습을 담아 고라니의 눈에 비친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깜깜한 밤에 동물들의 눈에 비친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지,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영상들을 만들어냈다. 또 두꺼비의 입장에서 자동차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영상에 담기 위해, 바닥에 렌즈를 붙이고 위로 차가 지나가게 하는 방법을 썼다.”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야생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인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항상 관객의 눈을 고려하는지 궁금하다. 또,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촬영할 때 언제나 이 영상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고민한다. 나는 <작별>이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들 때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발 영상을 만들고자 한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야생동물들이 어떤 상황인지, 한번쯤은 갇힌 동물들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바라보고, 로드 킬 당하는 동물들 입장에서 도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랬다.
 
<어느 날 그 길에서>의 ‘길’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동물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도로를 뜻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도로개통식에 가보면 ‘행복을 이어준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언론도 도로개설에 대해 ‘시간 단축, 물류 비용 절감, 지역경제 발전 기대’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경제성장에 대한 신화, 개발이 더 풍요로운 삶으로 가게 해줄 거라는 믿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관객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와 다른 관점으로, 개발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황윤 감독 “우리는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공동체상영 문의 http://www.OneDayontheRo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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