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의 정치학

자유 게시판 2009. 2. 17. 11:05

2009년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다시금 1968년을 읽고 있다. 삼인에서 출간한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을 보면, 저자 중 한 사람인 타리크 알리는 이 책을 집필하던 1998년 당시 머리글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1968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는 가라앉은 대륙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계에, 자조와 이기주의가 평등한 세계에 대한 믿음을 대체해 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 그러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머리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시기
작가 수잔 왓킨스와 영화제작자 타리크 알리는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 등 모든 금기가 도전받고 깨뜨려진 시기", "전세계의 모든 세대에게 흔적을 남긴 해"였던 1968년의 기록을 모아, "정치적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당시 간행된 급진적 성향의 잡지 표지들, 정치만평과 시사칼럼, 각국 반전시위대의 모습, 동파키스탄 여학생들의 맨발 침묵시위, 언론에 공개된 체 게바라의 시신, 베트남전에 지친 미군병사들 사진, 초기 여성해방운동 포스터, 빠리 시내 벽에 쓰여진 낙서, 아프리카 속담과 흑인민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중엔 반전운동가이거나 신좌파인 여성들이 운동 과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소개되는데, 운동사회 내 가부장제 논란은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지속적인 논쟁 거리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사실 20~30년간이나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아니한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당시 여성들의 글 중에서 "가사 노동의 정치학"을 옮겨본다.

[가사 노동의 정치학]

그것은 완전히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은 모두 직업이 있었다. 그런데 왜 가사 노동을 분담하면 안 되는가? 나는 내 배우자에게 가사 노동을 분담하자고 제의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동의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너무 유식해서 당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따라서 몇 년 동안 대화가 계속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하지만 내가 그걸 잘할 수 없잖아. 각자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해야 해."
이것은 불행하게도 이런 의미다. 나는 접시를 닦는 일이나 요리에는 소질이 없어. 내가 잘하는 일은 목공일이나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 가구의 위치를 옮기는 일이야.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자주 가구의 위치를 옮기지?)

이것은 또 이런 의미다. 나는 단조롭고 시시하고 따분한 일은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냐. 그렇지만 그것은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나에게 보여줘야 할 거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리고 당신은 내가 그것을 할 때마다 시범을 보여줘야 해.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 일을 할 동안 앉아 있거나 독서를 하려고 하지마. 당신 혼자 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느낄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성가시게 만들 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행복했었는데." (그가 일을 할 차례가 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의미다. 예전에 '나'는 행복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일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이것은 이런 의미다. 가사 노동은 별 볼 일 없는 일이야. 그것은 내 품위를 떨어뜨리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그러나 당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아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성 해방은 진정한 정치운동이 아니야."
이것은 이런 의미다. 혁명이 아주 집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것.


팻 메이너디(Pat Mainardi)
레드스타킹즈 그룹 (Redstockings Group)
뉴욕, 1968년

Trackbacks 1 : Comments 0

Write a comment

◀ PREV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NEXT ▶